본사 도장공장과 조립공장을 점거한 이들은 “대화를 안 하려면 차라리 다 죽여라”라고 말하고 있다. 살았으되 죽은 자, 600여 명이다. 대타협이 되지 않는 한, 지금의 쌍용차도 파산으로 치달을 공산이 크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출근을 하고 있는 노동자 또한 삶을 담보받은 게 아니라는 말이다. 살았으되 죽을지 모르는 자, 3천여 명이다.
하지만 쌍용차의 위기는 2004년 정부가 중국의 상하이차에 매각하면서 기원했다는 논리가 지배적이다. 조형제 울산대 사회과학부 교수는 “쌍용차가 위기에 처한 근본 원인을 간과한 채 비용절감 차원에서 고용조정에만 ‘올인’하고 있고, 노조는 단 한 명의 정리해고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마지노선을 쳐놓은 채 농성투쟁을 계속하고 있다”고 사태를 정리했다.
그런데 평택에 정부는 보이지 않는다. “세계 자동차 시장이 위축돼 있는 상황에서 스포츠실용차(SUV) 중심으로 포트폴리오가 짜인 쌍용차의 생존 가능성을 대단히 낮게 보고 있다”는 말(지난 7월20일 이윤호 지식경제부 장관)만 ‘사형선고’처럼 이 도시를 떠돈다. ‘일자리를 나누며 상생하겠다’는 기치를 내세우던 이명박 정부의 말이다.
옥쇄파업의 현장에 들어가 직접 노동자들을 만나봤다. 꽉 막힌 이 사태의 해법도 찾아봤다. 편집자</font>
지난 7월24일 새벽 1시께 조립공장 안으로 들어간다. 가스도, 물도, 의료진도 들어갈 수 없던 그들만의 ‘막장 진지’다. 경찰이 헬기로 떨어뜨리는 최루액만 출입이 자유롭다. 사흘을 맴돌다 생긴 틈을 뚫고 들어간 기자를 맞은 한 30대 조합원은 “다들 눈이 시뻘겋게 충혈돼 있다. 보안경을 쓰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다”고 말한다. 삽시간에 기자의 눈과 코밑도 화끈거린다. 최루 분진이 피부에 들러붙는 느낌이다.
경찰 헬기로 최루액 뿌려차체와 금속판으로 3m 높이의 바리케이드가 쌓아올려져 있다. 전략적으로 더 중요해 보이는 곳엔 컨테이너를 대어 바리케이드를 세웠다. 그 위에도 분진은 내려앉았을 것이다. 사실상 ‘피아’를 식별하는 띠다. 이곳은 전쟁터가 맞다.
프레스공장 쪽 바리케이드 위에서 우아무개(37)씨가 작은 의자에 의지해 보초를 서고 있다. 눈꺼풀은 반쯤 내려앉아 있다. “언제 회사 쪽 용역들(노조원들은 회사 직원들을 ‘용역’으로 부르고 있다)과 경찰이 쳐들어올지 모르기에 3시간씩 교대로 보초를 섭니다.”
해고 노동자들은 새총에 너트나 볼트를 걸어 경찰 쪽으로 쏜다. 사실이다. 하지만 절반의 사실이다. 공장 내부로 정체를 알 수 없는 이들이 쉴 새 없이 새총 공격을 퍼붓는다. 공장을 돌면 곳곳에서 들린다. ‘툭, 탁, 펑~’ 바닥에 너트·볼트가 탄알처럼 뒹군다. 밤에는 더 공포스럽다.
회사 쪽은 부인한다. 쌍용차 홍보팀 실무자는 “용역 직원 100여 명이 경비를 서기 위해 고용돼 있다. 그러나 노조원들에 대한 폭력 행위를 지시한 적은 없다”고 말한다. 그곳엔 ‘유령’이 있는 것이다. 유령과의 새총 전쟁을 외견상 경찰은 지켜만 본다. 어디서 많이 본 풍경이다. 지난 1월 서울 용산 4구역에서다.
정병기 쌍용차노조 조직부장은 “경찰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 용역들의 뒤를 봐주면서 우리를 공격하는 것을 사실상 돕고 있다”며 “우리는 두 부류의 적과 맞서고 있다”고 말했다. 어디서 많이 들은 얘기다. 지난 1월 서울 용산 4구역에서다.
