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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 재벌 롯데의 미소

제2롯데월드 허가 이어 용도변경 신청한 서초동 물류센터 개발이익도 최소 4천억원대 예상
등록 2009-04-17 12:51 수정 2020-05-03 04:25
서울 송파구 신천동 29번지 제2롯데월드 터. 제2롯데월드 건설로 롯데그룹은 막대한 개발이익을 얻을 전망이지만, 이를 환수할 법률과 제도는 부족한 게 현실이다. 사진 한겨레 박종식 기자

서울 송파구 신천동 29번지 제2롯데월드 터. 제2롯데월드 건설로 롯데그룹은 막대한 개발이익을 얻을 전망이지만, 이를 환수할 법률과 제도는 부족한 게 현실이다. 사진 한겨레 박종식 기자

최근 건설을 마쳤거나 계획을 확정한 초고층 건물들의 순위를 매겨보면, 미국 부동산개발회사인 포트만홀딩스와 삼성건설, 현대건설이 시행사를 맡은 인천 송도지구 151인천타워(600m)가 8위에 해당한다. 롯데그룹의 서울 잠실 제2롯데월드(555m)와 부산 롯데월드타워(510m)는 각각 12위와 18위에 오르게 된다. 부산의 WBC솔로몬타워(550m)는 14위쯤이 된다. 이런 건물들이 모두 들어서면 한국은 국가별 초고층 건물 보유 현황에서 세계 2위가 된다. 여기다 최근 계획된 국내 초고층 건립 프로젝트 5개를 포함하면 1위인 아랍에미리트까지 제치게 된다. 현재 추진 중이거나 계획된 사업으로는 서울 삼성동 한전 부지 그린게이트웨이(500~600m), 상암DMC 서울라이트(640m), 용산 국제업무지구의 드림타워(620m), 세운상가 랜드마크타워(960m), 뚝섬 현대차그룹 사옥(550m) 등이 있다.

제2롯데월드 허용으로 집값 꿈틀

프로젝트들만 놓고 보면, 유례없는 경제위기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초고층 빌딩 사랑은 전세계적으로 우뚝하다. 기업들이 나서는 이유는 간단하다. 돈이 되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대형 프로젝트를 수행에 필요한 시중의 자금줄이 막혀 있어 현재 추진 중인 초고층 건물들이 모두 현실화되기는 쉽지 않다. 최근 은행권이 대규모 부동산 개발사업 등에 돈을 대는 ‘프로젝트 파이낸싱’(PF)은 외면하고, 안전한 주택담보 대출을 빠르게 늘리고 있기 때문이다. 올 들어 월별 주택담보 대출 증가액은 대출 규제완화 영향으로 2월엔 2조8천억원, 3월엔 1조9천억원이나 됐다. 한국씨티은행의 오석태 부장은 “여러 개발주체들이 컨소시엄을 구성한 부동산 개발 프로젝트는 사업 추진이 제대로 안 될 경우 손실 분담을 어찌할 것인가 등의 문제가 있다”며 “그러나 특정 기업이 자기 소유 땅에 초고층 빌딩을 올리는 것은 실현 가능성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기준으로 보면, 아찔한 초고층의 꿈에 가장 가까이 다가선 기업은 역시 롯데다.

롯데그룹은 제2롯데월드가 말레이시아의 페트로나스타워, 대만의 타이베이 101빌딩, 중국 상하이 푸둥지구의 동방명주, 일본 도쿄의 롯폰기힐스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할 초고층 랜드마크이자 관광 홍보 아이콘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1조7천억원이 즉시 투자되고, 공사가 끝나면 2만3천 명에게 일자리를 주게 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도 잊지 않는다. 정부도 경제적 가치를 따지면 안보 논란쯤은 감수하겠다는 태도다. 그런데 제2롯데월드를 경제적 관점에서 보자면서 애써 외면하는 지점이 있다. 부동산 거품에 따른 막대한 개발이익이다.

