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이(67) 부산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및 부산인권센터 공동대표는 지역에서 ‘인권운동의 대모’로 통한다. 20년 동안 인권 활동에 참여해왔다. 지난 1989년 동의대에 다니던 아들이 구속되면서 양심수 문제에 눈을 떴다. 민가협에 가입했다. 생계를 위해 운영하던 식당은 양심수 가족을 위한 사랑방으로 제공했다. 시국 사건이 터지면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요구하는 시위에도 참여했다. ‘어머니’가 할 수 있는 일의 최선이 그 정도였다.
그런 일이 ‘친북좌파 인사’의 요건이 될 줄은 이 대표도 몰랐다. 논란의 발단은 인권상이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그를 올해의 대한민국 인권상 훈장 수상자로 최종 추천했다. 개인과 단체 등 49곳의 후보자를 두고 인권위 내·외부 인사로 구성한 심사위원회가 숙의한 결과였다. 세계인권선언일인 12월10일이 수상 예정일이었다.
그런데 뉴라이트 단체와 보수 언론이 딴죽을 걸었다. ‘색깔론자’들은 언제나 삼단논법을 즐겨 쓰는데,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민가협은 친북좌파 단체인 통일연대 및 진보연대에 참여했다. 민가협에서 활동한 이정이 대표는 친북반미 인사다. 친북반미 인사는 대한민국 인권상 후보가 될 수 없다.” 비난 성명과 사설을 쏟아냈다.
그 다음에는 정부가 움직였다. 행정안전부는 이정이 대표를 정부의 훈장 심사 대상에서 제외했다고 11월20일 밝혔다. “이씨의 자격을 비판하는 언론 보도와 성명이 잇따르는 등 검증 과정에서 부적절하다고 판단했다”는 설명이었다. 최종 추천한 단수 후보자가 배제되는 초유의 일 앞에 국가인권위도 당혹감에 빠졌다. 인권단체연석회의는 이튿날 성명을 내고 “국가인권위의 독립성을 훼손하는, 인권에 대한 ‘사회적 물의’를 중단하라”며 정부를 규탄했다.
난데없는 논란 앞에 이 대표는 아직 말이 없다. 언론 접촉을 피하고 있다. 부산 시민단체 관계자는 “당사자가 직접 나서는 것 자체가 또 다른 빌미를 제공할까 걱정하고 계시다”고 전했다. “인권 향상을 위해 묵묵히 실천한 사람에게 주겠다고 만든 상을 이 대표 같은 분이 받지 못한다면 누가 적임자라는 것인지 궁금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양심수의 어머니, 국가인권위 그리고 인권이 함께 모욕당하고 있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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