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은 사람의 발길을 따라 난다. 인천 배다리 마을을 굽이도는 골목길들도 사람들이 모여들며 탄생했다. 경인선 전철이 지나는 배다리 철교 근처인 인천 동구 금곡동·창영동·송림동 일대를 가리킨다. 19세기 말 배다리엔 수문통 갯골과 이어지는 큰 개울이 있었고, 밀물 때 바닷물이 들어와 작은 배를 댈 수 있었다고 한다. 사람들의 살림이 넉넉지 않았던 1950~60년대 배다리 공터엔 유랑극단이나 떠돌이 약장수 등이 자주 찾아와 볼거리를 제공했고, 헌책방 거리는 교과서와 참고서를 사고파는 학생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인천 토박이라면 누구나 어린 시절 배다리에서 맡았던 냄새를 기억할 법하다. 거기에는 바닷바람에 실린 비린내, 오래된 종이가 풍기는 고소한 냄새, 골목길에서 노상 마주치기 마련인 밥 짓고 빨래하는 냄새가 버무려져 있다.
배다리 골목길의 한 처마 아래서 아이들이 빗줄기를 피하고 있다. 건물 벽면에 배다리 관통 산업도로 개설에 반대하는 예술가들이 그려놓은 벽화가 보인다.
배다리 일대는 고단한 근대화의 초상을 간직한 공간이기도 하다. 제물포를 강제로 개항시킨 일본이 해안의 남촌 지역(오늘날의 중구) 일대를 개발하자, 여기서 쫓겨난 조선 사람들은 수도국산 일대의 송현동·송림동·만석동과 배다리 일대로 몰려들었다. 1920~30년대엔 세간에 널리 알려진 노래처럼 성냥공장들이 밀집해, 여직공들은 하루 13시간 동안 1만 개의 성냥개비를 만들어야 60전을 손에 쥘 수 있었다. 1960~70년대엔 전국의 주당들을 매혹했다는 인천양조장과 인천 시민들에게 인기 높았던 창영당 아이스케키집 같은 명물들이 헌책방과 함께 배다리의 터줏대감 노릇을 했다.
배다리가 시끄러워진 것은 개발 광풍이 본격화된 2006년께부터다. 인천시는 배다리 마을을 관통하는 폭 50m의 6차선 도로 건설을 밀어붙이고 있다. 송도경제자유지역과 서울을 잇기 위해서라지만, 배다리 동네는 도로 때문에 반으로 갈라지게 됐다. 여기에 더해 중구와 동구 일대에서는 현재 동인천 북광장 조성사업과 인천역·동인천역 주변 재정비 사업을 비롯한 각종 재개발 공사가 추진 중이다. 헌책방 거리를 비롯한 배다리의 골목과 집들을 밀어낸 뒤에는 주차장, 각종 위락시설, 주상복합 아파트 등을 짓겠다는 것이다. 이에 맞서 주민들은 도로 건설에 반대하는 대책위원회를 꾸렸다.
배다리 역사문화 지도. 배다리를 지키는 인천시민모임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배다리 사람들은 왜 도로 건설과 재개발에 반기를 든 것일까? 지난 2007년 옛 인천양조장으로 이사 온 미술 대안공간 ‘스페이스 빔’의 민운기(44) 대표는 “배다리는 우리가 보존해야 할 ‘보이지 않는 힘과 매력’을 품고 있다”고 말한다. 민 대표는 그 힘과 매력의 원천으로 “건축물들이 일률적으로 지어진 게 아니라 그야말로 형편에 따라 오밀조밀 지어져 있고, 사람들은 골목에 화분과 침상을 내놓고 자기 공간으로 활용한다”는 점을 꼽았다. 가만 들여다보니 민 대표가 세들어 사는 옛 양조장 건물만 해도 사세에 따라 증축을 거듭한 흔적을 품고 있다. 화분 채소밭도 행인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집 앞이나 동네 공터에 내놓은 화분마다 꽃나무 대신 호박과 부추 따위가 소담하게 자라고 있다.
배다리의 최대 명물은 헌책방이다. 헌책방을 드나드는 사람들은 관통도로가 헌책방 거리의 숨통마저 끊어놓을 것이라고 우려한다. 한때 40여 개에 이르렀다는 헌책방은 이제 대여섯 곳으로 줄었지만, 중고 참고서와 해묵은 소설책들을 찾는 이들이 적지 않다. 딸에게 줄 그림책을 고르느라 배다리에 들렀다는 조미자(40)씨는 “프랑스에 살면서 한국에는 1년에 한 번씩 들르는데, 헌책방들이 아직 남아 있다기에 한걸음에 달려왔다”고 말했다. 헌책방 ‘아벨서점’을 운영하는 곽현숙(59) 대표는 “헌책방 경기가 예전 같진 않지만, 골목의 유동인구는 상당히 많은 편”이라며 “옛 추억 때문에 찾아오는 중년들이 적지 않다”고 귀띔했다.
경인전철 철로 너머에서 바라본 배다리 마을의 전경.
배다리 사람들은 옛 건축물에 스며들어 있는 근대의 숨결을 보존하기 위해서라도, 관통도로를 막아야 한다고 말한다. 배다리 일대에는 1920년대 당시 전국적 명성을 얻은 소성주(소주의 일종)를 제조했던 옛 인천양조장 건물, 옛 성냥공장, 공예거리, 달동네박물관 등이 몰려 있다. 1897년 한국 최초의 철도공사가 시작된 지점(옛 우각역)을 비롯해, 인천의 첫 사립학교인 영화학교(1892년 개교), 개교 100돌을 넘긴 창영초등학교, 1890년대 지어진 알렌별장 터, 미국 감리회 한국여선교사 합숙소 등 역사 건축물도 자랑거리다.
