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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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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파일러’ 악전고투

연쇄살인범 검거에 기여한 범죄심리분석 요원들 근무환경 열악
등록 2009-02-12 14:33 수정 2020-05-03 04:25

경기 서남부 연쇄살인 피의자 강아무개씨는 성폭행 말고는 금품이나 원한, 사회에 대한 증오와 같은 다른 범행 목적은 없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20명을 살해한 유영철씨나 13명의 목숨을 앗아간 정남규씨, 지난해 초 경기 안양 초등생 2명을 성폭행하고 살해한 정아무개씨 등은 불공평한 사회 혹은 여성들에 대한 적개심을 드러낸 바 있다. 우리 사회에서 연쇄살인이나 어린이 성폭행·살해라는 끔찍한 범죄가 1년에 한두 건씩 꾸준히 드러나고 있는 가운데, 범죄 동기가 불분명하고 피해자도 범인들과 면식이 없는 경우가 늘고 있어 이를 바라보는 일반인들의 불안감은 더 높아만 간다.

검찰 송치 때까지 집에 못 가고 토막잠

지난 2월 경찰이 경기 서남부 연쇄살인 사건 피의자 강아무개씨가 배아무개씨를 살해한 뒤 암매장한 경기 화성시 비봉면 39번 국도변에서 강씨를 데리고 현장검증을 하고 있다. 현장검증은 프로파일러들이 나서 피의자 행동심리를 연구하는 기회이기도 하다. 한겨레 김봉규 기자

지난 2월 경찰이 경기 서남부 연쇄살인 사건 피의자 강아무개씨가 배아무개씨를 살해한 뒤 암매장한 경기 화성시 비봉면 39번 국도변에서 강씨를 데리고 현장검증을 하고 있다. 현장검증은 프로파일러들이 나서 피의자 행동심리를 연구하는 기회이기도 하다. 한겨레 김봉규 기자

이런 범죄가 늘어감에 따라 더욱 주목받는 이들이 바로 경찰 조직의 ‘프로파일러’(Profiler·범죄심리분석 요원)들이다. 이번 경기 서남부 연쇄살인 사건에서도 이들은 강씨 검거 과정에서 그동안 쌓인 수사 역량을 발휘했다. 범인이 30대 남성으로서 실종이 잇따른 경기 서남부 거주자이고 차량을 범행에 이용하고 있으며 여성들에게 호감을 줄 수 있는 호남형 인물이라는 등 범인 검거에 필요한 기초 분석 결과를 제공했다. 피해 여성들이 실종된 장소와 시간, 당시 정황 등 여러 요건을 통해 범인의 행동 특성을 분석해낸 결과다. 프로파일러들은 강씨가 지난해 12월 일어난 여대생 실종 사건의 범인임이 밝혀진 뒤 나머지 6건의 여죄를 추궁할 때도 제구실을 했다. 이번 사건 수사에 참여한 권일용 경위(경찰청 범죄정보지원계)는 “범인에게 ‘경기 서남부 일대 사건을 다 네가 한 것 아니냐’고 막연하게 추궁하면 자백도 나오지 않고 수사 진행도 더딜 수밖에 없다”며 “(나머지 사건에서 나온) 구체적인 증거물을 들이밀고 자백하지 않을 수 없는 불가피한 상황이라는 것을 인식시키는 게 필요했다”고 말했다.

지난 1월24일 강씨가 검거된 뒤 권 경위를 비롯해 경기경찰청 소속 프로파일러 6명과 인근 지방경찰청의 프로파일러들은 사건이 검찰에 송치되기까지 집에 들어가지 못한 것은 물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는 강행군을 이어왔다. 경기경찰청 수사본부에서 토막잠을 자면서 수사 진척에 따라 서로 회의를 해야 했다. 사우나에 가서 가끔씩 몸을 씻었고 속옷은 그때그때 사 입었다. 권 경위는 2월5일 과의 통화에서 “(너무 힘들어) 지금이라도 땅에 주저앉아버리고 싶다”면서도 “현장 수사팀은 나보다 10배는 넘게 고생했다”고 말했다.

프로파일러들은 유영철·정남규 사건 등을 거치면서 경찰 조직 안에서 그 필요성을 인정받아왔다. 범인 검거에 이르기까지 가장 핵심적인 ‘용의자상 제시’부터 검거 뒤 추가 범행을 밝히는 데 필요한 정보 제공까지 효용성을 입증한 것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권 경위 등 감식요원 출신 경찰관 몇몇이 프로파일러로서 구실을 했을 뿐이다. 경찰청은 지난 2005년 심리학·사회학·통계학 전공자 16명을 경장 직급으로 특채한 데 이어 2007년까지 모두 40명을 범죄심리분석 요원으로 뽑았다.

