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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커넥션 밝힐 특검을 하라”

고 이상림씨 아들 이충연 철거대책위원장 옥중 인터뷰 “우린 빵봉지처럼 눌려 터졌다”
등록 2009-03-20 16:22 수정 2020-05-03 04:25

용산 4구역, 바뀐 것은 계절뿐

참사 50일이 지나고 철거작업이 재개된 남루한 거리, 그리고 두 사람
참사 50일이 지나고 철거작업이 재개된 남루한 거리.

참사 50일이 지나고 철거작업이 재개된 남루한 거리.

참사가 빚어진 지 50여 일이 지났다. 지난 3월11일, 서울 용산 4구역 재개발 지역에서는 검은색 추모 리본을 단 사람들의 집회가 열리고 있었다. 참사 현장인 남일당 건물 뒤편 골목길에는 검은색 점퍼를 입은 용역업체 직원들이 다시 등장했다. 10여 명씩 무리지은 이들은 사람들의 발길을 막는 ‘인간 바리케이드’였다. 골목길에 남아 장사를 계속하던 밥집과 술집들이 고사되는 건 시간문제일 터. 철제 파이프로 뼈대를 이룬 가림막 너머에서는 중장비 소리가 요란했다. 철거작업이 본격적으로 재개된 것이다. 아무리 둘러봐도 용산 4구역에서 바뀐 것은 계절뿐이었다. 고철과 쓰레기더미 사이에서도 꽃나무에는 물이 차오르고, 겨울눈은 잎사귀를 밀어내기 시작했다.
철거민들의 신세는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지만, 용산은 잊혀지고 있다. 세입자들은 “철거가 재개됐지만, 참사 이전과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한다. 비극을 빚어낸 진정한 배후는 아직 책임을 추궁당하지 않았다. ‘더불어 사는 재개발’을 위한 법·제도가 마련되기는커녕, 세입자들을 대상으로 과격·폭력분자의 낙인 세례만이 쏟아지고 있다. 50여 일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이 흐르며 시민들이 보내는 연대의 손길도 미약해졌다.
이 남루하고 지루한 비극에서 극적인 배역을 맡고 있는 두 사람을 만나봤다. 망루에서 아버지를 잃었으며 본인은 구치소에 수감된 이충연 용산 4구역 철거대책위원장과, 인권운동을 하다 ‘전과 9범’이 된 ‘이명박 정권 용산 철거민 살인진압 범국민대책위원회’ 박래군 공동 집행위원장이 그 주인공이다. 이들의 목소리가 사람들의 망각을 깨우는 호루라기 소리가 될 수 있을까. 편집자
서울 용산 재개발지구 점거농성을 주도한 혐의로 지난 1월30일 구속된 용산철거민대책위원회위원장 이충연씨가 서울중앙지검을 나와 구치소로 향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안정원 기자

서울 용산 재개발지구 점거농성을 주도한 혐의로 지난 1월30일 구속된 용산철거민대책위원회위원장 이충연씨가 서울중앙지검을 나와 구치소로 향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안정원 기자

지난 3월11일 서울구치소에서 만난 이충연(37) 철거대책위원장은 비교적 말끔한 얼굴이었다. 며칠 전 그의 아내가 면도를 하지 않으면 면회도 안 오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덕분이었다. 이 위원장은 불길에 휩싸인 남일당 건물 옥상 망루에서 아버지를 잃은 비극적 인물이자, 용산 4구역 재개발을 추진하면서 세입자들과 충돌해온 인물들과도 과거 개인적 친분을 갖고 있었다. 참사와 관련한 각종 의혹을 푸는 열쇠를 줄 수 있는 인물인 것이다. 그는 참사를 당한 세입자들의 처지를 빵봉지에 빗댔다. “빵봉지를 들고 있는데 그게 터졌어요. 손이 잘못한 게 아니라 머리가 잘못한 것이지요. 머리가 시켰으니까 손이 움직인 거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빵봉지가 잘못됐다고 우기는 상황이에요. 우리는 ‘그 사람들’이 누르면 눌리고 던지면 쓰레기통에 처박히는 입장이었어요. 우리가 구석에 몰려 터질 수밖에 없었던 그런 진실이 묻히고 있어요.”

이튿날 이씨의 변호를 맡은 김종웅 변호사를 통해 서면 인터뷰를 더 진행했다. 이씨는 참사 전날과 당일 망루의 상황, 세입자들을 괴롭힌 ‘어용 세입자 대책위원회’와 철거용역의 횡포 등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털어놓았다.

이 위원장은 “철거민들이 먼저 공격했기 때문에 경찰이 망루에 올라갔다고 사람들이 믿는 게 억울하다”며 입을 뗐다. 그는 세입자들을 도심 내 테러 공격을 자행한 ‘알카에다’라거나 체제 전복을 꾀한 사상범인 양 묘사하는 정치권과 언론 보도에도 크게 상처 입었다. “사람을 다치게 하려고 (망루에) 올라간 게 아니라, 우리 말을 아무도 안 들어주니까 대화를 위해 올라간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세입자들이 과격하게 저항한 게 문제가 될 수 있음을 알지만, 빵봉지가 터지도록 강요한 상황들이 낱낱이 드러나야 한다”고 항변하기도 했다. 그는 진실을 날것 그대로 드러내기 위해 “특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참사가 벌어지기 직전인 지난 1월19일 밤부터 20일 새벽까지 망루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밤부터 새벽까지 망루에 오른 사람들은 극도로 예민해진 상태였다. 철거민들과 대치한 용역들은 불을 질러 매캐한 연기를 피우고, 부탄가스통을 펑펑 터뜨리고, 쇠파이프로 벽을 두드리며 욕을 해댔다. 우리가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경찰이 비호하지 않으면 용역들이 불을 지를 수 없지 않나.

