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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장에 고가 동백 심군 뜻은

등록 2007-10-12 00:00 수정 2020-05-03 04:25

유홍준 문화재청장이 강진군에 준 고지도 답례, 미담일까 괴담일까

▣ 부여=글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미담일까, 괴담일까? 유홍준 문화재청장이 전남 강진군수로부터 200여만원에 달하는 동백나무 두 그루를 선물받은 것을 놓고 문화재계에 뒷말이 돌고 있다.

수령 30년 된 200여만원짜리

유 청장과 강진군, 문화재 시민단체들의 말을 모아보면, 유 청장은 지난 3월 말 또는 4월 초 강진군수로부터 수령 30년 된 동백나무를 선물 받아 지난해 봄 신축한 자신의 부여 별장 앞 마당에 심었다. 문제는 유 청장의 처신이 고위 공직자로서 적절했는지 여부다. 현행 공무원 행동강령은 “공무원은 직무 관련자 또는 직무 관련 공무원으로부터 통상적인 관례의 범위 안에서 제공되는 소액의 선물을 제외한 금전, 부동산, 선물 등을 받아서는 아니된다”고 못박고 있다. 강찬석 문화유산연대 대표는 “수백만원의 선물을 버젓이 자신의 별장 앞마당에 심은 유 청장의 공인으로서의 의식에 개탄한다”며 “이는 공무원 행동강령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유 청장의 단출한 별장이 들어선 곳은 충남 부여군 외산면 반교리의 땅 두 필지로 한 필지는 2005년 10월11일에, 다른 필지는 이듬해 4월7일에 사들였다. 유 청장은 이 터에 2006년 봄 ‘休休堂’(휴휴당)이라는 당호가 붙은 맞배지붕으로 된 여덟 평짜리 한식 기와집과 네 평짜리 창고를 지었다. 취재진이 별장을 둘러보니 문제의 동백나무 두 그루는 별장 본채의 정면에 나란히 자리한 것으로 확인됐다.

강진군 관계자는 “유홍준 청장이 귀한 유럽의 고지도를 기증해 그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로 군수께서 동백나무를 선물했다”고 밝혔다. 유 청장은 지난 1993년 펴낸 저서 첫째 권에서 ‘남도 답사 1번지’로 강진을 소개해 강진군의 관광 산업 발전에 큰 기여를 했고, 1996년 9월16일 강진 명예군민으로 위촉되기도 했다.

동백나무가 뒷말을 낳고 있는 것에 대해 유 청장 쪽은 한 마디로 “황당하다”고 반응한다. 유 청장은 “동백나무를 선물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내가 강진군 쪽에 선물한 고지도 두 점에 대한 답례 형식으로 전혀 문제될 게 없다”고 해명했다. 유 청장은 올초 노무현 대통령의 유럽 순방길에 따라 나섰다가, 이탈리아 로마에서 18세기 유럽인들이 그린 시가 1천만원 정도의 아시아 고지도 두 점을 구입했다. 유 청장은 “마침, 강진군 쪽에서 하멜 전시관을 만든다는 소식을 듣고, 구입한 고지도를 선물로 기증했다”고 말했다.

강진은 네델란드인 하멜이 우리나라에 표류한 뒤 8년 동안 머물렀던 곳으로, 군은 병영면 성동리 일대에 사업비 36억원을 들여 기념관 개관을 준비하고 있다. 유 청장은 “강진군수 쪽에서 지도를 사겠다는 것을 내가 만류했다”며 “국가에서 지도를 직접 구입하려면 가격 심의를 받아야 하는 등 절차가 복잡해 좋은 물품을 살 수 없다”고 말했다. 유 청장은 3월22일 지도를 기증했고, 강진군과 ‘강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쪽에서 동백나무를 답례품으로 준 것은 3월 말~4월 초께다. 유 청장은 “내 주변에 나를 헐뜯는 사람들이 많다”며 “이번 사안은 강진군과 나 사이의 미담”이라고 주장했다.

“고위 공직자에 어울리지 않는 처신”

그러나 강찬석 대표는 “어찌됐건 직무 관련자로부터 수백만원짜리 선물을 받는 것은 고위 공직자로서 어울리는 처신이 아니다”고 말했다. 유 청장은 그동안 정부 예산으로 자신의 저서를 사들이거나, 사적으로 지정된 왕릉 안에서 고기 불판을 동원해 요리를 해먹는 등 공사를 구별하지 못하는 모습으로 잦은 구설수에 올랐다. 문화재계의 한 인사는 “유 청장에 대한 문화재계의 불신이 깊어 모든 일에 이렇게 뒷말이 나온다”고 말했다. 유 청장을 둘러싼 고지도와 동백나무 논란, 미담일까 괴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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