부동산정보업체 내집마련정보사가 지난 4월7일 발표한 자료를 보면, 잇따른 규제완화에도 가격이 줄곧 떨어지던 서울 재건축 아파트값은 4월 초 현재 3.3㎡당 3013만원으로, 지난해 10월 이후 처음 3천만원대로 돌아갔다. 강남구 개포동 개포주공 1단지 49㎡가 지난해 12월 초 3.3㎡당 4700만원까지 떨어졌다가, 현재는 6천만원대를 형성하고 있다. 잠실주공 5단지 112㎡의 3.3㎡당 가격은 같은 기간 2400만원에서 3380만원까지 뛰었다. 서울 강남구 ㅇ공인중개사무소의 김아무개 사장은 “3월 위기설로 지난해 10월에 본 집값 하락이 재현될까봐 걱정했는데 최근 호가가 오르고 있다”면서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폐지나 강남3구 투기지역 해제 등에 대한 기대감도 있지만, 제2롯데월드 건립 허용 소식이 큰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변창흠 세종대 교수(행정학)는 “서울 강남권은 신사동에서 양재로 이어지는 수직축과 역삼, 선릉, 잠실 등을 잇는 수평축으로 짜이는데, 제2롯데월드는 잠실 일대의 개발 압력을 엄청나게 키우게 될 것”이라며 “일대가 상업 기능까지 갖춘 서울의 부도심 기능을 맡게 되면, 부동산 가격을 뛰게 하고 교통정체 등 문제를 심화시킬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명박 정부의 부동산 경기부양 ‘올인’ 정책과 롯데의 만남은 잠실에서 그치지 않는다. 서울시는 지난 3월 1만㎡ 이상 대규모 용지 개발을 활성화하는 신도시 계획 운영체계와 관련해 30여 곳의 땅 소유주들에게서 용도 변경 신청서를 받았다고 밝혔다. 모든 땅에는 자연녹지지역, 일반주거지역, 준주거지역, 일반상업지역 등 쓰임새를 통제하는 ‘딱지’가 붙어 있는데, 땅의 일부를 기부채납하면 규제를 풀고 고층 빌딩을 세우게 해주겠다는 것이다. 서울시는 60일 안에 도시계획변경 타당성 검토한 뒤 변경 여부를 결정한다. 용도 변경을 해줄 경우, 그동안 서울 시내 곳곳에 알짜배기 땅을 보유하고 용도 규제가 풀리기만을 기다려온 대기업들에 ‘특혜 논란’ 없이 개발 기회를 나눠주는 셈이다.

제2롯데월드 건축을 풀어준데다 각종 부동산 경기부양책들이 쏟아지면서 재건축 아파트 등 서울 강남권의 부동산 가격이 출렁이고 있다. 사진은 최근 호가가 3.3㎡당 3천만원 안팎으로 뛰어올랐다는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의 모습. 사진 한겨레 김경호 기자

제2롯데월드 건축을 풀어준데다 각종 부동산 경기부양책들이 쏟아지면서 재건축 아파트 등 서울 강남권의 부동산 가격이 출렁이고 있다. 사진은 최근 호가가 3.3㎡당 3천만원 안팎으로 뛰어올랐다는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의 모습. 사진 한겨레 김경호 기자

대규모 복합단지 개발계획 제시

용도변경 신청을 낸 기업들과 해당 토지는 △현대제철의 성동구 성수동 삼표레미콘 터 3만2548㎡ △신세계의 동대문구 장안동 동부화물터미널 1만9462㎡ △롯데칠성음료의 서초구 서초동 물류센터 터 4만3438㎡ 등이다. 당시 증권사들이 낸 분석 리포트 중 상당수는 용도 변경의 최대 수혜기업으로 롯데를 꼽았다.

이에 대해 부동산 문제 전문가들과 시민단체들은 서울시가 도심 한복판에 있는 대기업들의 ‘놀고 있는 땅’에 대한 개발을 풀어주면서, 개발이익을 환수하는 데는 눈감고 있다고 비판한다. 김용창 서울대 교수(지리학)는 “예컨대 아파트를 짓기 위해 땅의 일부를 기부채납 받아 공원을 만들면 그만큼 고스란히 지가 상승을 부르는 효과가 있다”며 “땅의 용도변경을 해주는 대가로 기부채납을 받으면 개발 이익을 공공이 환수하는 것이라는 서울시의 설명은 눈 가리고 아웅”이라고 꼬집었다.

롯데칠성음료의 서초동 1322번지 물류센터는 서울 서초동 삼성타운에서 불과 100여m 떨어져 있다. 용도 변경이 이뤄지면, 한국에서 부동산을 가장 많이 보유했다는 두 그룹사가 서초동의 맹주를 놓고 다투게 될 형국이다. 롯데는 이미 지난해 8월 이 부지를 ‘3종 일반주거’에서 ‘일반상업’으로 용도변경하는 것을 전제로 42층짜리 국제비즈니스센터, 백화점, 레지던스호텔, 오피스 기능 등을 아우른 대규모 복합단지 개발계획을 서초구청에 제시한 바 있다. 이번에도 서울시에 같은 개발계획안을 냈다.

