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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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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 아침, 최후의 만찬?

<군주론>의 잠언을 빌려 콩트 형식으로 꾸며본 ‘고부갈등’이란 이름의 권력게임
등록 2009-01-23 16:49 수정 2020-05-03 04:25
명절이다. 뿔뿔이 흩어졌던 가족은 먼 길을 달려와 머리를 맞댄다. 건강과 안부를 묻고 가계 형편을 서로 탐색하며 제 존재의 자랑을 드러내다 끝내 미움으로 돌아앉아 교통체증을 핑계로 허둥거리는 귀경길에 오른다. 다시 보지 않겠다는 휑한 마음으로 헤어져도 다음 명절 때 또 만나지게 될 것이다.
인간관계는 어느 면에 이르러 결국 ‘정치’다. 권력게임이다. 헤게모니 경쟁이다. 가족이라고 특별히 다를 건 없다. 위로와 휴식을 기대하며 달려들지만 어느새 물고 뜯기고마는 ‘가족 정치’의 노하우를 권력게임에 대한 선정적 텍스트인 의 잠언을 빌려 콩트 형식으로 꾸며봤다. 뒤이어 가족 정치의 결정체라 할 만한 ‘고부갈등’의 역사를 소개한다. 다들 정치 잘하여 두루 평안한 명절 보내시길. 편집자
설날 아침, 최후의 만찬? 일러스트레이션/ 이우만

설날 아침, 최후의 만찬? 일러스트레이션/ 이우만

“인간은 박해를 예상했던 사람으로부터 은혜를 받게 되면 시혜자에게 더욱 애정을 느끼기 마련이다. 인민들은 인민의 호의로 권력을 잡은 군주보다 이런 군주에게 곧잘 더 끌릴 것이다.”(마키아벨리 )

21세기의 첫 기축년 정월 초하루 아침, 송아지 이마빡만 한 안방에 여섯 폭 병풍이 마침내 세워졌다. “어허잇, 거꾸로 아이가.” 매화 피고 송학 뜨는 화투짝조차 앞뒷면의 지엄한 구분이 있듯이 차례를 지낼 때는 그림이 아니라 글자가 적힌 병풍의 앞면을 내세우는 게 정한 법도라는 것을 여전히 파악 못한 오빠에게 엄마가 한소리 했다. 안직도 안 일어났나, 문어는 돌아가며 칼집을 내야 된대이, 밥은 와 이리 퍼석하게 됐노, 당신은 뭐합니까 빨리 지방 안 쓰고…. 새된 소리는 새벽부터 이미 시작된 바였다.

“어무이도 같이 하소” 오빠의 한마디에…

김가니 박가니 족보 읊는 토박이 성씨들의 텃세가 꼴사납긴 하지만 솔직히 우리 집안이란 게 짐작도 안되는 백수십 년 전, 아마도 머슴살이 끝에 흘러 들어왔음이 틀림없는 뜨내기라는 건 마을 사람들이 다 아는 사실인데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조상 귀신 씨나락 찾는 난리법석에 엄마가 한술 더 떠 나서는 것이냐고 한마디 하고 싶었지만, “가시나가 어대 말대꾸고” 뾰족한 성격 드러내며 어젯밤 화이트닝팩 얹은 자리가 아직도 촉촉한 정수리께를 가격할 것이 분명한지라 나는 방자한 혈기를 꾹 억눌렀던 것이다.

안방에서 아빠, 삼촌, 오빠가 엉덩이를 주억거린다. 세월에 대패질당해 더욱 차갑게 윤이 나는 마룻바닥 건너편 옹색한 부엌에는 엄마, 숙모, 새언니, 조카(물론 여자아이다) 그리고 내가 옹종거리고 서 있다. 손자·손녀 얼굴도 못 알아보고 매양 “누구시오” 묻는 할머니가 가운뎃방에서 부스럭거린다. 잠 욕심은 사라지고 밥 욕심만 늘어난 노인네는 새벽부터 서랍에서 옷을 꺼내 개키고 넣고 다시 빼며 하루를 보낸다. “그래도 날씨가 푹해서 다행이네.” 오빠가 차례상에 술을 첨잔하는 틈에 중얼거렸는데, 엄마가 쏘아붙인다. “좀 조용히 해라. 올해는 와 이리 말들이 많노.” 낮은 목소리에 성을 잔뜩 실었다. 시간차 집속탄 공격이다. 조금 전 있었던 일에 대해 여러 사람을 한꺼번에 겨눠 쏘아올리는 엄마의 비수다.

