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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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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드 법관’의 법복을 벗겨라

촛불·삼성 관련 재판에서 보인 사법부의 추태, 코드 배당·판결로 무너진 사법 신뢰
등록 2009-03-20 00:48 수정 2020-05-03 04:25

루스벨트 전 미국 대통령은 대담한 뉴딜 정책 덕분에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지도자의 하나로 칭송받는다. 물론 루스벨트의 정치 이력에도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오욕의 순간이 없는 건 아니다. 연방대법원의 독립성을 침해하려 시도한, 미 역사상 유일한 대통령이라는 불명예와 오명이 그중 하나다.

신영철 대법관(맨 오른쪽) 등 대법원 3부 대법관들이 지난 3월12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법원 제2법정에서 윤두환 한나라당 의원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등에 대한 선고공판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 <한겨레> 이정아 기자

신영철 대법관(맨 오른쪽) 등 대법원 3부 대법관들이 지난 3월12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법원 제2법정에서 윤두환 한나라당 의원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등에 대한 선고공판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 <한겨레> 이정아 기자

루스벨트의 오명, 법원 재편 시도

주요 뉴딜입법이 번번이 위헌 판결로 브레이크가 걸리자 루스벨트 대통령은 연방대법원의 보수성에 치를 떤다. 그는 재선 직후인 1937년 2월 연방법원의 이념적 재편을 겨냥해 연방 법관의 대규모 증원을 허용하는 이른바 ‘법원 재편 법안’의 입법을 추진한다. 이는 법원의 ‘코드 재편’을 통해 사법부 독립을 간접 침해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코드 사법’은 법원과 재판부의 ‘코드 재편’뿐 아니라 특정 판사에 대한 특정 사안 ‘코드 배당’과 특정 사안에 대한 특정 판사 ‘코드 배제’ 등 다양한 모습으로 전개된다. 하지만 모든 ‘코드 사법’은 법과 양심에 따른 정의로운 판결 대신 인사권자와 친분인사 등 숨은 그림자의 주문에 따른 ‘코드 판결’을 만들어냄으로써 사법정의를 파괴하고 사법 불신을 조장한다는 점에서 사법 세계의 절대 금기다.

강권적 ‘코드 사법’은 심지어 국가안보와 공공질서의 비상한 위기 극복을 목적으로 선포된 계엄통치 아래서도 절대적으로 금지된다. 재판의 독립성 침해는 비상사태에서도 아무런 정당성이 없다는 게 국제인권법과 헌법상 확립된 비상사태 통제 법리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분명한 사실은 비상사태건 정상사태건 재판제도의 위대한 마술, 즉 사생결단으로 싸우던 분쟁 당사자들이 제3자인 법관의 판단에 전적으로 운명을 맡기는 경이로운 현상은 전적으로 ‘코드 사법’과 ‘코드 판결’이 없으리라는 주관적 믿음과 제도적 보증 위에서만 지속 가능하다는 점이다.

따지고 들면, 국가와 사회가 ‘코드 사법’ 예방에 들이는 공도 결코 만만치 않다. 고비용 3심제와 까다로운 재판 절차 등 복잡하고 정교하기 이를 데 없는 사법제도, 특히 법관에 대한 최고의 신분 보장과 예우 관행은 모두 외압이나 친분에 따른 ‘코드 사법’의 배제라는 단 하나의 목적을 위해 존재한다.

법관의 유일한 존재 의의도 ‘코드 사법’의 압력과 유혹을 단호히 거부하고 법과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재판하는 데 있다. 이른바 ‘생사여탈권’으로 대표되는 법관의 막강한 권력과 법정에 출입할 때의 기립 경례로 상징되는 최상급 예우는 ‘코드 사법’ 등 사법비리 회피 책임의 성실 이행을 반대급부로 주어지는 조건부 권한과 예우인 것이다.

