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12일 국회는 본회의를 열어 ‘군의문사 진상규명 등에 관한 특별법 일부개정 법률안’을 통과시켰다.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군의문사위) 활동 기한을 2009년 12월31일까지 한 해 연장하는 내용이었다. 2006년 1월1일 출범한 군의문사위 활동이 2008년 12월31일로 만료되는데, 접수된 사건 600건 가운데 205건이 아직 해결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애초 유가족 단체와 민주당에서는 활동 기간 2년 연장을 주장한 반면 한나라당은 연장 자체를 반대했다. 활동 기간을 1년 연장하는 대신 위원장 직급을 장관급에서 차관급으로 변경하는 선에서 극적인 타협이 이뤄진 것이다.
하지만 군의문사위는 2009년 1월1일부로 사실상 올스톱 상태가 됐다. ‘물갈이’ 때문이다. 우선 이해동 위원장과 김호철 상임위원, 비상임위원 5명 모두 2008년 12월31일부로 퇴임했다. 수뇌부가 공석이 된 것이다. 현 정부는 전임 정부에서 임명된 정무직들은 물론, 임기제 기관장, 각종 위원회 위원들까지 모두 교체하는 것을 기본 방침으로 하고 있다.
여기에 실무진들도 대거 자리를 떴다. 전문계약직과 상근계약직 40여 명은 2008년 12월31일 계약 기간 만료로 군의문사위를 떠났다. 부처에서 파견된 공무원 등 파견인력 일부도 원소속 부처로 복귀해 100명 규모였던 위원회 인력은 1월 초 현재 30여 명으로 줄어들었다. 유가족들을 면담하고 현장을 방문하는 등 실제 사건 조사 업무를 진행할 조사관 인력도 크게 줄었다. 조사관 60여 명 가운데 현재 남은 인력은 별정직 10여 명에 불과하다. 그나마 남은 별정직들도 새로 꾸려질 수뇌부의 뜻에 따라 ‘정리’될 가능성이 높다. 아예 조직 전체를 물갈이하는 바람에, 정상적인 업무가 이뤄질 수 없는 상황이 돼버린 것이다.
이같은 물갈이는 정권의 과거사 관련 위원회 운용 방향과 일치한다. 유가족의 극력한 반발과 여야 협의를 거치는 과정에서 군의문사위 활동 기한을 1년 늘리긴 했지만, 청와대로서는 이런 결과가 탐탁지 않을 수밖에 없다. 노무현 정부 시절에 만들어진 과거사 관련 위원회들을 통폐합하는 것은 현 정부의 주요 과제 가운데 하나였다. 여기에 주무 부서인 국방부로서는 과거 자신들의 치부를 드러낼 수밖에 없는 군의문사위 활동을 눈엣가시처럼 여길 수밖에 없다. 결국 1년 연장은 해주되 ‘물갈이’를 통해 힘을 빼는 것에서 이해가 맞아떨어진다.
이런 의도는 국방부가 1월2일 홈페이지를 통해 입법예고한 ‘군의문사 진상규명 등에 관한 특별법 시행령 개정안’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개정안의 주요 내용은 △위원장 직급 하향 조정 △별정직인 사무국장을 일반직 고위공무원으로 변경 △별정직인 홍보담당관직 폐지 △총경이 맡는 조사과장 자리 신설 △국방부 서기관이 임명되는 운영지원과장 권한 확대 등이다. 외부에서 온 별정직들을 내몰고, 이 자리에 직업 공무원을 앉히겠다는 것이 기본 취지인 셈이다.