차례상이 차려지자 오빠가 엄마를 기습했다. “올해는 어무이도 같이 차례 지내지요.” 퇴줏그릇 삼을 양푼을 마지막으로 챙겨 안방에 들어오던 엄마는 영문을 몰라 눈이 둥그레졌다. 남자만 차례 지내는 건 옳지 않다, 조상 모시는 건 가족이 함께 해야 한다, 올해부터는 구분 없이 다 같이 차례 지내자. 아빠는 곁에서 헛기침만 했다. 엄마 얼굴이 벌게졌다. 한양 갔다 모처럼 돌아온 오빠는 비단구두 사서 여동생에게 안겨주진 못할망정 왜 이 촌구석에서 어쭙잖은 성평등을 주창해 평지풍파를 일으키는 걸까. 나는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오빠는 그러니까, 자신의 서울내기 아내와 딸에게 차례상 앞에 머리 조아릴 기회를 주자는 것이었다. 남편 조상 앞에 머리 숙이는 건 성평등과는 아무 관련 없다는 날카로운 문제제기를 했어야 옳았겠지만, 논쟁은 나의 지성이 개입할 정도의 고급스런 수준으로 진행되지 않았다.

난데없이 아들의 올무에 걸려 성평등 실천의 앞잡이로 끌려 들어올 뻔한 엄마는 곧 사태를 파악한 뒤, 한바탕을 시작했다. “니 생각도 그렇나. 뭐한다꼬 제사를 같이 지내야 한단 말이고. 살다 살다 별 희한한 이야기를 다 듣겠대이.” 아들은 가만 제쳐두고 며느리에게 가시가 박혔다. 새언니는 종내 울먹울먹해졌다. 택시 타고 집을 나서 기차 타고 지방도시에 내려와 다시 시외버스를 타고 이 산골까지 들어오는 6시간의 여정 동안 그녀는 여러 종류의 간난신고를 예측하고 지레 스트레스부터 받고 그러다 마음을 다독여 마침내 이 아침을 맞이했겠지만, ‘쓰리쿠션’으로 돌아오는 이런 종류의 공격까진 미처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궁지에 몰린 쥐는 고양이 앞에서 찍소리라도 하겠지만 난데없는 시어미의 지청구에 놀란 며느리는 그저 쿨쩍대며 우는 것밖에는 도리가 없다. 집안에서의 제 위상을 차례상 앞에서 침 삼키고 있는 조상님네 앞에서까지 훌륭히 입증해 보인 엄마는 그러나, 기꺼이 지배당할 준비가 돼 있는 아들·며느리에게 일말의 시혜를 베풀어 위신을 높이는 방법을 올해도 익히지 못했던 것이다. 그 성질을 좀 굽히지 않고서야 이 명절이 결국 여러 사람 잡을 것이다.

차례는 예정보다 한 식경이 미뤄졌다. 아빠는 담배를 피웠고, 오빠는 건넌방에 들어간 새언니를 달래야 했고, 엄마는 애꿎은 돼지머리를 써억써억 소리나게 칼질하며 혼자 분을 삭였다. 나는 잠자코 방에 들어가 드라마 재방송을 케이블 채널로 봤다. 차례 따위를 걱정할 필요가 없는 남자들이 이 세상의 것이 아님이 틀림없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시아버지 덕담 “경희 동생 낳거래이”

“원군을 이용하면 파멸하게 되는 것은 확실하다. 현명한 군주는 자신의 군대를 양성한다. 그들은 외국 군대를 이용하여 정복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자신의 군대로 패배하는 것을 택한다.”(마키아벨리 )

