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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아·이경주·김지영] 역사 교사 삼총사의 방학숙제

등록 2008-02-15 00:00 수정 2020-05-03 04:25

▣ 히로시마=글·사진 황자혜 전문위원 jahyeh@hani.co.kr

일본 오사카 재일동포 집단 거주지역 쓰루하시와 이쿠노에서 그들을 만났다. 고대 한-일 교류의 유산인 다이센 고분에서도, 히메지성과 오카야마 기노성에서도, 그리고 히로시마 원폭 평화기념자료관에서도 그들을 볼 수 있었다. 한국에서 온 역사 교사 ‘미녀 삼총사’ 조정아(33·고양 백양고)·이경주(30·남양주 퇴계원고)·김지영(31·부천 북여중) 교사(사진 왼쪽부터)가 일본 열도를 휘젓고 있다.

대학 선후배 사이인 ‘삼총사’가 일본을 찾은 건 전국역사교사모임에 딸린 ‘한-일 교류위원회’가 ‘전쟁과 평화-바다를 건너간 사람들’이란 주제로 마련한 겨울방학 연수에 참가하기 위해서다. 교류위는 지난 2001년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 사태를 계기로 한-일 두 나라 역사 교사들이 6년여 작업 끝에 내놓은 (사계절출판사)의 산파 구실을 했다. 이번 연수는 “두 나라 역사 교사들이 고민을 나누는 자리”였단다.

“우리가 쓰는 교과서가 일본 학생들이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 없게 만들거나, 일본에서 쓰는 교과서가 한국 학생들을 분노하게 해선 안 된다.” 맏언니 조정아 교사는 “역사를 가르치는 교사이면서도, 무의식적으로 일본 하면 제국주의와 등치시켜버리곤 했다”며 “두 나라 학생들이 아시아 지역 공동체란 관점에서 마주 볼 수 있는 책이어야 한다는 일본 쪽 교사들의 지적에 적극 공감했다”고 말했다.

자이니치(재일동포) 시민운동가들도 만나고, 민족학교도 둘러봤다. 김지영 교사는 “실제 자이니치를 만난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다. 그는 “일본 사회의 차별과 민족 정체성에 대한 자이니치의 고민을 들으면서 ‘민족’이란 틀을 넘어 ‘인권’을 떠올리게 됐다”며 “우리나라도 다양한 국적의 학생들이 많아지는 상황에서, 역사 교사의 역할이 무엇인지 새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막내 이경주 교사는 아예 민족학교 강단에 섰다. “역사 교사임에도 자이니치에 대해 잘 모른다고 학생들에게 털어놓고 수업을 시작했다. 제주 4·3 항쟁 등 해방공간에서 시작해 4·19 혁명과 5·18 광주항쟁, 그리고 1987년 6월항쟁까지 한국의 민주화 운동에 대해 얘기를 이어가자 아이들의 눈망울이 초롱초롱해졌다.” 한겨울 추위를 함박웃음으로 녹이며, ‘삼총사’가 학생보다 열심히 ‘방학숙제’에 열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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