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쓰레기 소각장 광역화’ 사업 첫 대상지인 양천구 주민들의 분노…“목동 쓰레기만 처리” 약속도 어기고 다이옥신 수치도 조작해 불신 팽배
▣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우리 사회에서 공공 갈등이 발생하고 정리되는 과정은 대개 비슷비슷하다. 국가는 국민들의 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정책을 입안한다. 대화가 시작되는 것은 정책 결정이 끝나고 이를 집행하는 단계에서다. 국가는 주민 보상과 같은 기술적인 문제들이 대화의 의제가 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주민들은 정책의 존폐 자체를 먼저 논의해야 한다고 맞선다. 둘의 대화는 대부분 파행으로 치닫는다. 국가 정책이 혐오시설 건설이라면, 주민의 반대는 공익을 가로막는 ‘님비’(NIMBY·지역이기주의)로 매도된다. 주민의 저항은 경찰서에서 날아오는 출두 요구서가 쌓여가며 힘을 잃고, 주민들은 결국 국가가 내건 합의 조건을 수용하고 만다. 그 기본 공식을 깨뜨린 유일한 예외를 꼽으라면, 2003년 부안 핵폐기장 건설 투쟁 정도가 떠오를 뿐이다
“서울시는 주민들의 신뢰를 잃었다”
2007년 2월, 다른 구의 쓰레기를 받아들이라는 서울시와 갈등을 빚고 있는 양천 쓰레기 소각장 주변 사람들도 비슷한 과정을 겪으며 패배의 쓴잔을 들이켜야 했다. 서울시는 2007년 2월 현재, 노원·양천·강남·마포 등 4곳에서 쓰레기 소각장을 운영하고 있다. 애초 중구·용산구에서 발생하는 쓰레기를 받아들이기로 협정을 맺은 마포를 뺀 나머지 3개 소각장의 가동률은 2006년 현재 강남 24.8%, 양천 34.5%, 노원 18.5% 등 10~30%대에 머물고 있다. 소각장 주변 주민들이 다른 구의 쓰레기 반입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서울시 자원회수과(옛 청소과)는 수년 전부터 다른 구의 쓰레기를 소각장에 받아들여 가동률을 높이려는 이른바 ‘소각장 광역화’ 사업을 추진해왔고, 그 첫 대상지로 양천 쓰레기 소각장을 선택했다. 서울시와 목동 주민들은 영등포·강서구의 쓰레기 반입이 시작된 2006년 12월26일과 지난 1월29일 대규모 충돌을 빚었고, 소각장 근처 주민들이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겠다”고 선언하면서 다시 한 번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물리적인 대결 양상은 다소 진정된 모습이지만, 갈등은 전혀 해소되지 않은 채 물밑에 잠복해 있다. 용량이 남아도는 쓰레기장을 나눠 쓰자는 서울시 정책에 반대하는 주민들의 주장을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워 보이지만, 님비도 자연스런 사회현상 중 하나임을 부인하기 힘들다.
현장에서 만난 김완철 목동1단지 아파트 입주자 대표회장은 “문제는 서울시가 주민들의 신뢰를 잃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신뢰’란 무슨 뜻일까. 목동 주민들의 분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곳 쓰레기 소각장의 ‘20년사’를 돌아봐야 한다.
목동에 하루 150t의 쓰레기를 태울 수 있는 소각장이 들어선 것은 목동 신시가지 개발과 때를 맞춘 1986년 12월이었다. 애초 소각장의 건설 명분은 “목동 아파트 단지에서 나오는 것만을 태우겠다”는 것이었다. 느닷없이 서울시는 말을 바꾼다. 서울시는 1991년 소각장 규모를 지금의 2.5배 수준인 400t 규모로 늘리겠다는 계획을 발표했고, 주민들은 이를 받아들였다. “자기 지역에서 나오는 쓰레기는 자기 지역에서 처리해야 한다”는 명분을 거스를 수 없었기 때문이다. 1993년 5월 시작된 증설 공사는 1996년 2월에 끝났다. 그때 주민들은 “증설된 소각장에서는 양천구의 쓰레기만 태우겠다”는 서울시의 약속을 받아둔다. 정부합동민원실장과 서울특별시 청소사업본부장이 주민들에게 보낸 공문(입주자 대표회의 접수 날짜 1993년 5월18일)을 보면, “쓰레기 소각장 증설 목적이 양천구의 쓰레기만을 소각 처리하기 위한 것”이라는 말을 두세 번씩 표현을 달리해가며 강조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서울시 정책은 14년 전의 약속을 어긴 것인데, 주민들은 “그에 대한 사과는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양천구 뒤이어 강남구와 노원구도…
신뢰가 금간 곳은 여기뿐만이 아니다. 서울시는 쓰레기 소각장에서 발생하는 다이옥신 수치를 조작한 전력이 있다. 다이옥신은 쓰레기 속의 비닐이나 플라스틱 등을 태울 때 나오는 환경호르몬으로 청산가리보다 더 강한 독성을 가진 물질로 알려졌다. 서울시는 지난 2003년 5월 노원구 상계6동의 노원 쓰레기 소각장 2호기의 굴뚝 배기가스에 포함된 다이옥신의 측정치를 1㎥당 0.445ng(10억분의 1g)에서 0.094ng으로 조작해 발표했다. 당시 한상열 서울시 청소과장은 “이는 운영소장이 저지른 일로 서울시와는 관계없는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서울시의 신뢰도는 씻기 힘든 상처를 입었다.
그 때문인지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환경공해연구소가 2006년에 시행한 ‘서울시 자원회수시설 주변지역 주민건강 영향 조사·연구’는 “(임상 조사 결과) 주민들에게서 우려할 만한 이상 소견은 나타나지 않았지만, 거주민들의 상대적인 생활환경 영역 만족도 저하가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한다. 주민들은 소각장의 안전성을 믿지 못한다는 말인데, 그 불안 심리를 해소하는 것은 주민들이 아닌 서울시의 몫이다
양천구 주민들은 소각장의 안정성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할 수 있도록 불시에 다이옥신 측정을 허용하는 등의 제도 개선책을 마련한 뒤에 소각장 광역화 찬성 여부를 묻는 주민 투표를 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투표 대상은 소각장의 영향권 아래 있는 3400여 가구다. 물론, 서울시는 “적법 절차를 거쳤으니 투표는 필요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적어도 상반기까지는 강남과 노원에서도 자원회수시설 광역화 작업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양천구에서 그랬듯, 몇 달 내에 강남구와 노원구 주민들이 소각장으로 진입하는 도로를 막아선 채 경찰과 대치하는 광경을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다시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겠다”는 위협이 되풀이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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