역할 인식 낮아 현장 접근도 제한적

현재 활동 중인 특채 프로파일러는 모두 38명으로, 이 가운데 71%에 해당하는 27명이 여성이다. 곽순기 경찰청 과학수사계장은 “특별히 여성을 많이 뽑으려고 한 게 아니라, 심리학 전공자에 여성이 많다 보니 여성 비율이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연쇄성이 의심되거나 특이하다고 판단되는 실종·살인·강도·성폭행 사건이 벌어지면 현장에 나가 기초 조사를 벌인다. 감식반이 피해자의 신원 확인과 범인의 유류품을 통한 증거 확보 등 물리·화학적 상황 분석에 주력하는 동안, 이들은 주검의 위치와 놓인 형태 등 현장 정황을 분석하고 인근 지역에서 벌어진 유사 사건과의 관련성 등에 주목한다. 범인이 현장에 남긴 행동심리학적 특성을 통해 범인이 어떤 인물인가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를 유추해내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특히 중요한 게 기존 유사 사건들에 대한 자료 축적과 분석 작업이다. ‘프로파일러’라는 말이 본래 의미하는 일이기도 하다. 프로파일러들은 경찰의 일반 범죄 전산망인 ‘심스’(CIMS)와는 달리 ‘스카스’(SCAS)라는 별도 전산망을 쓴다. 심스는 경찰에 입건된 모든 형사 사건의 피의자·피해자 조서 등 공식적인 문서를 담고 있는데, 스카스는 이에 더해 피의자 면담 보고서 등 비공식적 자료까지 담고 있다. 범인의 성장 배경과 피해자와의 관계, 범행에 사용된 수법이나 도구의 특성 등 범인을 기소하는 데 직접 필요한 정보까지 모두 볼 수 있다.

하지만 스카스 시스템은 2005년에 와서야 구축됐기 때문에 그 이후 일어난 강력사건 1900여 건의 정보만 담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데이터베이스로서의 기능은 아직 제한적이다. 이번 경기 서남부 연쇄살인 사건에서 범인이 누구인지 구체적으로 좁혀 들어가지 못한 배경엔 경찰의 늑장 수사와 피해자 가족의 더딘 신고뿐만 아니라, 프로파일러들이 정보 가치를 가질 정도의 충분한 데이터베이스를 갖고 있지 못한 탓도 작용한 것이다.

아직도 프로파일러들은 필요한 자료 축적을 위해 시간을 충분히 쓰지 못하고 있다. 경찰 조직 안에서조차 이들의 역할에 대한 인식이 낮기 때문이다. 현재 거주 인구와 범죄 발생 건수가 많은 서울경찰청과 경기경찰청에서 각각 7명·6명이 활동하고 있는 것을 빼고는 대부분의 지방경찰청에 2명 정도의 프로파일러만 근무하고 있다. 심지어 경남·제주·광주경찰청에는 1명만 배치됐고, 충남·울산지방청의 경우엔 정원 문제 때문에 일선 경찰서로 발령난 프로파일러들도 있을 정도다. 이들마저도 현장 감식, 수배, 장비 관리 등의 임무를 겸하고 있어, 프로파일러 본연의 직무에 집중하기는 어려운 게 현실이다.

정보나 현장에 대한 접근성도 여의치 않다. 프로파일러들은 수사 자료 공유가 쉽지 않아 일선 경찰서에 직접 전화를 걸거나 현장에 가서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 범행 현장에서도 ‘대접’을 받지 못한다. 표창원 경찰대 교수(범죄심리학)는 “현장에서는 형사 말이 세고, 계급은 그보다 더 세다”며 “충분한 경험을 통해 능숙하게 다가가기 전에는 경장 계급의 여성 프로파일러가 (현장에 접근해 분석 작업을 벌이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데다 범인 검거에 쫓기는 형사들이 프로파일러와 함께 작업을 분업화·체계화하는 일에 믿음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전문성 발휘할 분업 체계 구축 필요

한 지방경찰청의 프로파일러는 “이런 상황에서 고작해야 한두 명이 움직이려니까 (프로파일러로서) 논리 개발에 한계가 있다”며 “수사회의 때 의견을 발표했다가 일선 수사 형사들한테 반박당하면 대응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사회학·심리학·통계학 등을 전공한 프로파일러들이 모인 팀 체계가 갖춰지는 게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표창원 교수는 범죄가 일어났을 때 어떤 단계에서 누구의 판단에 따라 프로파일러 투입이 결정될지, 이들이 어디까지 현장 정보에 접근할 수 있을지 등에 대한 구체적인 행동지침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찰청 범죄정보지원계 강은경 주임은 “어린이가 관련된 사건은 발달심리 전공자가, 정신이상자가 관련된 사건은 임상심리 전공자가 맡는 등 분업 체계가 필요하다”며 “범죄심리분석 요원들이 현장 보고서를 비롯한 각종 자료들을 자동적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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