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고유의 소 품종. 보통 노란빛을 띤 갈색이며, 성질이 온순하다.”
“불특정 다수인으로부터 모금한 실적 배당형 성격의 투자기금.”
‘암송아지에 투자’ 공상이 현실로
각각 한우와 펀드에 관한 설명이다. 최첨단 금융과 오래된 농촌 풍경을 떠올리도록 하는 두 단어는 사실 서로 어울리지도 않고, 별 연관도 없어 보인다. 그런데 충남 예산·홍성 지역에서는 한우와 펀드의 만남이 화제다. 이른바 ‘한우펀드’ 때문이다. 말 그대로 투자자로부터 돈을 받아 한우에 투자하는 펀드인데, 이 지역 농가 소득 향상을 위한 새로운 시험이어서 많은 관심을 모으고 있다.
한우펀드의 시작은 2007년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생활협동조합과 일부 마트에 ‘한우예찬’이라는 브랜드 쇠고기를 납품하고 있는 충남 예산 ‘씨알목장’의 김태종(45) 사장이 아이디어를 냈다. 투자자들이 돈을 내놓으면 이 돈으로 암송아지를 매입해 농가에 위탁해 사육하도록 하고, 송아지가 태어나면 이를 매각해 배당금을 회수할 수 있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돈은 돈대로 벌면서 농가도 도울 수 있다는 공상과도 같은 발상이었다. 이런 ‘공상’은 우연찮게 골든브릿지자산운용 관계자에게 흘러 들어가면서 현실화되기 시작했다. 양쪽이 만나 구체적인 방안을 논의했고, 상세한 사업계획서가 마련됐다. 여러 투자처에 의견을 타진한 끝에 새마을금고연합회와 메리츠종금이 각각 100억원과 10억원씩 투자하기로 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타결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그해 6월 말 드디어 ‘한우예찬 펀드’(공식 명칭 ‘GB사모한우예찬특별자산투자신탁’)가 공식 출범했다.
운용 기간 3년에 연 목표 수익률은 9%. 2년치 배당금 20억원과 펀드 수수료 5억원가량은 돈을 빌릴 때 선이자를 떼듯 따로 적립해뒀다. 110억원 가운데 나머지 85억원은 씨알목장을 거쳐 암송아지 2750두를 매입(두당 260만원가량)하는 데 주로 쓰였다. 매입된 암송아지들은 80여 농가에 위탁됐다. 60%가량이 예산 지역 축산 농가들이었고, 30%가량은 인근 홍성 지역 축산 농가, 나머지는 충남 아산·당진·청양, 경기 여주, 전북 완주 등 전국 각지의 농가들에 분배됐다. 대부분 ‘한우예찬’ 브랜드에 가입한 농가들로, 항생제나 성장촉진제를 사용하지 않고 섬유질이 많은 풀 복합 사료를 먹였다. 3년 동안 이 암송아지들이 커서 평균 2마리씩의 송아지를 낳는다는 계산이었고, 3년 만기 때는 위탁했던 암소 2750두를 마리당 400만원가량에 매각해 원금 110억원을 회수하기로 했다. 태어난 송아지들을 판 돈으로는 3년째 배당금 10억원을 충당하기로 했다.
위탁농가들의 수익구조 또한 간단했다. 위탁받은 암소가 송아지를 낳으면 생후 6개월 시점에 씨알농장에 인계하면서 200만원의 사육료를 받기로 약정했다. 암소가 송아지를 낳고 6개월이 흐르기까지 암소와 송아지에게 들어가는 사육비가 100만원가량임을 감안하면 송아지 한 마리당 100만원의 이익이 남는 셈이다. 농가당 평균 암소 30마리가 위탁됐는데, 계획대로 3년 동안 송아지 60마리가 태어난다면 6천만원가량의 수익이 날 전망이었다. 위탁받은 소들을 3년 펀드 만기 뒤 400만원에 우선 매입할 수 있는 권한까지 농가들에 주어졌다.
이렇듯 투자자와 위탁농가들의 이익이 보장되는 시스템을 만드는 데 씨알목장이 다리 구실을 했는데, 그쪽엔 또 다른 이익이 주어졌다. ‘한우예찬’이라는 브랜드 쇠고기 생산 기반 확대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었다. 무항생제·무성장촉진제 원칙을 지키며 곡물 사료 대신에 섬유질 사료를 주로 먹여 고급 한우 고기를 생산하고 이를 아이쿱(ICOOP) 생활협동조합 등에 납품해왔는데, 사육 두수를 크게 늘리는 등 규모의 경제를 이루는 발판으로 이 펀드를 활용하게 됐다.
농촌 유휴 시설·인력 이용해 수익물론 번식우(새끼를 팔아 수익을 얻는 한우)에 투자한 한우펀드는 처음인 만큼, 안전한 투자를 위한 여러 대비책도 마련됐다. 전염병 발생과 가격 하락 위험에 대비해 가축공제조합과 잔존물회수보험에 가입한 것이다. 불의의 사고가 나더라도 최소한 원금은 확보할 수 있는 조처들이었다.
