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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 와해’ 꿈꾸다 구속된 사장

택시회사 대표가 ‘와해 전문가’ 고용해 노조간부 회유·협박… 구속은 이례적
등록 2008-11-07 16:32 수정 2020-05-03 04:25

이른바 ‘노조 와해 전문가’를 고용해 노조 상급단체를 민주노총에서 한국노총으로 바꾸려 했던 택시회사 대표가 구속됐다. 시대를 거슬러 오른 단어의 등장이다. 검찰이 노조활동에 개입한 업체 사장을 구속한 것도 이례적이다.
서울 동부지검 형사6부(부장 박균택)는 지난 10월29일 노조 와해 전문가를 영입해 노조위원장 등을 회유·협박한 혐의(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위반)로 택시회사 대표 윤아무개(58)씨를 구속했다. 또 윤씨의 부탁으로 노조 상급단체 변경에 나선 이 회사 전무 김아무개씨와 상무 천아무개씨는 불구속 입건됐다.

지난해 여름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최저임금법 쟁취 전국택시노동자 결의대회에서 참석자들이 정부에 현실적인 최저임금법 개정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 김현태

지난해 여름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최저임금법 쟁취 전국택시노동자 결의대회에서 참석자들이 정부에 현실적인 최저임금법 개정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 김현태

억대 성공 보수, 목표는 ‘한국노총 산하로’

윤씨는 지난해 7월 서울 송파구 마천동의 택시회사 ㄱ운수를 인수했다. 인수 당시 ㄱ운수에는 민주노총 소속 노동조합이 꾸려져 있었고, 회사는 택시기사들이 매일 벌어들이는 수입금 전액을 회사에 입금하고 매달 일정액을 월급으로 받는 ‘전액관리제’로 운영되고 있었다. 하지만 윤씨는 택시기사들이 사납금으로 하루 9만∼10만원 정도를 회사에 내고 나머지를 수입으로 가져가는 ‘정액제’로 운영되기를 바랐다. 주로 한국노총 소속 노조가 있는 회사에서 채택하는 이 방식은 업주 입장에서도 매달 고정적인 수익을 보장받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에 윤씨는 ‘전문가’의 힘을 빌렸다. 지난 1999년부터 서울의 한 운수업체를 시작으로 10년 가까이 운수업체에 근무하며 노조 와해 작업을 해온 김씨와 천씨를 간부로 고용했다. 윤씨는 이들에게 “노조 상급단체를 민주노총에서 한국노총으로 바꿔달라”는 부탁을 하며 3천만원 한도의 법인카드를 주고 억대의 ‘성공 보수’도 약속했다.

‘작업’을 시작한 전문가들은 지난해 9월 신입사원과 정년퇴직을 앞둔 사원 등 39명에게 “회사의 말을 듣지 않을 경우 강제 퇴직시키겠다”고 위협해 노조에 가입시킨 뒤, 두 달 뒤 노조총회를 소집해 상급단체 변경을 시도했다. 상무인 천씨는 노조간부이던 원아무개씨에게 “내가 민주노총 소속 노조를 몇 개나 깨부쉈는지 아느냐. 한 달 만에 59명을 해고한 적도 있다. 당신이 노조위원장이 돼서 노조 형태를 변경해달라”고 제의하며 120만원을 건네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의 작업이 민주노총에 알려지면서 지난해 12월 서울지방노동청에 고발이 접수된 뒤 검찰 수사에 이르게 됐다.

검찰 관계자는 “회사 쪽이 노조활동에 개입하는 것은 명백한 불법이며, 윤씨의 행위는 노사관계를 어지럽히는 비윤리적 범죄라 판단해 이례적으로 구속 조처를 했다”고 밝혔다.

이처럼 사주가 노조 활동에 개입했다가 구속된 것은 보기 드문 일이다. 택시업계에서도 노조 상급단체 변경 문제로 사주가 구속된 사건은 지난 2003년 12월 ㅂ상운 사건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당시 서울북부지검은 서울 강북구 미아동의 택시업체 ㅂ상운 대표 최아무개씨가 전 노조위원장에게 4500여만원을 건네는 등 노조 간부 4명에게 수천만원을 건네고 상급단체를 탈퇴하도록 한 혐의로 최씨와 노조 간부 등 5명을 구속한 바 있다.

“이런 일 비일비재… 열악한 택시노조”

이에 대해 구수영 전국운수산업노동조합 민주택시본부장은 “민주노총 소속 택시 사업장에서 정액제 문제로 상급단체 변경을 꾀하기 위해 회사가 부당하게 개입하는 일은 이전에도 불거졌던 문제들”이라며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날 만큼 택시업계의 노조 환경은 열악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김성환 기자 한겨레 24시팀 hwa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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