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평화를 상징하는) 올리브 나뭇가지와 해방전사의 총을 들고 이 자리에 섰다. 내 손에서 올리브 가지가 떨어지지 않도록 해달라.” 1974년 가을 유엔 총회장에서 연설에 나선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의장은 전세계를 향해 이렇게 외쳤다. 역사에 길이 남을 명연설로 기억된다. 그럴 법도 하다. 연설문을 작성한 이가 ‘팔레스타인의 계관시인’이라 할 마무드 다르위시였다.
현대 아랍문학이 낳은 최고의 시인으로 꼽혀온 마무드 다르위시가 8월9일 미 텍사스주 휴스턴의 한 병원에서 심장 수술 후유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67살. 여느 아랍 남성과 마찬가지로 지독한 애연가였던 그는 오랫동안 심장질환에 시달려왔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2004년 아라파트 초대 대통령 사망 이후 처음으로 국장에 준해 그의 장례식을 엄수했다.
다르위시는 1941년 한적한 갈릴리 호숫가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일찌감치 사회에 눈을 뜬 시인은 1960년대 이스라엘 공산당에 가담했으며, 1970년대 초반 유학길에 올라 모스크바대학에서 1년여 수학하기도 했다. 이후 이집트와 레바논 등지에서 언론인으로 활약하던 그는 1973년부터 팔레스타인해방기구에 참여했다. 그는 1993년 오슬로평화협정에 반대해 해방기구와 결별하기 전까지 집행위원으로 활동했으며, 1988년엔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건설을 위한 선언문’을 작성하기도 했다. 1960년대 중반부터 시인으로 이름을 떨치기 시작한 그의 대표작으론, 팔레스타인 민중의 분노와 아픔을 형상화한 ‘신분증’이 단연 첫손에 꼽힌다.
“적어둬라!/ 나는 아랍인/ 내 등록번호는 50000번이다/ 아이가 여덟이고/ 아홉 번째 아이가 올여름 태어난다/ …적어둬라!/ 나는 아랍인/ 내게 직함 따윈 없다/ 인내하라, 그곳/ 분노한 이들이 사는 곳에선. …내게 증오는 없다/ 남의 권리를 앗을 마음도 없다/ 하지만 내가 굶주린다면/ 착취자의 살점이 내 밥이 되리라/ 조심하라/ 조심하라/ 내 굶주림을/ 내 분노를.”
해방기구 탈퇴 이후 정치권과 절연한 채 생활해온 다르위시는 간혹 이렇게 탄식한 것으로 전해진다. “한때 시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다. 역사를 바꾸고, 더 인간적인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하지만 이제는 안다. 시가 바꿀 수 있는 건 고작해야 시인 자신뿐이란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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