사실 85억원을 투자해 3년 만에 120억원가량(원금 110억원+3년째 배당금 10억원)을 만드는 일은 요행이 겹치지 않는 한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구조가 가능했을까? 김태종 사장은 “농촌의 유휴 시설과 유휴 인력을 이용한다는 점이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어차피 놀고 있는 빈 축사나 기존 축사의 여유 공간을 이용해 소를 키우는 겁니다. 투자 비용이 전혀 없다는 말이죠. 소는 송아지를 낳을 때는 좀더 관심을 기울여야 하지만 기본은 아침·저녁으로 먹이만 챙겨주면 돼요. 농민들로서는 원래 하는 일을 하면서 가욋일로 소를 좀 기르는 셈인데, 여기에서 생각보다 큰 부가가치가 창출되는 것이죠.”
하지만 세상 모든 일처럼 이 또한 계획대로만 되지는 않았다. 미국 쇠고기 수입이 개방되면서 국내 소값이 크게 폭락한 것이다. 또 국제 원자재값 상승과 환율 폭등으로 인해 사료값이 1~2년 사이 많게는 2배 가까이 치솟기도 했다.
사료값이 폭등한 만큼 농민들의 이익이 감소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최근 위탁 농가들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송아지들이 태어나고 있었지만, 표정이 밝지만은 않았다. 씨알농장에서 한우 20두를 위탁받아 키우고 있는 최영목 한우협회 예산군지부장은 “수입 사료는 1~2년 사이 2배까지도 올랐다. 여기에 한우값이 폭락해 농가들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며 “위탁받은 소가 낳은 송아지를 내주고 받을 200만원 가운데 원가가 130만~140만원 수준까지 늘어날 것 같다”고 말했다.
한우값 폭락, 사료값 폭등은 부담소값 폭락은 사업을 주관하는 씨알목장에 큰 부담으로 되돌아오고 있다. 현재 송아지 시세는 150만~160만원 수준인데 농가에서 가져온 송아지 한 마리당 200만원씩 내주면 차액만큼 손해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씨알목장에서는 나름 준비가 돼 있다고 한다. 일단 지역순환형 생태축산을 채택해 차별화에 성공했고, 매입해 보급한 소들이 모두 혈통 등록우들이어서 보통 송아지들에 비해 30만~40만원가량 비싸게 거래된다. 여기에 송아지생산안정제에 따른 보조금(송아지 거래값 평균이 일정 기준 금액보다 적을 경우 그 차액을 일괄적으로 지급해주는 제도)도 나올 전망이기 때문에 아주 큰 타격은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갈수록 한우가 홀대받는 것에 대해 사육 농가들의 표정은 어둡기만 했다. 지난해 9월께부터 위탁했던 소들에게서 송아지들이 태어나기 시작해 지난 연말 피크를 이뤘고 올해 2~3월부터는 실제 송아지 인수인계가 시작될 예정인데, 무사히 송아지가 태어나면 너무나도 기뻐하던 예전 모습들은 찾아보기 어렵다고 한다. 최영목 지부장은 “지난해 한우값이 너무 떨어져 10두 미만으로 한우를 키우는 농가들이 한우 기르는 것 자체를 포기하는 경우가 속출하고 있다”며 “정부의 관심이나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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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떻게 한우펀드 사업을 하게 됐나.
투자도 하면서 농민도 도울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우연히 골든브릿지 쪽과 연결이 됐다.(웃음)
- 농가들로서는 적정 수익이 보장돼야겠지만, 서민들로서는 한우고기가 너무 비싼 것이 사실이다.
그런 점은 인정한다. 우선 미국소와 한우는 사육 비용이 현격하게 차이가 난다. 우리나라에서는 동물성 사료 사용이 금지돼 있지만, 미국에서는 같은 소의 부산물만 아니면 동물성 사료를 쓸 수 있다. 동물성 사료는 일반 곡물 사료에 비해 가격은 3분의 1 수준인데, 성장은 최소 1.5~2배 빠르게 한다. 동물성 사료 금지를 아무리 촉구해도 미국이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다. 미국과 같은 선진국에서는 정부 보조금이 농가 수익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농가들에게 보조금이 거의 없이 그냥 농산물 판매를 통해 이익을 얻으라는 시스템이다. 여기에 산지 한우값은 30~40%가량 떨어졌는데 소비자 가격은 변동이 거의 없다. 유통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농가들도 더 저렴한 가격에 도시 서민들이 한우를 즐길 수 있도록 생산비를 절감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나름대로 그런 노력들을 하고 있다.
- 정부 정책과 관련해 바라는 점은.
지난해 촛불정국 때 정부가 미국 쇠고기 수입 장관 고시를 하면서 한우 농가 대책으로 한우 품질장려금을 올해부터 지급하고 친환경축산물 인정 농가에 대해서는 친환경직불금을 지급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아직 아무런 소식이 없다. 약속을 지켜줬으면 하는데, 한다는 것인지 만다는 것인지라도 명확히 해줬으면 한다.
- 예산으로 귀농하게 된 계기는.
3사관학교 교관을 지낸 장인 어른이 6·25 때 입대해 40여 년 동안 군에 계시다가 YS 시절 전역했다. 현역 최장수 기록이고 전역 직전 장군으로 승진해 방송에도 출연하셨다. 그 장인께서 노후를 보내려고 예산에 땅을 몇백 평 사뒀는데, 집을 짓는 일을 도와달라고 해서 몇 달 동안 내려와 있었다. 그때 예산과 인연을 맺게 돼 나중에 이쪽으로 귀농을 했다.
예산=글·사진 이순혁 기자 h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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