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적 병역거부란 말은 잘못됐다. 이것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비양심적이란 말이냐… 양심의 자유와 평화를 내세워 국가 안보에 대해 부정하는 것에 1%도 동의하지 못한다.”
유승민 한나라당 의원은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그리고 ‘반전’이 있었다. “그러나 까다롭고 구체적인 조건이 충족된다면 (병역거부자의) 대체복무 도입에 원론적 찬성이다.” 이날 스스로 “정형근·김용갑 전 의원이 국회를 떠난 이후에 가장 오른쪽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의원”이라고 말한 유 의원이 밝히는 ‘찬성’이라 의미는 더욱 컸다. 그가 제시한 까다롭고 구체적인 조건이란 “중증장애인의 수발을 들거나 한센병 환자를 돌보는 일같이 난이도가 높은 분야에서 현역 복무의 2배 이상 일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사실상 국방부가 지난해 발표한 대체복무제 추진 방안과 다르지 않다. 대체복무와 관련된 병역법안을 다루게 되는 국회 국방위 소속인 그는 “대체복무자의 쿼터제는 적당하지 않고, 사회복무제 전반을 관할하는 보건복지가족부가 이들을 관리하는 것이 맞지만 제대로 준비될지는 의문”이라고 세부안도 언급했다.
이런 발언은 10월28일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서 서울대 사회과학연구원(원장 김세균 교수) 주최로 열린 ‘양심적 병역거부 어떻게 할 것인가’ 공청회에서 나왔다. 이날 공청회는 병무청이 지난 8월 의뢰한 대체복무 연구용역 사업의 일환이다. 연구용역을 수주한 대전대 ‘진석용 정책연구소’가 사회과학연구원에 ‘사회 지도층 여론조사’를 다시 의뢰해 공청회가 열렸다. 국방부가 12월20일 완료되는 연구용역 결과에 바탕해 대체복무제 도입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해온 터라 이번 공청회는 주목을 받았다.
이날 사회과학연구원은 지난 10월1~22일 554명(국회의원 51명·변호사 30명·교수 99명 등)을 대상으로 조사한 ‘대체복무제에 대한 사회 지도층 의식조사’를 발표했다.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85.5%가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감옥에 보내는 현 제도는 개선돼야 한다’고 답했고, ‘대체복무제 도입은 시기상조’라는 항목에 19.8%만이 찬성 의사를 밝혔다. 다만 국회의원만 놓고 보면, ‘대체복무제 도입은 시기상조’라는 의견이 31.4%(한나라당 35.5%·민주당 21.4%)로 다른 집단에 견줘 높았으나 과반엔 훨씬 못 미쳤다. 이어 전체 응답자 85.0%는 ‘대체복무제 도입이 한국 인권 향상에 큰 역할을 할 것이다’라는 의견에 동의했다.
대체복무에 대한 구체적 질문도 있었다. ‘대체복무 허용 사유’에 대해선 74.8%가 ‘종교적 신념을 포함한 반전 평화주의 신념’까지 포함해야 한다는 태도를 보였다. 이렇게 되면 여호와의 증인이 아닌 반전 평화주의 병역거부자도 대체복무 대상에 포함된다. 대체복무 기간에 대해선 ‘현역 복무의 1.5배 이내’(44.9%)가 다수를 차지해, 국방부가 지난해 발표한 대체복무제 추진 방안의 ‘현역 복무의 2배’와 차이가 있었다. 다만 국회의원의 경우엔 ‘현역 복무의 2배 이내’(33.3%)가 ‘현역 복무의 1.5배 이내’(33.3%)와 같은 다수를 차지했다. 대체복무자가 일하기에 가장 적합한 분야로는 ‘양로원, 요양원 등 사회복지기관에서 근무’(75.3%)가 ‘소방서, 주민자치센터 등 공공기관에서 근무’(11.2%) 등보다 훨씬 많았다. 이날 조사결과를 발표한 사회과학연구원 공석기 박사는 “응답자 전반이 대체복무제 도입에 대해 적극적이지만, 국회의원들은 대체복무제의 구체적 형태와 기간에 대해 조심스런 견해를 보였다”고 평가했다. 한편 대체복무를 둘러싼 ‘고전적’ 우려를 반영한 질문도 있었다. ‘대체복무가 장병들의 사기를 저하시킨다’는 질문엔 반대 의견이 59.8%를 차지했다.
