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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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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귀족계의 요지경 세상

역경매 방식 고리채 수준… 폭리 취한 계주·계원 과세해야
등록 2008-11-28 10:56 수정 2020-05-03 04:25

“이 기자, ‘다복회’에 대해 좀 아우?” 식탁 의자에 막 앉은 기자에게 그가 물었다. 일요일의 이른 저녁 약속 자리였다. 질문자는 한 대기업의 부사장급 임원. 멀뚱멀뚱하게 쳐다보는 기자에게 그는 “번호계랑 낙찰계는 아우?”라고 되물었다. 역시 눈만 끔뻑이는 기자.
“지금 다들 다복회 때문에 말도 아니라니까. ○○그룹 △△△ 부회장 부인이 거기 핵심 계원이래. 때문에 ○○그룹 임원 부인들이 줄줄이 가입했고. 다들 거액이 물렸다는 거지. 우리 회사에서도 지금 임원들 중에 부인들에게 ‘혹시 다복회 안 들었냐’고 추궁했다는 사람이 한두 명이 아냐. 경찰에서는 피해액이 2천억원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5천억원이 넘는다던데.”
언론에서 ‘강남 귀족계’라는 호칭을 붙여준 다복회에 대한 관심은 거기에서 시작됐다.

이른바 ‘강남 귀족계’라는 별칭을 얻은 다복회의 계주 윤아무개씨가 11월12일 저녁 서울 강남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있다. 윤씨는 10월27일 잠적했다가 다복회의 정체가 언론을 통해 드러나자 경찰에 자수했다. 연합 이상학

이른바 ‘강남 귀족계’라는 별칭을 얻은 다복회의 계주 윤아무개씨가 11월12일 저녁 서울 강남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있다. 윤씨는 10월27일 잠적했다가 다복회의 정체가 언론을 통해 드러나자 경찰에 자수했다. 연합 이상학

화려한 등장인물 소문 무성

다복회가 세간에 처음 알려진 것은 10월의 마지막 날이었다. 계주 윤아무개(51)씨가 잠적한 날은 10월27일. 이 사실을 알게 된 피해 계원들이 10월31일 대책회의를 열었다. 장소는 윤씨가 서울 강남구 도곡동 매봉역 인근에서 운영하던 한우전문점. 피해자들의 고소를 접수한 서울 강남경찰서는 11월1일부터 수사에 들어갔다. 현재까지는 250여 명의 피해자들이 2200억원을 물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계주 윤씨는 다복회 내부에 70여 개의 낙찰계를 운영했다. 계원은 적게는 11~12명에서 많게는 22~25명까지 다양했다고 한다. 윤씨는 계를 어떻게 운영했을까. 20개월짜리 2억원 낙찰계를 든 다복회 피해자 인아무개(58)씨의 증언이다.

“20개월에 2억원을 만들려면 매달 1천만원씩 넣어야 하잖아요. 근데 첫 두 달만 1천만원 넣고, 낙찰받은 사람이 생기게 되면 곗돈이 조금씩 줄어요. 그게 이자야. 900(만원)에서 850(만원) 되고, 나중에는 매달 650(만원) 정도만 넣으면 20개월 뒤에 2억원을 타는 거예요. 급전이 필요한 사람에게 선이자를 떼고 주니까, 그 이자를 우리가 나눠 먹는 거예요. 이자는 2부(연리 20%)나 되나….”

약육강식의 자본논리 관철

낙찰계는 급전이 필요한 이들을 상대로 한 사채에 가깝다. 윤씨는 일부 다복회 계원들에게 연리 50%에 가까운 고수익을 약속했다고 한다. 10여 년 전부터 낙찰계를 해온 경험이 있는 임인영(33·가명)씨는 ‘번호계’와 ‘낙찰계’의 원리를 이렇게 설명했다. 방식은 일정 곗돈을 매달 모으는 것과 매달 조금씩 곗돈을 줄여 받는 것이 있다. 번호계는 정해진 순서에 따라 곗돈을 받는다. 돈이 급한 사람이 앞선 순번을 신청한다. 순위가 빠를수록 할인폭이 크다. 위험을 담보한 후순위 계원은 그만큼 수익이 높다. 낙찰계는 후순위 계원의 수익성을 더 높인다. 매월 곗날에 가장 낮은 곗돈을 써낸 계원이 타게 된다. 경쟁입찰이다. 돈이 급할수록 금액은 낮아지게 마련이다.