자수 넣은 꽃방석을 깔고 앉은 자리가 그대로 가시방석이다. 며느리 본다고 혼수 준비할 때 덤으로 구해둔 물건이다. 이런 날 세배 받을 때 얼마나 태깔이 날까, 흐뭇한 생각은 속으로만 했다. 건넌방 구들을 1년 가야 몇 번 오지도 않을 아들 내외 쓰라고 기름 보일러로 바꾼 것이 그 무렵이다. 겨울이면 찬바람이 들이쳐 고드름 맺히던 부엌 들창을 걷어내고 집을 빙 돌아가며 창틀을 전부 알루미늄 새시로 갈았다. 마음 같아선 마당과 지붕을 들어엎고 싹 다시 짓고 싶었지만 시난고난하는 철물점을 읍내에 열어둔 것을 대단한 벼슬로 아는 영감탱이한테서 그만한 돈까진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찬물에 며느리 손 담그는 게 싫어 바득바득 소매 걷고 나선 게 누군가. 서울 살던 몸으로 시골에 부모 둔 장남한테 시집오는 그 마음이 기특했다. 배운 게 없어 부모 시키는 대로 시집왔지만, 사람 좋다는 남편은 그냥 제 앞가림도 못하는 반푼이에 불과한 것으로 일찌감치 판명났고, 젊어 혼자 됐다는 시어머니는 “안녕히 주무싰습니까? 인사에 “안녕 모하다. 아침잠 많은 미느리 땜에 온 식구가 이래 굶어야 되나” 표독스럽게 답하는 인물이었으니, 자식 보며 이러구러 세월 보낸 인생을 내 며느리한테까지 물려주진 않겠다고 결심 비슷한 혼잣말을 했었다. 아들 키운 생각보다 모진 시집 생활이 북받쳐 결혼식 때는 나도 모르게 눈두덩에 손이 자주 갔다.

뒷덜미가 보이도록 고개를 숙여 며느리가 세배한다. 오히려 아들놈이 해찰궂게 넥타이를 만지며 꼬인 심사를 유세한다. “운냐, 니도 건강하고. 올해는 경희 동생도 낳거래이.” 암말도 않고 고개를 외로 틀고 앉았는데, 옆에 앉은 영감탱이가 덕담이라고 하는 게 그 모양이다. 어디 시아버지가 남우세스럽게 며느리 듣는 자리에서 애 낳으라 마라 하느냔 말이다. 이러니 어른을 업신여기고 자꾸 지 남편을 앞세워 집안을 쑤셔대는 것이다. 갑갑증이 절로 일었다. 시집살이는 옛말이고 며느리살이 안 하면 다행인데,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건 며느리 둘 있는 시어미라고 여편네들이 시시덕거리던 말이 무슨 뜻인지 이제 알겠다. 며느리가 둘이라면 참말로 내가 죽겠다.

오늘 일만 해도 여투어뒀다가 조근조근 상의했으면 얼마나 좋았겠는가. 차례상을 미루고 나면 새 부엌을 내자고 말할 참이었다. 겨울마다 냉골인 마룻바닥이 영 마뜩지 않았다. 날 풀리면 마루에 장판을 깔고 서울 아파트식으로 입식 부엌을 만드는 게 좋지 싶었다. 제 깜냥에도 분위기는 가릴 수 있을 테니, 그런 이야기를 어른들이 할 적에 기분 좋게 되받아 제 속의 말을 꺼내면 뭐 그리 대수겠는가 말이다. 손녀가 차례상 보며 멀뚱히 서 있는 건 나도 마음에 차지 않았다. 골목에 우리 손녀만 한 금덩이가 굴러가도 내 눈에는 손녀만 보일 것이다. 차례니 제사니 지낼 때마다 여자들만 고생하는 것에는 나부터 분심이 일지만, 부엌일은 아무래도 여자가 치러내는 게 더 야무지기 마련이다. 남자들이 공연히 저질러놓은 더뎅이를 뒷감당하는 것보다 백배 낫다. 그러자니 또 조급증이 일어 이것저것 일러두는 게 저 잡아먹자고 하는 소리는 또 아닐 것이다.

