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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만 좋았던 거위의 꿈

등록 2007-12-07 00:00 수정 2020-05-03 04:25

연구인력은 애초 규모에서 20분의 1로 줄어들고 출자액은 20분의 1도 안 돼

▣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한독산학협동단지’(이하 한독)를 둘러싼 토지 ‘사기 분양’ 의혹의 핵심은 한독이 과연 독일의 인력과 자본을 끌어와 애초 만들겠다고 말한 ‘한독연구단지’(이하 KGIT)를 만드는가 여부다. 답부터 말하자면, 서울시와 한독은 이번 사태를 적절한 선에서 봉합하기 위해 KGIT를 만들기는 할 것이다. 그러나 애초 한독이 만들겠다고 공언한 규모나 형태는 아니다.

1~2층은 은행 증권사 임대

KGIT는 현재 어느 정도까지 진척돼 있을까? KGIT는 교육기관이기 때문에 먼저 학교법인을 설립해야 한다. 한독은 2005년 8월30일 대표이사 윤여덕씨를 이사장으로 둔 진명정진학원이라는 학교법인을 설립했다. 진명정진학원은 2007년 2월28일 교육부에 “대학원 대학을 만들겠다”고 신청서를 내지만 “교육과정 운영을 위한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방안이 부족하고, 독일과의 공동학위 과정의 현실화를 입증할 만한 구체적인 계획이나 자료가 없다”는 등의 이유로 넉 달 뒤인 6월29일 불가 통보를 받았다. 학교 건물은 서울 양천구 목동 905-27번지에 있는 5층짜리 건물로, 11월22일 취재진이 찾아가보니, 1~2층은 은행과 증권사에 임대돼 있고, 연구소가 들어가게 돼 있는 3~5층은 텅 비어 있었다.

서울시가 한독 사태를 어느 정도 선에서 마무리할 것인지 예상할 수 있는 단서는 있다. 한독은 2007년 8월19일 오후 6시 본점 5층 회의실에서 이사회를 열어 서울시에 제출할 이행각서를 확정짓는다. 한독은 각서 2조 이행사항에서 독일대학컨소시엄(KDU) 및 독일 연구단체 등이 제공하기로 한 연구 인력과 연구 기자재를 확보·유지해야 하는 최소한의 선을 못박고 있다. 즉, 2007년까지 독일 쪽 연구 인력 16명, 한국 쪽 연구 인력 32명을 확보하는 것을 시작으로 2010년에는 그 수가 각각 독일 50명, 한국 100명으로 늘어난다. 한독은 2002년 서울시에 넣은 사업지원서에서 교수급 연구자 240명, 연구 인력 2400명 규모의 연구소를 만들 계획을 밝혔다. 애초 규모에서 20분의 1에 가깝게 줄어든 것이다.

연구 기자재도 마찬가지다. 한독은 KDU가 2억유로, 우리 돈으로 2400억원 정도의 연구기자재를 현물 출자할 계획이라고 밝혔지만, 서울시에 제출한 이행각서에서는 2012년까지 1124만달러 수준을 유지하기로 목표치를 낮췄다. 20분의 1 수준에도 못 미친다.

마지막 남는 의문 하나. 한독이 주장하는 KDU는 실체가 있을까? 독일 학자들이 모인 비영리 법인으로 실체가 없는 것은 아니다. KGIT의 총장으로 내정된 호르스트 텔칙(67)은 보잉사의 독일지사 사장과 뮌헨 안보정책회의 의장을 지내기도 했다. 정순구 서울시 산업국장은 10월29일 국회 건설교통위원회 서울시 국감에서 “2006년 11월 독일에 가서 뮌헨공대 부총장, 취리히 조형예술대학 부총장, 펄프스 프라운호퍼 재단 연구소장 등을 만났다”고 말했다.

독일대학컨소시엄(KDU)의 실체는

진명정진학원 관계자는 “독일에서 10여 명의 연구진이 입국해 IT(정보기술), BT(바이오기술), AT(아트 테크놀로지), e러닝 등 4개 연구소를 지난해 출범시켰다”고 말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의도는 좋았지만, 의욕이 너무 앞섰던 사업”이라고 한독의 KGIT 사업을 평가했다. 좋았던 의도가 그동안 한독이 저지르고 서울시가 거들어준 여러 비상식적인 행위를 정당화할 수는 없는 일이다. 남은 것은 법의 판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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