도장공장은 자동차 조립공정의 초기 단계로, 색을 입히는 업장이다. 그곳을 ‘화약고’로 부르는 까닭이다. 페인트와 시너로 가득하다. 특히 이 공장은 화재가 날 경우, 이산화탄소를 방출해 산소를 제거하게끔 자동설계돼 있다. 평택비정규노동센터 남정수 소장은 “만약의 사태가 터지면 불에 타죽는 게 아니라 대부분 질식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7월22일부터는 소화전의 물 공급도 끊겼다.
7월23일, 경찰은 공장의 50여m 앞까지 위협하고 있다. 용산 4구역에서 망루를 덮쳤던 진압용 컨테이너도 일찌감치 대기시켜뒀다. ‘그곳’에서 철거민 등 6명이 숨졌다. 도장공장 안 노동자들도 그를 모르지 않는다. 한상균 쌍용차노조 지부장은 지난 7월13일 와의 인터뷰에서 “우리 노동자들이 공권력에 맞서는 이유가 이길 수 있기 때문이라고 보는 국민들은 하나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쌍용차 갈등이 본격화한 60여 일 동안 4명이 숨졌다. 6월11일엔 부산서비스센터 현장 직원 김아무개(47)씨가 ‘옥쇄파업 철회’를 요구하는 결의대회에 참석한 뒤 쓰러졌다. 7월2일에는 희망퇴직자인 김아무개(33)씨가 자신의 차 안에서 자살했다.
7월20일에는 옥쇄파업을 벌이고 있는 노조 간부 이아무개(34)씨의 부인 박아무개(30)씨가 자살했다. 경찰이 도장공장으로 이어진 가스·수도를 끊고, 법원과 함께 강제집행을 처음 시도한 날이다. 이씨는 해고 노동자 입장에선 ‘산 자’다. 동료들을 그냥 방관할 수 없어 동참했다.
이씨는 “아내가 아이 다니는 유치원에서 회사 쪽 부인을 만나 ‘거기 있으면 집도 다 빼앗기고 감옥도 가고 다시는 회사에 다닐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더라”라고 전했다. 아내는 3~4일 전 이씨에게 전화해 “나오라”고 애원했다.
되돌릴 수 없다. 이씨는 도장공장 안에서 동료 박아무개(39)씨에게 전화한 기억마저 꿈처럼 가물댄다. “아내가 목매 죽었다고 하니 우리 집에 가봐주세요.” 이씨는 울었고 박씨는 “그 집 15층까지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는 동안 몸을 덜덜” 떨었다. 4살배기 첫째아이는 아직 엄마의 부재를 알지 못한다. “엄마, 엄마~” 울고만 있다.
죽음은 이미 ‘망자’의 것이 아니다. 5월27일 총파업 참여를 고민하던 생산직 직원 엄아무개(41)씨는 뇌출혈로 쓰러져 숨졌다. 총파업 이후 처음 평택에 드리운 죽음의 그림자였다. 두 달이 다 돼간다. 하지만 엄씨의 아내는 “남들이 볼 때야 일상으로 왔다 하겠지만, 일상은 없다”며 더는 말하기조차 힘들어했다.
되짚어 하릴없는 옛 생각들, 최루 가루처럼 흩날린다. 아련하고 시큼하다. 설경애(37)씨도 남편이 도장공장에 있다. 친구의 사촌오빠를 만난 16살 때가, 기다렸던 남자친구가 군 제대 뒤 최종면접에서 “회사를 위해 몸을 바치겠다”고 말하며 쌍용에 입사한 14년 전이, 7살·4살 아이들이 꽃처럼 피어난 13년 결혼생활이 아련하다. 회사가 2646명을 감원한다는 내용의 경영 정상화 방안을 발표한 4월이, 남편의 터전이던 직장이 폐쇄된 5월이, 이후 ‘죽은 자’로 통보받은 6월이 쓰다.
못 먹고 못 씻고 못 자고 “나가고 싶다”설씨의 남편 최아무개(39)씨가 전화를 해온다. “밥은 먹었냐. 더운데 너무 나와 있지 말고 애들이랑 몸조심해라.” 아내는 “누가 누굴 걱정하냐”며 애써 바가지를 긁는다. 최씨는 간밤에도 30분밖에 자지 못했다. 23시간30분 동안 깨어 있으며 곱씹은 소원은 하나다. “협상이 잘 타결돼서 목욕탕에 가 씻은 뒤 집에서 푹 자는 겁니다.”
