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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오키 야스유키] 광주가 길을 알려주었지요

등록 2007-04-13 00:00 수정 2020-05-03 04:24

▣ 도쿄=황자혜 전문위원 jahyeh@hanmail.net

“그럼 저는 475세대가 되나요?” 일본 굴지의 주말판 아오키 야스유키(48) 편집장. 한국 민주화운동의 주역을 이르는 ‘386세대’라는 말에 자신을 빗대며 묻는다.



그와 한국 사회를 이어준 끈은 5·18 광주 민주화 항쟁이었다. 사내 자료실에서 복사해온 1980년 당시의 1면을 보여주는 그의 손길과 눈빛에서 그때 받은 충격이 그대로 전해지는 듯했다. 그 충격은 이듬해, 일본에서 ‘광주사건’이라 일컬어지는 한국 현대사의 현장으로 그를 이끈다. 와세다대학 정치경제학과 졸업을 앞두고 밟은 광주 땅. 일본으로 돌아오면 아사히신문사 입사가 결정돼 있는 상황이었다. “아마도 광주 민주화 항쟁이 내 직업 선택에 영향을 끼쳤을 겁니다. 스스로 이런 말을 하기가 부끄럽지만, ‘약자의 편’에 선다는 어떤 정의감이 살아 있는 시대였으니까요.”
1977년 대학에 들어간 그는, 70년대 사회적 분위기와 37년이 지난 지금의 일본 사회를 ‘빵과 서커스’라는 말로 압축한다. “사회가 어느 정도 성숙한 것도 사실이지만, 먹을 것이 있고 자기가 즐길 것만 있으면 더 이상 정치의식은 없어도 된다는 생각이 만연해 있지요. 엄중히 따지거나, 분노하거나, 활동할 필요성을 못 느끼는 사람이 많아진 것도 그 때문이죠.”
북한의 핵실험 문제에 대해선 “정부는 난리법석이지만 일반인들은 어떤 절박함과 긴급성을 느끼지 않아요. 정말 미사일이 날아올 거라 생각지도 않고. ‘독도’에 대해 아는 사람이 얼마 전까지만 해도 별로 없었고 관심을 갖지도 않는 건 역시 일본과 한국, 가해자와 피해자의 차이라고 해야겠죠.” 그는 인터넷의 보급으로 활자신문이 ‘낡은 것’으로 여겨지고 있으나 신문이야말로 가장 ‘냉정한’ 매체로서 자기 역할을 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는 기억에 남는 한 한국 기자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광주의 숙소에서 일본이 전쟁을 일으킨 것에 대해 분석한 진보적 정치사상 연구가 마루야마 마사오의 책을 읽고 있는 사람을 만났다. 일본 특파원의 이력을 지닌 대선배였다. 서울 집까지 초대되어 한국의 일반 가정요리까지 맛보고 나서 신세 갚을 길을 묻는 그에게, 한국 기자는 자신이 일본에 있을 때 신세진 이웃 분에게 선물을 전해달라는 소박한 부탁을 했다고 한다. 그는 특유의 밝고 진지한 말투로 “전두환 정권 시절의 삼엄한 분위기 탓이었는지도 모르지만, 존함도 기억 못하고 어느새 그때 그분의 나이가 되었다”고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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