고부갈등은 드라마의 단골 주제다. 왼쪽은 SBS 드라마 <유리의 성>, 오른쪽은 한국방송 드라마 <너는 내 운명>의 한 장면. SBS·한국방송 제공

고부갈등은 드라마의 단골 주제다. 왼쪽은 SBS 드라마 <유리의 성>, 오른쪽은 한국방송 드라마 <너는 내 운명>의 한 장면. SBS·한국방송 제공

서울 깍쟁이라더니 상냥한 척은 해도 속에 있는 이야기는 다 안 한다. 무뚝뚝하던 아들이 욱하고 성질낼 때마다 시어미는 며느리의 속부터 생각한다. 언젠가 드라마에서 봤던 것처럼 고부지간에 한 이불 덮고 자면서 싫은 소리 좋은 소리 나누는 살뜰한 일을 끝내는 위로도 못하고 아래로도 못할 듯하니, 한 해 또 가는 세월이 한심하다. 아들네가 서울 갈 때까지 이대로 입 닫고 있을까, 못된 생각이 자꾸 드는데, 인기척도 없던 가운뎃방 노친네가 미닫이문을 드르륵 열며 뭉싯뭉싯 앉은걸음으로 문지방을 넘는다. “야야, 고사리 무친 냄시가 구시하네. 빨리 밥 도, 배고프다.”

‘대안 가족 만들자’ 프러포즈는 개뿔

“때로는 악덕으로 인해 악명을 떨치는 것도 개의치 말아야 한다. 일견 미덕으로 보이는 일을 하는 것이 자신의 파멸을 초래하는 반면, 일견 악덕으로 보이는 일을 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자신의 안전을 확보하고 번영을 가져오는 경우가 있다.”(마키아벨리 )

차례가 끝나면 늦은 아침상 셋을 차려야 한다. 차례 음식을 올렸던 자개 무늬 상에는 남자들이 둘러앉는다. 고깃점이라도 하나 더 올라가는 자리다. 여자들은 개다리소반을 겨우 면한 곳에 대충 얹어 먹는다. 치매를 앓고 있는 시할머니 앞으로는 독상이 따로 들어간다.

봄마다 흐드러지게 피는 사과꽃, 배꽃의 해끔한 풍경을 빼고 나면 그저 사철 산 깊은 두메랄밖에 없는 이 시골에서 나는 예의 분을 삭인다. 대안 가족을 만들어보자. 그게 일종의 프러포즈였다.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있던 나는 공공연히 말했다. “정치적 동성애자가 되고 싶어.” 가부장제는 싫다는 소리였는데도 그는 기겁부터 하는 눈치였다. “내가 마르크스주의를 포기할게. 너는 정치적 동성애를 포기해. 그리고 같이 대안 가족을 만들어 가부장제를 전복하자.” 며칠을 고민하던 눈치더니 그렇게 말했다. 그 말 때문에 그는 남편이 됐다. 그러나 전복은커녕 일탈조차 가물가물해졌다.

아무래도 소심증은 집안 내력인 듯 보이는데, 이 집안의 가부장제는 맏아들이 아니라 시어머니에 의해 계승되는 것 같다. 어머니 앞에선 아버님도 남편도 찍소리를 못한다. 도대체 니가 말했던 대안 가족이란 게, 명절 전엔 고향 친구들 만난다고 코가 귀밑으로 가 붙도록 술 마시고, 명절엔 멀끔히 차려입고 절만 꾸벅꾸벅 하다가 이내 차림상을 받아 배부르도록 먹고 마시는, 일방적 주종관계의 절정을 일컬었던 것이냐고 따져들어도, 남편은 그냥 입만 다물고 있다. 더 최악인 것은 그가 A형이라는 사실이다. 뭐라고 하면 좁아터진 속에 꾹꾹 눌러뒀다가 나중에 삐질삐질 흘리고 다니는 A형은 전날 밤 마누라의 항변을 엉뚱하게도 제 어미에 대한 저항으로 틀어놓는데, 도대체 시누이와 딸이 보는 앞에서 대책 없는 영웅심리를 발휘하다 끝내는 패퇴당하는 게 가부장제 전복과 무슨 관계가 있겠느냐 말이다, 이 답답한 남자라는 종자야.