이날 새로운 관점의 발제문도 나왔다. 한국은행 정책기획국 민준규 박사는 발제문 ‘양심적 병역거부의 경제학’을 통해 국가규제(처벌)와 병역거부에 실증적으로 접근했다. 민 박사는 “병역거부 문제에 대해 그동안 규범적·이념적 논의에 치우쳐 있었다”며 “미시경제학적 접근을 통해 실증적 분석을 시도했다”고 말했다. 우선 그는 병역거부자 처벌 강도(수감 기간)가 달랐던 시기를 5개로 나누어, 각 시기마다 병역거부자 수를 비교했다. 이 통계를 보면, 병역거부자 수감 기간이 1980~93년 평균 23.4개월에서 1994~2000년 35개월로 늘었지만, 병역거부자는 연평균 205명(1980~93년)에서 566명(1994~2000년)으로 오히려 늘었다(그래프1 참고). 이렇게 형량을 늘려도 병역거부자 수는 줄지 않았고, 형량을 줄여도 병역거부자 수는 늘지 않는 ‘비탄력성’이 드러났다. 민 박사는 “이렇게 병역거부자 처벌은 범죄 예방효과가 없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징병제를 실시하는 71개국의 병역거부자에 대한 국가규제(처벌)와 여호와의 증인 성장세를 비교했다. 분석 도구로 ‘병역거부자 처벌 정도’ ‘대체복무 인정 여부’ 등 10개의 계량 가능한 변수를 종합해 ‘병역거부 관용지수’(COTI·숫자가 클수록 높은 관용도를 나타냄)를 만들었다. 전세계 병역거부 수감자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한국의 COTI 지수는 0.28로 아프리카의 제3세계 국가들과 더불어 최저 수준을 보였다. 반면 독일(9.38), 덴마크(9.29) 같은 나라가 높은 COTI 지수를 보였고, 한국과 안보 상황이 비슷한 대만(3.13)도 비교적 높은 관용도를 보였다. 이렇게 COTI 지수와 여호와의 증인 성장세를 비교해보니, 관용도가 높을수록 오히려 여호와의 증인 성장세는 낮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그래프2 참고). 병역거부자의 대체복무를 허용하면 여호와의 증인이 늘어날 것이란 생각과 오히려 반대인 것이다.
이날 병무청 연구용역을 수행 중인 진석용 대전대 정치언론홍보학과 교수가 발제자로 나와 주목을 끌었다. 진 교수는 발제문 ‘양심적 병역거부의 현황과 법리’를 통해 한국 병역제도부터 국제 인권규범까지 다양한 쟁점을 짚은 뒤 “시민사회는 대체복무제 도입을 청원하고, 학계는 인권 문제를 논증하고, 법원은 무죄판결을 내리고, 국제사회는 압박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2005년 병무청이 의뢰한 병역제도 관련 연구에서 공익근무요원 제도 같은 현행의 대체복무는 문제가 많으니 차라리 폐지하고,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가 오히려 필요하다는 견해를 밝힌 바 있다. 진석용 교수팀은 현재 복지기관에 대체복무 수요를 묻는 실사 작업을 진행 중이고, 앞으로 국민 여론조사도 할 계획이다. 이날 공청회에 토론자로 참석한 김명세 육군발전협회 사무총장, 최삼경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목사는 여전히 반대의 목소리를 냈다. 그래도 ‘결정적 시간’은 흐르고 있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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