공장 안 노조원들은 급격히 기력을 잃어간다. 먹지 못하고, 씻지 못하고, 잠을 자지 못한다. 일주일가량 주먹밥으로 연명하고 있다. 7월24일 현재 부식은 2~3일 내 바닥이 날 것으로 본다. 화장실은 사용 불가다. 드럼통에 사다리가 놓여 있다. 냄새가 진동한다. 17년간 근속했다는 김아무개(50)씨는 “솔직히 나가고 싶다”며 “화장실 이용도 어려워 밥도 일부러 조금씩 먹는다”고 말한다.
수십 명이 피부병과 타박상 등에 시달리고 있다. 공장 안 복지관 1층에 마련된 20평 남짓한 의무실에 환자는 넘치지만 약도, 의료진도 없다. 취재진이 의무실에 들렀을 때, 지난 7월22일 오후 경찰이 쏜 테이저건에 맞아 얼굴을 다친 박아무개(37)씨가 때마침 치료를 받고 있었다. 동료 신아무개(40)씨가 반창고를 갈아준 게 전부다. “몸에 불이 붙은 동료 대원을 구출하려고 어쩔 수 없이 (테이저건을) 쏘았다”는 경기경찰청의 해명에 ‘화병’까지 도진다. 박씨는 “몸에 불이 붙은 대원은 이미 경찰이 구출해간 뒤였고, 테이저건을 쏜 건 한참 뒤다”라며 “2m 거리 앞에서 한 대원이 얼굴을 조준해 쏘았다”고 말한다. 테이저건은 5만 볼트 전류가 흐르는 총격장치로 사용기준 규정엔 ‘전극침 발사장치가 있는 전자충격기는 상대방의 얼굴을 향해 발사하면 안 된다’고 되어 있다.
당일 밤 박씨는 그래도 수술을 했다. 옥쇄파업 이후 처음으로 의사 1명의 진입이 허락된 덕분이다. 수술을 마치고 밤 12시께 나온 의사 백남순씨는 “항생제도 없이 수술을 했다”며 “염증이 곪으면 패혈증에 걸릴 위험도 있다”고 말했다.
이탈이 생긴다. 비난할 수 없다. 우아무개(36)씨는 “나는 이미 죽은 자다. 살아 나가려면 여기 있어야 한다”고 말하고, 더 많은 이들은 “애들 때문에 못 나간다”고 말할 뿐이다. 쌍용차 직원, 하청 직원, 그리고 이들의 가족까지 합치면 15만~20만 명이다. 나간 자도, 애써 못 본 척하는 자도, 저마다 2~3명분 삶을 두고 벼랑 끝 선택을 한다.
한 치 앞 전망이 어렵다. 회사는 구조조정 없이 살기 어렵고, 해고 노동자들은 구제 없이 살기 어렵다. 무엇보다 공장 점거는 불법이다. 지켜보는 시민들의 비난도 적지 않다. 특히 ‘산 자’들과의 골은 메울 수 없을 만큼 깊다. 이들은 ‘쌍용자동차의 정상화를 위한 모임’이란 온라인 카페를 만들어 파업 참가자들을 비난하는 글을 올리고 있다. 게시판 댓글에는 ‘ 다 잡아다 죽도록 패주고 사돈에 8촌까지 손배해서 평생 빚 갚으면서 살게 해야 함’ ‘경찰 특공대에다가 군 테러 전문 부대가 총 들고 들어가야 합니다’ 등의 글이 올라와 있다.
정부가 대놓고 파산을 전망하는 가운데, ‘산 자’들은 자신들의 생존권을 위해 ‘죽은 자’를 떠미는 형국이다. 신자유주의의 진정한 악행은 ‘가족’조차 분열시키고 배반하게 하며, 존엄성을 파괴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사태의 본질이 노노 갈등은 물론, 노사 갈등도 아니라고 말한다. 이들은 예제없이 정부를 비판한다. ‘강 건너 불구경한다’는 것이다.
한상균 노조지부장은 “공권력이 투입되면 여러 예측 가능한 불상사들을 비켜가기 어렵다. 그러나 더 중요한 건 그 행위가 상하이 자본에 의해 빠져나간 쌍용차 기술과 중국 자동차 산업 전반에 걸쳐 이용당한 부실 경영의 문제, 이에 대한 정부의 책임 또한 묻히게 한다는 것이다. 쌍용차 문제를 단순한 노사 관계 과정으로 봐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실제 쌍용차를 매수했던 상하이차는 2005년 30만 대 양산 및 신규 프로젝트 4천억원 투자를 약속했고, 이듬해 신차 개발을 위해 매년 3천억원을 투자키로 했다. 하지만 상하이차에 매각된 이래 신차 출시는 없었고, 2006~2007년 생산 대수도 한 해 11만~12만 대에 머물렀다.
