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히로시마=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학교에 오르려면 작은 여행을 떠나는 것 같은 결심을 해야 한다. 신칸센 히로시마역에서 10분쯤 북쪽으로 걷다가 저만치 손에 잡힐 듯하게 서 있는 언덕을 바라보면 ‘히로시마 조선학원’이라고 쓰인 커다란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옆에 민가를 낀 좁은 산비탈을 다시 10분쯤 오르니, 그 학교의 교장 선생님인 이일열(51)씨가 웃는 얼굴로 일행을 맞았다. 학교의 공식 명칭은 히로시마 조선학원이지만 아이들은 학교를 그저 ‘우리 학교’라고 불렀다. 본관은 경주 이씨고 그의 할아버지의 고향은 경북 김천이라고 했다. 11년 된 학교는 아담하고 깔끔해 보였다.
‘우리 학교’들의 교세는 점점 줄어드는 추세다. 히로시마에도 예전에는 10개가 넘는 ‘민족 학교’가 있었지만 1996년께 여기 한 곳으로 통폐합됐다. 그나마 이웃인 오카야마·시마네·도토리·야마구치, 그리고 바다 건너 시코쿠의 ‘우리 학교’에서는 고등학교 과정을 가르치지 않는다. 그래서 고급부로 진학하려는 ‘우리 학교’ 학생들은 모두 히로시마로 몰려온다. 유치원에 다니는 네 살부터, 대학 진학을 앞둔 열여덟 살까지 모두 181명의 학생이 민족 교육을 받고 있다.
‘우리 학교’들은 예측하기 어려운 남북·북일·북미 관계의 변화에 따라 요동친다. 납치와 미사일 파문이 불거지기 전만 해도 일본 학교들과 교류가 잦았지만, 지금은 발길이 뚝 끊겼다. 일본 우익들의 크고 작은 해코지도 끊이지 않는다. 그래도 이 교장은 앞날을 낙관하는 편이다. “최근 들어 6자회담 전망이 좋아졌습니다. 6~7월에 아이들을 데리고 공화국에 수학여행을 갔는데, 남북 교류가 활발했습니다. 통일이 성큼 다가왔다는 느낌이었죠.”
그는 평양 문화어를 썼다. 최근 들어 히로시마 일교조(일본의 전교조)와 대구 전교조의 교류가 이어지면서 대구 사람들을 자주 만났고 경상도 사투리를 배우게 됐다. 그래서 지금 그는 경상도 억양이 묻어 있는 평양 문화어를 구사한다. 결국 서울 사람이 부산에 가면 부산 사투리를 쓰게 되며, 평양 사람이 광주에 가면 광주 사투리에 전염된다. “결국 한 민족 아닙니까. 차이란 그저 사투리인 거죠.” 이일열씨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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