10명의 계원이 매달 1천만원씩 곗돈을 부은 ‘따봉회’라는 낙찰계를 가정해보자(표 참조). 매달 곗날에 모이는 전체 곗돈은 1억원이다. 낙찰 금액이 낮을수록 남은 계원들의 이익은 커진다. 후순위 계원에게 50%가 넘는 이익을 주려면 선순위 계원들은 연리 50%로 깎인 곗돈을 받아야 한다. 곧부도 사장과 절박해 사장은 당장 현금을 마련하기 위해 5천만원과 5500만원을 써서 1·2순위로 돈을 받았다. 계원들이 거둔 이익은 1순위에서는 5천만원이다. 이를 9명의 계원들이 나누면 계원 1인당 555만원의 수익이 생긴다. 2순위에서 남은 4500만원을 8명이 나누면 1인당 수익은 562만원이다. 뒤로 갈수록 낙찰가는 높아진다. 맨 뒤의 강부자 사모와 나재벌 사장, 그리고 왕부자 부인은 연리 50%가 넘는 고수익을 얻을 수 있다.

임씨는 “낙찰계는 친목계들이 주로 하는 번호계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계”라며 “고수익을 남기려는 돈 많은 사람들과 급전이 필요한 사람들이 모인 계라서 서로 알지 못하는 이들로 구성된다”고 말했다. 이들을 낙찰계주가 잇는다. 매달 일정한 장소를 정해서 모이는 경우가 보편적이다. 계주가 계원들을 찾아가 돈을 걷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 계주가 쉽게 계원들을 속일 수 있다. 전체 계원이 몇 명인지를 아는 것도 계주뿐이다. 계원이 20명이라고 계원들에게 알리고, 실제로는 10명 정도는 유령인물이나 계주의 친인척들을 끼워넣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유령인물이나 계주의 친인척들이 타는 곗돈은 모두 계주의 몫이 될 것이다. 다복회에서도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했다는 것이 피해자들의 주장이다.

‘따봉회’ 낙찰계의 수익 구조(※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따봉회’ 낙찰계의 수익 구조(※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수십억 피해자들 고소 못하고 속앓이

문제는 ‘보이지 않는’ 피해자들이다. 다복회 창립(2004년) 초기부터 계원이었던 김아무개씨는 “사람들이 말을 안 해서 그렇지 피해 금액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9억원이 넘는 돈을 윤씨에게 물린 상태다. 김씨는 남편 명의의 아파트로 주택담보 대출 5억원을 받아 낙찰계에서 9억원을 만들었다고 했다. 김씨는 그 돈을 다시 윤씨에게 빌려줬다. 윤씨의 부탁으로 사채까지 끌어다 빌려줬다고 한다. 김씨는 “사채업자들에게 시달리다가 이제 이혼당하게 생겼다”며 한숨만 내쉬었다.

“근데 지금 윤씨를 고소한 사람들은 거의 2억~3억원 정도 피해만 입은 이들이 대부분인 것 같더라고요. 주변 계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20억원 이상 단위로 피해를 입었다고 하는데,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네요.”

20억원 이상의 거액 피해를 입은 이들은 고소도 못하고 속을 앓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거액을 보유한 사실이 외부에 드러나면 떳떳하지 못한 이들일 것이다.

다복회에서 거액의 돈을 누가 굴렸는지 관심이 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은 11월17일 다복회에는 공기업 전 사장 부인 J씨, 외교통상부 간부급 인사의 부인 S씨, 국정원 간부급 인사의 부인 L씨, 전 정보통신부 장관 부인 L씨 등이 포함돼 있다고 보도했다. 다선 국회의원의 사돈 S씨, 국회의원 부인 A씨 등 정치권 인사 부인과 친인척, H그룹 총수 가문이자 S기업 대표 부인인 S씨와 그 동생, W그룹 부사장 부인 등 재벌가 부인들도 다수 등록돼 있다고 신문은 보도했다. 리스트에는 전 경찰청장 부인 등도 포함돼 있었다.