해법 모색도 이 지점에서 가능하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자공학부 교수는 “정부는 반년 전 쌍용차가 뇌사 상태라고 판단 내린 것 같다. 하지만 그건 의사의 판단이고, 여기 얽힌 이들이나 우리는 가족의 심정으로 봐야 한다”고 말한다. 정부의 중재나 개입 없인 근본적으로 대타협이 불가능하다는 지적이다. 김 교수는 “가장 중요한 건 정부가 적극적으로 노·사·정 대화를 이끌거나, 답을 찾기 위해 최선을 다하면서 진심을 보여주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것이 새로운 합의점을 찾는 출발점이라는 얘기다.
미국 자동차 산업의 ‘빅3’로 불리는 포드·지엠·크라이슬러도 공적자금이 투입되며 부분 국영화됐고, 전미자동차노조도 내년 전체 자동차 산업 인력의 30% 감축에 합의했다.
지식경제부 쪽은 “법원의 회생 판단 이후 산업적인 판단에 따라 자금 지원 여부 등을 결정하겠다”면서도 “지금과 같은 생산 중단 상태가 지속되면 파산은 불가피할 것”이라 말하고 있다. 하지만 생산만 재개되면 문제가 해결되는 것일까? 김필수 교수는 “2조~3조원을 쏟아도 3~4년 뒤에나 회생을 따져볼 수 있는 상황이라 (쌍용차의) 장점은 이미 없다”며 “그렇기 때문에 1%의 가능성이라도 찾으려면 일단 정부가 나서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종탁 한국비정규노동센터 부소장은 좀더 구체적이다. “노사 쌍방이 해결할 수는 없는 상태로, 사회적 부담을 져야 하는 문제”라며 “여러 기업이 지분을 나눠 소유하고 전문경영인을 내세우는 소유-경영 분리 방식을 고려해볼 수 있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수소전지연료판을 만드는 LG화학도 지분을 나눠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사회적 분담 통한 회생 방안 고민할 때물론 이 과정에서 정부의 적극적인 중재가 필요하다. 정부는 기업의 선택이라고 하지만, 누구도 그간 한국의 자동차 산업이 기업의 선택으로 노정되고 육성됐다고 보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정부가 쌍용차를 중고가 SUV 양산 회사로 특화시키는 등 자동차 산업 재편의 큰 그림을 그리는 ‘생산적 기회’로 이번 사태를 활용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를 통해, 사회적 비용은 장래에 환원된다.
7월24일 노·사·정 대책회의가 열렸다. 5시간 회의 끝에 ‘평화적 해결 원칙’에 합의하고 당사자 교섭을 재개키로 했다. 한상균 노조지부장을 포함한 노사 당사자 4명과, 국회 지식경제위원장인 정장선 민주당 의원, 원유철 한나라당 의원, 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 송명호 평택시장 등 ‘정계 중재단’ 4명은 이튿날 오전 10시부터 협상에 들어갔다. 39일 만에 쌍용차 노조원이 협상에 직접 참여한다. 박유호 금속노조 기획실장은 “쉽지 않은 협상이 되겠지만 일단 대화의 물꼬는 텄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기서도 정부 실무자는 보이지 않는다.
국가인권위원회는 7월24일 긴급 성명을 내 “조합원들에게 진료와 의약품, 물을 제공하고 봉지 형태의 최루액과 전자충격기 사용에 신중을 기하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대타협이 없이는 공염불이다. 노·사·정 대책회의가 열린 24일 저녁에도 경찰과의 극렬한 마찰이 거듭됐다.
가자지구에 갇힌 젊은이들을 그린 영화 에서, 제 몸에 폭탄을 두르고 이스라엘로 향하는 자이드는 말한다. “끔찍한 선택을 하는 건 더 끔찍한 대안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금 도장공장이 무엇을 선택할지는 정부의 역할에 달렸다. 방관은 최악의 선택이다.
평택=글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허재현 기자 한겨레 취재보도영상팀 catalunia@hani.co.kr·임인택 기자 imit@hani.co.kr·사진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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