그렇다면 갖가지 핑계로 ‘코드 사법’을 일삼는 ‘코드 법관’은 미련 없이 법복을 벗어던져야 마땅하다. 아니, 국민의 힘으로 반드시 법복을 벗겨야 한다. 평판사건 대법원장이건 여기에 예외는 없다. 사법정의에 반하는 ‘코드 사법’은 망국적 헌법 파괴 행위이자 국기 문란 행위이기 때문이다.

대형 사법 파동으로 비화할 조짐

한국 사회는 최근 촛불재판의 서울중앙지법과 삼성재판의 대법원이 ‘코드 배당’과 ‘코드 배제’를 버젓이 실행하며 ‘코드 판결’을 주문한 정황이 속속들이 드러나면서 사법 파동의 문턱까지 와 있다.

국민의 사법 신뢰를 뿌리부터 뒤흔든 촛불 및 삼성 관련 재판 스캔들은 무엇보다 사법관료제의 현실에 안주해온 현직 법관들의 자성과 자정 운동을 최우선적으로 요구한다. 하지만 사법부의 조직적인 반성의 기운과 개혁의 다짐은 여전히 감지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나는 이번 촛불재판 스캔들이 삼성재판 스캔들을 거쳐 전례 없는 대형 사법 파동으로 비화할 것으로 전망한다. 무엇보다, 촛불재판 개입 의혹보다 먼저 언론에 보도된 대법원의 삼성 사건 스캔들이 갖는 잠재적 폭발성 때문이다.

삼성재판 재배당 스캔들의 요체는, 쟁점 검토와 심리를 모두 마쳤으나 합의 결렬로 결국 대법원 전원합의체 회부가 결정된 삼성에버랜드 사건을 대법원장이 지난 2월18일 구성된 새 재판부에 다시 배당했으며 이 과정에서 종전에 소수의견을 표출했던 특정 대법관을 삼성재판에서 배제했다는 것(상자기사 참조). 한마디로, 재판부 ‘코드 재편’을 통한 법관 ‘코드 배제’!

이런 반칙과 파행으로 이용훈 대법원장이 얻을 건 삼성 사건이 대법원장까지 참여하는 전원합의체로 올 경우 삼성에버랜드 사건에 대한 변호인 전력 때문에 사건 심리를 회피해야 하는 난처함에서 벗어나는 정도다. 그럼에도 다른 대법관들은 대법원장의 유례없는 폭거에 침묵하며 묵인했다. 결과적으로는 소수의견 대법관만 이중 ‘왕따’를 경험한 꼴이다.

촛불재판 스캔들 때문에 잠시 잠복해 있을 뿐 삼성 사건 재배당 스캔들은 이용훈 대법원장이 직접적 책임자라는 점에서 가연성이 훨씬 강하다. 또한 대법원 재판부가 내린 전원합의체 회부 결정을 무시한데다 소수의견 대법관을 고의로 배제한 점에서 위법 부당성의 강도도 전혀 떨어지지 않는다.

사실 한국 사법부가 정권의 압력과 금권의 유혹 앞에서 얼마나 독립하여 재판할 수 있는지를 가늠해볼 리트머스시험지로 삼성 재판과 촛불 재판에 비할 만한 게 없다. 한국의 최강 권력 이명박 정권과 한국의 최장 권력 이건희 금권이 모든 영향력을 동원해서라도 유리하게 이끌려 애쓴 운명의 재판이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보면, 대한민국의 사법권력은 대한민국의 최고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이 각각 연루된 역사적 재판에서 법과 양심에만 따라 독립해서 재판하는 당당하고 믿음직한 모습 대신 갖가지 변칙과 추태를 연출하며 현재의 사법파동을 자초했다.

