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의 한 지방자치단체가 시장의 선거공약을 무리하게 추진하면서 각종 부작용을 낳고 있다. 무소불위의 지자체 권력과 밥그릇이 필요한 공기업, 언론권력 등이 합작한 ‘권·언·공 유착’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고양시와 한국토지공사는 고양시 덕은동 일대 118만㎡(36만 평)을 수용해 방송영상시설 단지를 만드는 ‘브로맥스’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브로맥스 사업이란, 삼송지구(미디어힐)에 10만여 평, 덕은지구(미디어밸리)에 38만 평 등 고양시 4개 지구에 100만 평 이상의 땅을 확보해 방송영상 기업을 유치한다는 계획이다. 강현석 고양시장은 2006년 시장 선거 당시 공약의 하나로 브로맥스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고양시에 많은 방송사를 유치해 많은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게 그 이유다.
덕은동은 서울 상암DMC와 붙어 있는 곳으로 △37년 동안 그린벨트로 묶여 있던 취락지구 △고양시 유일의 준공업지역 △이전이 예정된 국방대학 터 등이 있다.
상암 DMC와 인접한 덕은동 일대 36만평고양시는 지난해 7월 이 일대를 미디어밸리로 개발하기 위해 도시계획을 세운 뒤, 같은 해 12월 이 지역에서 각종 개발행위를 3년 동안 제한한다고 고시했다. 미디어밸리 개발을 위한 토지 수용을 앞두고 건물 신·증축 등 보상 비용을 높이려는 행위를 막으려는 조처였다. 하지만 개발제한 고시 뒤 무더기로 건축허가를 내줘 투기를 조장했다는 의혹도 제기돼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경찰은 고양시가 도시계획을 확정한 뒤 5개월이 지나 개발제한을 고시한데다 고시 뒤에도 40여 건의 건축허가를 내준 사실을 확인했다. 경찰은 “해당 공무원과 건축설계사 간의 금품수수 여부에 대해서도 수사를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지역에는 이미 200여 채에 이르는 빌라와 창고가 들어섰다. 현지 주민들은 이 중 상당수가 보상을 노린 투기라고 주장하고 있다. 미디어밸리 개발이 진행될 경우, 수백억원에서 수천억원의 추가 보상비 지출이 불가피하다.
또 주민들은 강제수용에 반발하고 있다. 이러한 갈등은 공청회에서 잘 확인된다. 주민들은 자신들을 완전히 배제하고 밀어붙이기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며 지난 6월 토지공사와 고양시가 공동으로 열기로 한 공청회를 무산시켰다. 국토해양부의 권고에 따라 주민대표들과 고양시의 토론 방식으로 진행된 3차 공청회에서 주민대표들은 “고양시가 주민 의사를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지자체와 언론사의 부적절한 유착에 대한 의혹도 불거지고 있다. 지난 8월 매일경제미디어그룹 컨소시엄(매경컨소시엄)은 토지공사가 조성한 고양 삼송지구 내 39만2700㎡(11만9천 평)를 사들이는 계약을 체결했다. 토지공사는 매경컨소시엄에 평당 605만2천원씩 모두 6153억원에 계약을 했는데, 이 액수는 고양 삼송지구의 조성 원가인 평당 724만3천원의 83.6% 수준이다. 이 같은 결정에 대해 헐값·특혜 매각 의혹이 일었다.
예비사업자 토공 안내 공고 빈축덕은지구의 경우, CBS가 들어올 것이라는 얘기가 벌써 나돌고 있다. 김영복 고양시의회 의원(건설교통위)은 “지난 7월 시정 질의 때 ‘덕은지구에는 어떤 방송사가 들어오냐’고 질의하자 시장이 ‘CBS가 들어오게 돼 있다’고 답변했다”며 “지자체와 언론기관이 유착해 헐값에 땅을 팔고 사면 결과적으로 고양 시민들이 피해를 보게 된다”고 주장했다.
지난 4월엔 예비사업자인 토지공사가 지역본부장 이름으로 개발제한에 대한 안내 공고를 내걸어 빈축을 사기도 했다(사진). 당시 고양시와 토지공사가 정식 계약을 맺지 않은 상태여서 토지공사가 안내 공고를 내걸 권한이 없다는 비판을 받자, 부랴부랴 테이프로 토지공사 이름을 지우는 해프닝을 벌이기도 했다. 한 공기업 관계자는 “현 정부가 추진 중인 공기업 민영화는 토공과 주공을 통합하는 것이다. 민영화에 앞서 토공이 몸집을 더 키우기 위해 오히려 고양시를 부추기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토지공사는 “현재 고양시와 계약을 맺어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안내 공고는 실수였다”고 해명했다.
현재 경기도에서만 10여 개 지자체들이 영상테마파크·스튜디오·영상대학·오픈세트장·방송영상시설·영화촬영소·애니메이션단지 등 방송·영상 산업 유치를 시장 공약으로 추진하고 있다. 고양시와 김포시만 합쳐도 200만 평이 넘는다. 공약을 내건 지자체들의 면적을 모두 합치면 1천만 평 규모에 이른다. 부산이나 광주에 있는 방송사까지 이전한다고 해도 남는 물량이다. 경기도 전역이 방송영상산업단지로 가득 찬 이후의 사태는 짐작이 가능하다.
고양시의 경우도 야외 촬영장을 포함하더라도 수요에 견줘 너무 넓다. 이 때문에 그동안 사업 진척이 지지부진했다. 하지만 최근 고양시는 브로맥스 사업에 급피치를 올리기 시작했다. 여러가지 잡음과 무리수가 이어지는 가운데 고양시가 사업을 밀어붙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강현석 시장 공약 밀어붙이기윤성신 고양시 국제화전략사업본부장은 “고양시엔 공장은 물론 대학교도 지을 수 없다. 그래서 방송이나 영상을 선택했다. 미디어밸리는 상암DMC와 바로 붙어 있어 방송영상 분야에서 연계 효과도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양재수 고양시 도시주택국장도 “고양시는 인구 100만 명의 도시인데 산업시설이 없다. 먹고살 길이 있어야 한다. 100만 평도 넓지 않다. 방송사들이 줄서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영복 의원은 “현재 방송영상 기획사들이 3천 개 정도 있다. 하지만 대개 1억원 미만의 영세기업이다. 매경컨소시엄에 있는 기획사 2곳은 직원이 각각 5명, 7명이었다. 미디어밸리 바로 옆에 있는 상암DMC에도 빈 사무실이 많은 것으로 안다. 시장의 무리한 공약은 시정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선 2년 뒤 선거를 앞두고 가시적인 성과를 보여야 하기 때문에 강 시장이 공약 사업을 밀어붙이는 게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일본에선 지자체들의 ‘붕어빵’ 테마파크 열풍으로 지자체가 파산하기도 했다. 일본의 선례를 볼 때 경기도 지자체들의 무리한 방송·영상 사업 진출은 우려를 낳고 있다.
우리나라에선 민선 자치제 출범 뒤 단체장들의 선심성·업적 과시용 사업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 2006년 감사원은 지자체장들이 다가오는 선거를 의식해 무리하게 사업을 추진하면서 4200억원을 낭비했다고 지적했다. 자치단체 권한은 강화됐으나 효율적인 조정·통제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이 주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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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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