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으로 어렵고 사회적으로 소외되어 있는 사람들이 뜻을 같이하고 힘을 한데 모아 스스로 자신들의 처지를 개선하고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만든 경제조직.’
법리다툼 “공무원 아니니 뇌물죄 아니다”
지난해 법정 구속돼 수감중인 정대근 전 농협중앙회 회장이 또다시 뉴스의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2006년 5월 정 전 회장이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법원으로 들어서고 있다. 한겨레 박종식 기자
백과사전에 나와 있는 협동조합에 대한 설명이다. 이익만을 좇는 ‘자본의 논리’를 따르는 대기업들과 달리 수많은 ‘개미’들이 모여 만든 경제 자치 조직이란 말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최고·최대의 협동조합인 농협중앙회에 대한 이미지는 이와 정반대다. 회원들인 농민들의 권익보다는 은행 등 신용부문 사업에 치중하고 있으며, 특히나 오랜 세월 이어져온 정부 통제까지 겹치면서 농민과 유리된 관료 기구라는 인식이 국민들 사이에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이런 농협에 대한 이해를 더욱 나쁘게 하는 일이 최근 벌어졌다. 대검 중수부(부장 박용석)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측근이라는 정화삼씨의 로비 의혹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뇌물의 몸통’ 가운데 하나로 정대근(64) 전 농협중앙회 회장이 등장한 것이다. 검찰은 정 전 회장이 2005년 세종캐피탈로부터 세종증권을 매입하면서 당시 세종증권 대주주였던 홍기삼씨로부터 ‘비싸게 매입해달라’는 청탁과 함께 금품을 건네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런데 그 액수가 무려 50억원! 이 혐의가 사실이라면 농협이 정상적인 가격보다 비싸게 세종증권을 매입해 입은 손해는 얼마란 말인가? 재벌도 아닌, 수십만 회원의 이익을 대표하는 ‘월급쟁이 회장’이 이런 거액을 받았다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사실 정 전 회장의 이력을 보면, 이런 뇌물 의혹이 그다지 이상해 보이지도 않는다. 정 전 회장은 지난해 7월 서울고법에서 농협중앙회 소유 서울 양재동 땅 285평을 현대차그룹에 팔면서 사례금 3억원을 받은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의 뇌물)로 징역 5년을 선고받아 수감 중이다. 사실 정 전 회장은 3억원 수뢰 자체보다, 재판 과정에서 보인 태도로 더 많은 구설에 올랐다. 정 전 회장은 현대차그룹으로부터 3억원을 받았다가 검찰 수사가 시작되자 다시 되돌려준 사실은 시인하면서도, “농협 임직원은 공무원이 아니기 때문에 뇌물죄 적용 대상이 아니다”라며 회장직을 유지한 채 검찰과 끈질긴 법리 다툼을 벌였다. 당시 정 전 회장 재판이 열리는 날이면 서울중앙지법 로비와 법정에는 10~20명의 농협중앙회 임직원들이 미리 나와 ‘회장님’ 안내와 영접을 맡는 등 재벌 회장 이상 가는 의전을 선보이곤 했다. 설령 법리적으로 뇌물죄(공무원 대상)가 아닌 수재죄(일반인 대상) 적용이 타당할지언정 부정한 청탁과 함께 3억원을 받은 사실이 확인된 만큼 회장직을 사임하는 것이 상식에 맞았지만, 정 회장은 끝내 자리를 내놓지 않다가 법정 구속되는 길을 택했다. 정 전 회장은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됐지만, 항소심에서 법정 구속됐고 지난해 12월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됐다.
재판 때마다 임직원 출동농협의 이름에 먹칠을 한 전직 회장님은 정씨뿐만이 아니다. 1987년 민주화운동의 결과 도입된 전국 1100~1200개 지역조합장들의 직선 투표를 거쳐 선출된 한호선(1988년 3월~1994년 3월 재임) 초대 민선 회장과 원철희(1994년 3월~1999년 3월 재임) 2대 회장도 수억원대의 비자금 조성 등 혐의로 수갑을 찼던 것이다.
1대와 2대 회장의 말로를 지켜본 3대 회장 정씨는 무슨 생각으로 전임자들의 전철을 밟았을까? 그 이유야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논란과 쌀 직불금 파동 등으로 가뜩이나 주름진 농심은 다시 한번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게 됐다는 점이다.
이순혁 기자 h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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