각각 ‘코드 배당’과 ‘코드 배제’로 특징지을 수 있는 촛불 재판과 삼성 재판 스캔들은 승진이나 체면 따위의 사익 추구를 위해 서슴없이 재판의 독립과 법관의 권한을 침해하는 사법부 수뇌부의 부끄러운 행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용훈 대법원장, 마땅히 책임져야

그 결과 국민의 속마음에는 ‘촛불과 삼성 사건처럼 세상의 이목이 집중된 대형 사건에서도 공정한 절차를 지켜내지 못할진대 다른 사건에서는 오죽할까’라는 의구심이 독버섯처럼 솟아나고 있다. 공적 신뢰의 최종 보루인 사법 신뢰가 급속도로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촛불과 삼성 관련 재판 스캔들이 동시에 불거져나온 현 국면은 후진적 법관 인사제도 탓에 견고하게 뿌리내린 한국적 사법 관료제의 폐단을 혁파할 다시 없을 기회다. 만에 하나 사법부가 진지한 자성과 발본적 개혁을 통해 만연한 사법 불신을 씻어내지 못한다면 우리 사회를 기다리는 것은 엄청난 허무의 늪일 뿐이다.

다시 강조하거니와, ‘윗선 눈치’ 관료사법의 추태가 백일하에 드러난 지금이 사법부의 잘못을 바로잡고 조직을 바로잡고 조직을 바로 세울 최적의 기회다. 이를 위해 대법원의 삼성 재판 재배당 스캔들의 전모를 철저히 파헤쳐 응분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

더욱이 대법원장은 서울중앙지법원장의 촛불 재판 개입 스캔들을 진작부터 잘 알면서도 좌천성 인사 조처 대신 대법관 승진을 제청한 중대한 실책에 대해서도 마땅히 책임져야 한다. 당연한 얘기지만 ‘코드 사법’과 ‘관료 사법’을 바로잡는 일에 조사와 책임의 성역이 있을 수 없다. 대법원장도 예외가 아니다.

곽노현 한국방송통신대 교수·법학



삼성 ‘코드 배당’ 논란
대법관 구성, 생각대로 하면 되고?


2007년 말 김용철 변호사(전 삼성 법무팀장)는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과 함께 이건희 전 회장 일가의 불법 경영권 승계, 비자금 조성, 정관계 로비 의혹 등에 대해 양심선언을 했다. 그 결과 조준웅 삼성특검이 출범했고, 지난해 4월 삼성특검은 경영권 불법 승계(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 발행)와 조세포탈 혐의로 이건희 전 회장 등 10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이에 대해 1·2심 재판부는 가장 핵심적인 쟁점이던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 발행에 대해 무죄로 판단하고, 조세포탈 혐의만 일부 유죄를 인정해 이 전 회장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특검은 상고했고, 지난해 10월 이 사건은 대법원 1부(주심 김지형 대법관)에 배당했다. 이에 앞서 허태학·박노빈 에버랜드 사장이 경영권 불법 승계와 관련해 기소된 사건도 대법원 2부에 배당돼 있었다. 이 사건에선 1·2심에서 유죄가 선고된 바 있다. 1·2심에서 에버랜드 전환사채 문제라는 같은 쟁점에 대해 다른 결론이 난 두 사건이 동시에 대법원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가운데 대법원 2부 소속 대법관 4명은 허태학·박노빈 사장 사건에 대해 일치된 결론을 내리기 힘들다는 판단을 내리고 대법원 관례에 따라 대법원장까지 참여하는 전원합의체에 부치기로 결론을 내렸다. 이에 따라 쟁점을 같이하는 이건희 전 회장 사건도 전원합의체 회부가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대법원은 지난 2월18일 재판부별 대법관 구성을 대폭 변경하면서 허태학·박노빈 사장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하지 않고 대법원 1부에 재배당했다. 삼성 특검이 기소한 이 전 회장 사건도 1부에서 2부로 옮겨졌다. 각 부에서 다시 심리를 진행하기로 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다수와 의견을 달리하는 일부 대법관이 삼성 관련사건 심리에서 제외되는 결과를 낳았다.
하지만 가 이 사건을 집중보도 하자, 대법원은 3월13일 허태학·박노빈 사장사건을 전원합의체로 회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오석준 대법원 공보관은 “사건을 새로 배당받은 1부에서 전원합의체로 회부하기로 했고 대법관끼리의 합의는 비밀인만큼 그 이유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이순혁 기자 h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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