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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노동자에 의자를’ 캠페인 확산

등록 2008-09-04 00:00 수정 2020-05-03 04:25

국민캠페인단 발족 뒤 노동부와 국회의원들도 힘 보태… 사업주들의 관심은 여전히 요원

▣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

모든 직원이 반듯한 정자세로 하루 10시간을 서서 일하는 백화점. 좁은 계산대와 쉴 곳 없는 매장에 종일 서 있으면서도 웃음과 친절 강박에 시달려야 하는 할인점. 이곳에서도 이제 의자에 앉아서 일하는 노동자를 만날 수 있을까. 7월22일 ‘서비스직 여성 노동자에게 의자를 주자’는 국민캠페인단이 발족하고, 이 관련 기사(725호 인권 OTL⑬-여성노동자는 앉고 싶다)를 쓴 뒤 ‘의자 캠페인’이 노동부와 정치권 등의 공감대를 얻으면서 확산되고 있다.

의자 비치 조항, 법률로 규정해야

8월28일 서울 영등포역 앞. ‘서비스직 여성 노동자에게 의자를 주자’는 캠페인을 벌이는 국민캠페인단이 거리에 의자를 놓고 시민들에게 앉아볼 것을 권하고 있었다. 캠페인에 동참한 곽정숙 민주노동당 의원은 “1시간 서 있었을 뿐인데 정말 다리가 아프다”며 “하루 8시간 이상을 서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의자는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의자 캠페인’은 노동부로도 번져갔다. 노동부는 지난 8월7일 민주노총 등 국민캠페인단 대표들과 간담회를 연 뒤 8월20일 ‘서서 일하는 근로자 건강보호 대책’을 내놓았다. 9월 한 달 동안 백화점, 할인마트 등의 사업주를 대상으로 사업장에 의자를 비치하고 노동자들이 이를 이용할 수 있도록 홍보할 방침이다. 이밖에 노동자 300인 이하의 소규모 사업장에 대해서는 2009년부터 서서 일하면서도 때때로 앉을 수 있는 입좌식 의자(지지대)를 보급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김정연 노동부 근로자건강보호과 사무관은 “오랜 시간 서서 일하는 것이 다리의 피로, 부종, 통증 및 하지정맥류, 요통 등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은데, 여성 고용이 많은 서비스업을 중심으로 서서 일하는 노동자가 많아 이들에게 의자를 줘야 한다는 캠페인의 취지에 공감했다”고 말했다. 김 사무관은 “이미 산업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제277조에 ‘사업주는 의자를 비치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고 이를 지키지 않을 경우 5년 이하 징역이나 5천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는 처벌조항도 있는데, 아직 이를 모르는 사업주들이 많다”고 말했다.

여성 국회의원들도 힘을 보탰다. 김상희·최영희 민주당 의원과 곽정숙·이정희 민주노동당 의원 등 4명의 여성의원들은 8월27일 국회 정론관에서 “의자 캠페인을 지지한다”는 공동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민주당 및 민주노동당의 정책검토를 거쳐 서서 일하는 노동자에게 적정한 휴게시간 및 휴게시설을 보장하고 의자를 제공하는 법안을 만드는 입법적 논의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규칙으로 되어 있는 ‘의자 조항’을 법률로 끌어올려 강제력을 더하겠다는 얘기다. 노동부의 관리·감독 기능도 강조했다. 김상희 의원은 “노동부가 비교적 빠른 대책을 내놓았지만 지금은 홍보에 치중돼 있으므로 사업장 관리·감독 기능을 강화해서 현재 있는 산업보건기준이 잘 지켜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업체, 캠페인단 질의서에 묵묵부답

정작 사업주들의 관심은 여전히 요원하다. 국민캠페인단은 지난 7월25일 백화점협회와 편의점협회를 비롯해 롯데백화점, 신세계백화점, 현대백화점, 갤러리아백화점 등 17개 사업장과 관련 단체에 △사업장에 의자 비치 여부 △의자 비치 계획 등을 묻는 질의서를 보냈다. 그러나 한 달이 지나도록 답변을 보내온 업체는 단 한 군데도 없었다. 정미정 민주노총 여성부장은 “의자 캠페인이 실효를 거두기 위해서는 사업주의 적극성과 ‘앉아서 일하는 서비스 노동자’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국민적 의식,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아야 한다”며 “이를 위해 지속적인 캠페인과 관련 입법 촉구, 사업장 관리·감독 등에 신경쓸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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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OTL-30개의 시선⑬] 여성 노동자는 앉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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