이 땅의 개별공시지가는 2002년 1월엔 ㎡당 293만원이었다가 2007년 1월 711만원으로 상승했다. 여기에 땅의 용도까지 바뀌면 공시지가나 실제 시장가격은 엄청나게 뛰어오른다. 높이 제한이 풀리는 제2롯데월드와 주변 지역의 땅값이 들썩이는 것과 같은 이치다. 박종록 한화증권 연구원은 “장부가격 1천억원 안팎인 서초동 롯데칠성 물류센터를 (인근 상업지역의 땅값을 감안해 산정한) 시가인 1조원 정도에 통째로 팔게 된다고 가정하면, 땅의 40%를 기부채납하고 세금 등 비용을 고려해도 최소한 4천억원의 개발이익을 보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땅값 산정 맹점으로 개발이익 환수 찔끔

한국의 기업들에 땅장사로 자산을 축적하는 것은 늘 땅 짚고 헤엄치기였다. 엄청난 이익이 남는 게 분명한데, 개발부담금이 제대로 매겨진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왜 그럴까?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의 윤순철 시민감시국장은 현행 개발이익환수법이 2가지 맹점을 가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현재의 개발부담금 제도 아래서는 사업 종료 시점의 땅값에서 개시 시점 땅값, 정상적인 땅값 상승분, 개발비용 등을 제하고 남은 개발이익의 25%를 환수한다. 그런데 현 제도는 땅값 산정의 기준을 매매 가격보다 훨씬 낮기 마련인 공시지가로 할 수 있도록 했다. 또 땅값은 토지의 용도변경 시점에 치솟아오르기 마련인데, 개발 개시 시점의 땅값 산정은 그보다 수년 뒤인 개발사업 시행인가 시점을 기준으로 한다.

부동산 문제 전문가들은 초고층 빌딩이 들어서고, 오랜 기간 금기를 깨고 대기업들의 도심 내 알짜 땅의 용도를 바꿔주는 현 시점이 개발이익 환수장치를 새롭게 마련할 때라고 말한다. 서승탁 서울시립대 교수(도시행정학)는 “같은 상업용지라도 어디는 50층밖에 못 짓는데 어디는 100층을 지을 수 있다면 개발차액은 막대한 차이가 난다”며 “초고층을 예외적으로 허가하더라도 이익을 사회 공공 영역으로 돌리는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용창 교수는 “용적률 변경이 땅값 상승을 부르는 핵심 요인인 만큼 용도 변경 시점의 불로소득을 환수하는 게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개발이익 환수 비율은
2006년 기준 1.1% 그쳐

한정된 자원인 땅은 다른 재화와 달리 공공성·사회성이 강조되기 마련이다. 개발이익환수제도가 작동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1998년 개발이익환수법에 대한 합헌 결정을 내리면서 “오늘날 토지 문제의 핵심으로 되어 있는 토지 투기와 토지 소유의 편중 현상에 대처하여… 불로소득을 방지하고, 개발이익에 대한 기대심리를 제거함으로써 토지에 대한 투기를 방지하여 경제정의를 실현(해야 한다)”고 판시한 바 있다.
그렇다면 그동안 개발이익환수제도는 실제 경제정의를 실현할 만큼 제대로 작동해왔던 것일까? 개발이익의 발생 규모는 시장 상황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이기 때문에, 국가 차원의 개발이익은 전체 토지 공시지가의 변화를 좇아가는 수밖에 없다. 기술적으론, 개별공시지가 대상 토지를 전 국토 면적으로 환산해 총지가를 구하고, 다음 연도의 총지가에서 당해 연도의 총지가를 빼면 개발이익을 구할 수 있다. 국토해양부 연차보고서와 국토연구원 연구자료 등에서 구한 한국의 지가총액은 1980년에 135조원이었지만, 2000년에는 1410조원, 2007년엔 3171조원으로 늘어났다. 개발이익은 1980년 16조원, 2000년 20조원, 2007년 646조원이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2000~2006년 기간 중 발생한 개발이익의 총 규모는 무려 1761조원에 이른다.
개발이익 환수 규모는 토지 관련 과세와 부담금 실적을 보면 된다. 종합부동산세·재산세 등 보유과세와 양도소득세·상속세·증여세 등 이전과세 총액을 합하고, 마지막으로 개발부담금·농지보전부담금·산림자원조성비 등을 더하면 환수 규모를 추정할 수 있다. 국세통계연감 등을 보면, 국내 개발이익 환수의 전체 규모는 1980년 1950억원, 2000년 4조8370억원, 2006년 7조3110억원이었다. 2006년만 놓고 보면, 전체 개발이익에 대한 사회의 환수 비율은 1.1%에 그쳤던 셈이다. 세금 산정 기준인 공시지가가 실제 가격의 80% 정도만을 반영하기 때문에 실제 환수 비율은 이보다 낮아진다. 이익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지만, 한국 부동산만은 예외인 셈이다.

임주환 기자 eyeli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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