배다리가 개발 광풍에 본모습을 잃게 될 위기라는 소문이 퍼지자 문화예술계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미술 대안공간 ‘스페이스 빔’은 2007년 인천의 오래된 동네 10곳을 대상으로 옛 자취를 작품 속에 남겨놓기 위해 진행한 ‘도시유목_2’ 프로젝트를 수행하러 배다리에 들렀다가 아예 눌러앉게 됐다. 과거 소성주로 이름을 떨친 인천양조장 터를 임대해 전시 공간과 작업실로 쓰고 있다. 또 2001년부터 인천 송림동·배다리 등지에서 지역문화 활동을 벌여온 ‘퍼포먼스 반지하’는 2007년 7월부터 12월까지 ‘기억과 새로움의 풍경’이라는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허름한 골목 슈퍼의 간판을 바꾸기도 하고, 동네의 풍광을 담은 벽화를 만들기도 하는 작업이었다. 헌책방 전문가 최종규씨는 사진책 도서관인 ‘함께살기2’를 개관했고, 인천작가회의 사무실도 이곳으로 이전해왔다.
시집 전시관 겸 문화 사랑방 ‘배다리, 시가 있는, 작은 책길’을 운영하는 곽현숙씨의 ‘아벨서점’ 내부 모습. 책을 고르는 학생들의 표정이 진지하다.
먼저 예술가들은 동네의 풍광을 바꾸는 역할을 맡고 나섰다. 퍼포먼스 반지하는 배다리 철길 오른쪽 들머리에 있는 인하자원 벽에 그라피티 벽화를 그려넣었다. 손수레 가득 폐지를 싣고 가는 남성과 일손을 놓고 잠시 앉아서 담배를 피우며 골목길을 바라보는 남성의 그림이다. 도원역 앞 담벼락에는 마을의 역사와 풍경, 그리고 사람들의 삶을 담은 벽화 을 그렸다. 임신한 여성과 책방 여주인, 등굣길 여학생 등의 모습이 벽화에 담겼다.
우각로(쇠뿔고개) 아래 배다리에 있는 ‘개코막걸리’의 간판을 바꾸고, 주인 부부의 옛날 사진들을 모아 작은 전시 공간을 만들어놓기도 했다. 개코막걸리의 차림표에는 “월: 월례적으로 마시고… 목: 목이 메어지도록 마시고… 일: 일찍 마시고 내일을 위하여 일찍 잔다”는 글귀 아래에 “죽기를 각오하면 무슨 짓을 못하랴”는 다짐이 적혀 있다. 옛 인천양조장에 터를 잡은 스페이스 빔은 2층을 주민들을 위한 공간으로 상시 제공하기 위해 매주 토요일 영화를 상영하고, ‘배다리송’과 율동을 만들어 방문객에게 ‘전수’하고 있다. 매일 아침 인천시청을 찾아가 도로 건설과 재개발에 반대하는 1인 시위를 벌이는 곽현숙 아벨서점 대표도 힘을 보탰다. 그가 마련한 시집 전시관 겸 문화 사랑방 ‘배다리, 시가 있는, 작은 책길’에서는 매달 마지막주 토요일에 시 낭송회와 우화 낭송회 등을 진행한다.
헌책방 골목에 함께 깃들어 사는 액자가게의 모습. 배다리 일대에서는 수십 년째 한자리를 지키는 서민형 점포들의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배다리를 지켜내기 위한 시민사회의 연대도 본격화됐다. 지난 4월10일 배다리 문화선언 추진위원회는 인천 창영초등학교에서 ‘배다리 문화선언 선포식’을 열었다. 박상문 ‘배다리를지키는인천시민모임’ 상임대표를 비롯해 최원식 인하대 교수, 지용택 새얼문화재단 이사장, 김윤식 인천문인협회장 등 발기인들과 지역 주민 등 50여 명이 참석한 자리였다. 이들은 선언문에서 “배다리는 인천의 근대문화를 대표하는 명소인 동시에 옛 시가지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등 인천 생활문화사의 대표 지역”이라며 “배다리 관통 산업도로 건설 반대 및 서민 삶의 터전 보존을 촉구하는 서명운동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배다리 사람들은 지난 연말 품앗이 방식의 지역공동체 운동인 ‘띠앗’을 출범시키기도 했다. 형제자매의 우애를 뜻하는 순우리말에서 이름을 빌린 띠앗은 지역 주민들이 각자 자신의 능력이나 재주 또는 갖고 있는 물건을 활용해 도움을 주고받는 생활문화 공동체를 만들자는 운동이다. 예컨대 바짓단을 줄이는 기술과 컴퓨터 수리 기술을 교환하는 방식이다. 띠앗 출범을 주도한 민운기 스페이스 빔 대표는 “배다리에서 벌어지는 작은 움직임들은 거대자본의 이익을 위해 원주민들이 희생하는 현재의 재개발 사업들에 제동을 걸고, 바람직한 도시공간을 만들어내는 시금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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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글 임주환 기자 eyelid@hani.co.kr·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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