이 리스트는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 강남경찰서를 취재하는 기자들이 피해자들의 증언을 모아 작성한 것이다. 명단은 실제와 다를 수 있다. 도 이 리스트를 입수했다. 이 인터뷰한 피해자들은 이 명단에서 트로트 가수 △△△씨, 개그우먼 □□□씨, 화장품 전문기업 창업주의 딸 ○○○씨 등을 직접 봤다고 증언했다.

20억원이 넘는 곗돈을 운용한 이들에 대해서는 철저한 수사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세금 때문이다. 이런 고액계는 이자소득세 걱정 없는 고소득 금융상품이다. 일종의 탈세다. 고위 공직자들이 재산신고를 할 때 현금 자산을 노출시키지 않으려 활용했을 가능성도 있다. 재벌가나 자산가들이 증여세를 내지 않고 배우자나 자녀들에게 거액을 손쉽게 건네는 방법도 될 수 있다.

낙찰계의 성격에 대해 대법원은 이렇게 판시했다.

“낙찰계는 계원이 조합원으로서 상호출자하여 공동사업을 경영하는 민법상 조합계약의 성질을 띠는 것이 아니라 계주가 자기의 개인사업으로서 계를 조직·운용하는 것으로서 상호신용금고법 제2조 소정의 상호신용계에 유사한 무명계약의 하나라고 할 것이다.”(대법원 1983. 3. 22. 선고 82다카1686) 계주가 개인 사업으로 계원 개인과 계약을 맺고 금전 거래를 한 것으로 본 것이다. 계약에 따른 거래니 과세 근거는 충분하다. 단, 국세청에서 지금까지 곗돈에 세금을 매긴 전례는 없다.

과세 전례 없어 국세청 엉거주춤

세무 전문가 안영민(38)씨는 “국세청에서 계에 대한 과세가 없었던 것은 개인 간에 이뤄진 계를 통한 소득내역을 알 수 없었기 때문”이라며 “이번 사건처럼 드러난 경우는 국세청에서도 본격적인 세무조사에 들어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소득세법 제127조에는 ‘국내 거주자나 비거주자에게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의 소득금액 또는 수입금액을 지급하는 자는 이 절의 규정에 의하여 그 거주자나 비거주자에 대한 소득세를 원천징수하여야 한다’고 되어 있고, 그 첫 번째가 이자소득 금액이다. 안씨는 “개인 간에도 소득금액(곗돈)을 지급하는 경우는 이자소득에 대해 원천징수 의무를 진다”고 말했다. 또한 대금업으로 신고하지 않은 개인이 금전 대여로 얻은 이익은 ‘비영업 대금의 이익’에 해당해서 세율이 25%에 이른다. 또한 곗돈을 탄 계원이 금융종합과세 대상이 되면 소득에 따라 누진으로 35%까지 세금을 내야 한다.

거액의 피해를 당한 이들에게 세금 운운하는 것은 야박한 일이다. 세금을 추징해야 할 사람들은 다복회에서 이익을 본 이들이다. 피해자 모임에서도 이들을 찾고 있다.

세금은 돈 번 금액만큼만 물면 된다. 따봉회의 경우를 보면 전체 원금(1억원)에 미달하는 1순위 곧부도 사장부터 4순위 급해요 사모까지는 세금을 낼 필요가 없다. 5번 돈필요 사장(590만원)부터 10번 왕부자 부인(3623만원)까지만 세금을 내면 된다. 국세청은 조심스럽다. 국세청 관계자는 “낙찰계와 일반 개인 간의 금전 거래는 다르다고 봐야 할 것”이라며 “낙찰계로 얻은 수익을 개인 간의 거래에 따른 이자로 봐야 할지, 사업자와의 거래에 따른 소득으로 봐야 할지에 따라 세율 등이 달라지므로 법률적인 검토가 먼저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태희 기자 hermes@hani.co.kr·최성진 기자 cs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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