모든 사람에게 두루 인정받고 싶어하는 남편의 기질은 가족 사이의 앙금을 푸는 데는 아무 소용이 없다. 그에게 필요한 건 결단이다. 편을 확실히 들어야 하고, 편을 들려면 누군가에게는 밉보일 것을 감내해야 하고, 그게 결국에는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는 것을 깨달을 때가 됐다. 이번에 올라가면 무슨 수든 낼 것이다. 남편 스스로 가족관계를 주도적으로 풀지 못하면 며느리는 가부장제 아래서 둥지조차 틀 수 없다는 명백한 진리를 고공 철탑 농성을 벌여서라도 깨우쳐줄 것이다.

쌀로 빚어 향기롭다지만 나로선 시집와서 처음 구경한 지역산 청주를 덥혀 먹던 숙부님은 아무래도 냉랭한 분위기가 꺼림칙했는지 공연히 형수를 불러들인다. “이래 앉아 있으면 우리 형수, 처음 시집올 때 생각이 자꾸 나거든. 그때맹키로 지금도 을매나 고분지.” “….” “형수님 같은 사람이 서울서 살았으믄 쫓아댕기는 남자들도 많았을 낀데.” “아아들 있는데 씰데웂는 소리 한다.” 그대로 고개를 숙이고 어머니가 한마디 했다. “내 담에 올 때는 화장품도 갖고 올끼구만. 저번에 미국 갔다 올 때 사뒀는데 고마 깜빡하고 못 갖고 왔거든예.” “삼촌은 돈 벌었다고 자랑만 하지 말고 명절날 술 한 병이라도 들고 오이소. 나이 묵도록 형님 보기 안쓰럽지도 않소.” 대화가 번진다. 들기름에 밥을 쓱쓱 비벼 먹던 숙모가 고개를 쳐든다. “형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저희가 언제 돈 자랑을 했다고. 사업하는 사람들 요즘 얼마나 힘든데. 아무리 어려워도 명절엔 내려와야 한다고 이 사람이 얼마나 근심을 하는데.” “동상, 말 잘했다. 도리를 알문 와 그 집 아아들은 명절 때 코빼기도 안 내비치노.” “그야, 학교 공부 때문에.” “방학인 줄 뻔히 다 아는구만.” “방학이어도 학원은 다녀야죠.” “아, 학원은 방학 안 하나? 학원 보낼 돈은 있고 술 사올 돈은 없나, 으잉?”

입 다물고 술잔을 들이켜던 아버님의 인내가 한계에 달했다. “조용히 해라.” “내가 뭐 틀린 소리 했나.” “조용히 하라카이.” “그라믄 진작 당신이 말 좀 하지. 와 당신은 동생한테 똑바로 말 한번 못하노.” “조용히 하라캤다잇.” 기합 넣듯이 말끝에 힘을 준 아버님이 오른쪽 무릎을 상 아래에 넣어 두 손으로 떠받치는가 싶더니, 송학과 매화가 아로새겨진 자개상이 뒤집어졌다. 칼집 들어간 문어, 퍼석퍼석한 밥, 써억써억 썰어둔 돼지고기, 따뜻하게 덥혀진 청주 따위가 이리저리 튄 것까지는 에라 모르겠다 차라리 잘됐다 싶었는데, 그만 뜨거운 탕이 담긴 놋그릇이 경희 머리 위로 날아갔다. 아침부터 어른들 기세에 눌려 말 한마디 못했던 아이는 뜨거운 것에 데였는지, 놋그릇에 맞은 것인지, 할아버지의 서슬에 놀란 것인지 아니면 그냥 긴장을 놓아버린 것인지 경기 일으키듯 울음을 터뜨렸다. A형임이 틀림없는 소심한 아버님은 자신이 저지른 일 앞에 말문이 막혀 굳게 서 있고, 어머님은 ‘아이구’ ‘우짜노’ 운운하며 부엌으로 달려가 찬물을 퍼온다 약을 찾는다 허둥댄다. 숙모는 식식거리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고 그 뒤를 숙부님이 난처한 표정으로 따라나선다. 남편이 연방 내 눈치를 보며 아이를 달래는데 가운뎃방 미닫이문이 열렸다. “내 그칼 줄 알았다. 너거끼리 돼지고기 묵었재. 밥도 쪼매쓱 주면서. 너거뜰, 천벌을 받을 끼다, 으잉.”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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