최대 피해자는 한 맺힌 유가족들국방부의 시행령 입법예고와 관련해서는 절차적인 문제점도 지적된다. 우선 국방부는 시행령 적용 당사자인 군의문사위의 의견을 듣는 절차를 전혀 밟지 않았다. 대통령령인 법제업무운영규정은 “법령안의 입안과 심사 및 공포 등 입법 과정 전반에 걸쳐 정부입법에 관한 협의·의견조정 기타 정부기관 간에 효율적인 업무 협조가 이루어지도록 하여야 한다”(11조 4항)고 밝히고 있지만 이를 무시한 것이다. 국방부는 또 1월2일 시행령을 입법예고하면서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한 의견 수렴 기간을 1월5일까지로 했다. 1월3∼4일이 주말인 점을 감안하면, 단 이틀 동안 홈페이지에 와서 개정안을 보고 의견을 남기라는 얘기인 셈이다. 통상적인 시행령 입법예고 기간은 20일 이상이다.
군의문사위 관계자는 “규정대로 당연히 우리 위원회와 협의를 거쳐 입법예고를 해야 했지만 국방부는 우리 위원회를 대화 파트너로 인정할 수 없다는 분위기”라며 “우리 위원회 운영에 관한 시행령 개정안을 국방부 홈페이지를 보고 확인해야 한다니, 서글픔을 넘어 창피함이 느껴질 정도”라고 말했다. 군의문사위는 지난 연말 국방부에 시행령 개정안 마련 단계에서 사전 대화가 필요하다는 공문을 보냈지만, 국방부는 이에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국방부 쪽은 책임을 위원회 쪽에 넘기고 있다. 국방부 관계자는 “계약직 조사관들과 재계약을 맺지 않은 채 자기 임기가 끝났다고 그냥 위원회를 떠난 위원장과 상임위원에게 제일 큰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청와대와 국방부 쪽에서는 예산이 50억원가량에서 40억원 정도로 줄어든 것에 맞춰 일부 계약직은 정리하고 나머지 계약직 직원들과 재계약을 맺도록 요청했는데, 위원회 수뇌부가 ‘계약직 직원 전원과 재계약이 안 되면 그 누구하고도 재계약을 할 수 없다’며 그냥 떠나버렸다는 것이다. 국방부는 ‘물갈이’ 자체에 대해서는 “국방부에서 마음대로 결정한 사안이겠냐”며 미묘한 태도를 보였다.
각각의 잘잘못이 어디까지이건 가장 큰 피해자는 한 맺힌 유가족들일 수밖에 없다. 실무 조사관들이 대거 그만둔 데다 중간 관리자들인 국장·과장·팀장들까지도 상당수 교체가 불가피해지면서 군의문사위의 연속적인 활동이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위원장과 위원 임명, 사무국장 내정 및 임명, 각 과장·팀장 인선을 거치는 데에는 최소 몇 주에서 2~3개월은 걸린다. 여기에 새로 뽑힌 조사관 교육과 업무수행력 등을 감안하면, 올 한 해 동안 군의문사위가 얼마나 제대로 된 조사 결과를 내놓을 수 있을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기존 군의문사위는 2006~2008년 3년 동안 395건을 처리했는데, 이 가운데 2006년 첫해에 처리한 사건은 10여 건에 불과하다.
위원장도 ‘청개구리 인사’ 가능성문제는 이게 전부가 아니라는 점이다. 새 위원장과 상임위원 임명이라는 진짜 ‘물갈이’가 아직 남았기 때문이다. 사실 위원회 조직이지만, 위원회 기본 활동 방향은 물론 개별 사건 진상규명 결정에서 위원장과 상임위원이 끼치는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이 지점에서 유족들과 과거사 단체에서는 비관적인 전망을 숨기지 않고 있다. 평소 인권과 거리가 먼 행보를 보여온 제성호 중앙대 법대 교수를 인권대사에 임명했듯이, 군의문사위 위원장·상임위원장 자리를 두고도 ‘청개구리 인사’가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유가족들과 과거사 관련 단체 관계자들이 군의문사위를 둘러싸고 돌아가는 일들을 두고 ‘죽 쒀서 × 줬다’고 말하고 다니는 이유이다.
이순혁 기자 h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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