-발화의 직접적 원인이 철거민들이 던진 화염병에 있다는 검찰의 수사 결과 발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경찰이 쏜 최루탄도 분명히 불꽃이 튀고 열이 많이 난다. 망루 기둥이 뽑힌 상태에서 인화물질들이 바닥에 쓰러졌고, 이런 부분들이 (겹치면서) 화재가 났다고 본다. 정부는 지금 우리의 하소연을 차단하고 잊혀지도록 만들고 있다. 조사를 받으면서 동네 깡패들과 공권력 및 구청의 유착을 얘기해도 수사하지 않았다.

용산 재개발 4구역에서 3월11일 철거 작업이 재개된 가운데 철거현장을 취재하려는 한 방송사 기자가 용역직원 및 관계자들에 의해 막혀 있다. 사진/연합뉴스 최재구 기자

용산 재개발 4구역에서 3월11일 철거 작업이 재개된 가운데 철거현장을 취재하려는 한 방송사 기자가 용역직원 및 관계자들에 의해 막혀 있다. 사진/연합뉴스 최재구 기자

-세입자들이 ‘어용 세입자 대책위원회’ 때문에 괴로움을 겪었다는 용산 4구역 주민들의 증언이 있다.

=맞다. 세입자들을 죽게 만든 진짜 장본인은 ‘완장 찬 사람들’이다. ‘어용 세입자’들이다. 이들은 세입자들이 조합이나 구청에 항의하는 것을 집요하게 방해했다. 지난해 여름 용산구청 앞에서 집회를 할 때 그들이 미리 집회신고를 해서 장소를 뺏거나, 우리 집회를 방해하는 맞불 집회를 벌였다. 철거민들이 요구 사항을 방송하고 전단지를 만들어 돌릴 때면 ‘뽕짝’을 크게 틀어놓고 쫓아다니는 식이었다.

-어용 세입자 조직이라고 해도 원래 용산 4구역의 주민들이 아닌가.

=‘어용 세입자 조직’을 배후에서 조정한 이들도 원래 나와 친교가 있는 사람들이었다. 초등학교 선후배 등의 인연으로 엮여 함께 술자리를 하거나 가족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2005년께인가 동네에서 사채업·오락실·술집 등을 하던 사람들이 한 부동산 중개업소를 중심으로 모였고, 이들이 나중에 4구역 세입자 이주대책위원회 등을 장악했다. 이들은 관청의 사업 승인이 떨어지기 전엔 세입자들을 안심시켜 재개발 추진 과정의 잡음을 막았다. 나중엔 쫓겨날 처지임을 뒤늦게 깨달은 세입자들이 조합과 구청에 항의하는 것을 방해하는 역할도 맡았다. 자신들만이 조합과 대화할 수 있는 자격이 있다며 가로막는 방식이었다.

(이 위원장이 인터뷰에서 지목한 인물은 과의 통화에서 “충연이는 친한 동네 동생이었는데 전국철거민연합에 가입하면서 대화가 통하지 않는 사람이 됐다”며 “세입자들과 합의를 잘 보려고 했지만, 협상을 안 하는 전철련의 노선 탓에 힘들었다”고 반박했다.

-세입자들을 괴롭힌 사람들은 ‘어용 세입자 조직’뿐인가.

=전철련에 가입해 투쟁에 나서자 ‘건달’들의 괴롭힘도 본격화됐다. 용산역 앞 집창촌에 있는 건달들 중 일부가 영업 중인 우리 가게 앞에 상주하며 직원과 가족들에게 욕설을 했다. 험악한 분위기에 눌려 가게를 찾아오는 손님도 크게 줄었다. 올 초에는 집창촌 근처 포장마차에서 몇몇 청년들에게 별다른 이유 없이 주먹질을 당하기도 했다. 일부 주민은 자신도 세입자이면서 일당을 받고 철거용역 비슷한 일을 했다.

-재개발을 둘러싼 유착관계를 밝혀내는 데 왜 특검이 필요하다고 보는가.

=세입자들을 분노하게 한 것은 유착관계를 검찰이 밝히지 않는다는 점이다. 검찰이 그 부분을 조사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와 아내의 휴대전화 통화 내역은 속속들이 들여다보면서, 참사 현장을 지휘하던 경찰 지휘권자는 왜 제대로 조사하지 않는가. 4~5년씩 걸린다는 재개발이 1년6개월 만에 뚝딱 진행되고, 경찰과 구청은 세입자들의 항의 목소리를 막는 데 급급하지 않았는가. 이런 부분들이 억울하기 때문에 특검을 요구하는 것이다.

임주환 기자 eyeli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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