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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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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여, 역을 돌려다오

등록 2006-12-29 00:00 수정 2020-05-03 04:24

가판대에 뺏긴 역을 되찾고자 서명운동 나선 ‘영등포역 공대위’…중간업체가 활개치고 업주가 매출 속여도 방치하는 철도공사를 고발

▣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하루 12만 명이 이용하는 서울 영등포역. 매주 금요일이면 10여 명의 사람들이 이곳에 자리를 잡는다. ‘영등포역 공공성 확보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대표 이광호·이하 영등포역 공대위) 회원들. 한국철도공사 노조, 장애인이동권연대, 노숙인 복지와 인권을 실천하는 사람들(노실사), 민주노동당 영등포위원회, 민주노동자연대, 영등포산업선교회, 문화연대에 둥지를 튼 사람들이다.

영등포역 공대위의 다양한 소속만큼이나 철도(지하철)역은 다양한 사람들의 터전이다. 노동자들에겐 한나절을 바치는 일터이고, 노숙인들에게 따뜻한 쉼터이고, 지역 주민에게는 다른 세계를 연결하는 터미널이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영등포역 공대위는 ‘사익 추구 공간’으로 바뀌고 있는 철도역사를 지키기 위해 싸운다.

보행자가 편히 걷고, 장애인·노인 등 교통약자가 뒤처지지 않고, 지역 주민과 노숙인, 예술가 등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는 철도역사가 돼야 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영등포역 공대위는 2005년 6월8일 결성돼, 그동안 3천여 명의 시민들에게 ‘영등포역을 시민에게 돌려주라’는 서명을 받았다.

영등포역 3층 대합실 옆 공용통로. 영등포역 공대위가 24억5300만원을 되찾은 곳이다. 1991년부터 롯데그룹 계열사인 롯데역사는 이곳에서 가설매장을 설치한 뒤 의류를 팔았다. 철도공사는 국유철도점용허가서에 따라 영업행위를 허가했다.

공용통로 점유하고 51억 벌어

매장의 넓이는 60평. 그렇다면 60평에서 수익금은 얼마나 발생했을까.2003~2005년 3년 동안 수익금은 자그마치 51억원이었다. 국유철도점용허가서는 공용통로에서 수입이 발생할 경우, 수입의 절반을 철도공사에 귀속시키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철도공사는 롯데역사에서 이 금액을 받지 않았다. 영등포역 공대위는 지난 4월 이에 대해 국민감사청구를 신청했고, 감사원은 11월 철도공사에 롯데역사로부터 미수납금 24억5300만원을 받으라고 시정 조처했다. 영등포역 공대위의 작지만 큰 승리였다.

철도역사는 ‘황금알을 낳는 길’이다. 유동인구가 하루 수만~수십만 명에 이르기 때문이다. 철도역사의 대합실, 환승통로, 승강장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김낙현 철도노조 공공역사팀장은 “엄연히 공공 공간인 철도역사가 무분별하게 상업적 공간으로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철도역사가 황금알을 낳을수록 보행자와 장애인·노약자는 불편해진다. 구매력이 없는 저소득층의 편익도 상대적으로 줄어든다. 더욱이 영등포역 3층 공용통로처럼 민간 사업자에게 영업권을 내주고도 마땅히 받아야 할 몫조차 방치하는 경우마저 있다. 과연 철도역사의 공공 공간은 제대로 운영되고 있을까.

중간업체 낀 줄도 모르는 철도유통

국철과 지하철 5호선이 교차하는 서울 신길역. 12월12일 저녁 국철에서 지하철로 이어지는 환승통로는 퇴근길 승객으로 꽉 메워져 있었다. 하루 7만3천 명이 다니는 길. 하지만 환승통로 중간을 12개의 매장(국철 쪽)이 차지하고 있다. 김낙현 팀장은 “매장이 입점하기에 부적절한 곳”이라고 말했다. 정말로 그랬다. 환승통로를 따라 이어진 노란색 장애인 점자시설은 매장에서 내놓은 물건으로 사실상 기능을 잃었다.

철도공사는 이 매장에서 얼마의 수익을 얻고 있을까. 공공 공간을 민간업체에 내줬으니, 그만큼의 대가를 받아야 한다. 철도유통은 각 매장과 직접 계약을 맺어야 한다. 중간업체가 끼어 이득을 챙겨선 안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철도영업규정은 점포 재임대를 철저히 금지한다. 이에 따라 각 매장은 철도유통과 계약해 매출액을 입금시키고, 철도유통은 소정의 영업료(보통 매출액의 15~20%)를 뗀 뒤 돌려준다. 하지만 신길역은 달랐다. 한 상인의 말이다. “길 건너편에 사무실이 있는데, 그곳과 계약했어요. 신길역은 사람이 많이 다녀서 한 달 600만원을 영업료로 냅니다. 어떤 상인은 일수로 하루에 20만원씩 입금하는 사람도 있어요.”

취재진이 가본 ‘길 건너편 사무실’은 철도유통이 아닌 개인 사무실인 ㅈ사였다. 의류매장을 열고 싶어서 왔다는 취재진에게 이 사무실의 직원은 “철도유통을 대행하는 신길역 매장 관리 회사”라고 소개하며 “의류매장을 열려면 총 매출액의 22%를 내면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작 철도유통은 ㅈ사와 같은 ‘중간업체’가 끼어서 이득을 챙기는 줄 모르고 있었다. 철도유통 이금래 팀장은 “신길역 12개 매장은 ㅈ사가 직접 영업하는 곳으로 판단하고 있다”며 “매출액의 16%를 ㅈ사로부터 받고 있다”고 말했다. 16%와 22%의 간극. 그 사이 돈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올해 민원이 있어 조사했지만, 증거를 찾지 못했다”며 “매년 영업요율을 높이는 등 계약조건을 현실화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사정은 다른 곳도 마찬가지였다. 영등포역 공대위가 공개한 ‘철도매점 수입내역’을 보면, 철도공사와 철도유통이 신길역 외에도 ‘공공 공간’을 내주고 제 대가를 받지 못한 곳이 많다. 김 팀장은 “경인선 한 역사에 딸린 음식점(60평)은 한 달 매출이 1181만원밖에 되지 않고, 제과점(20평)은 326만원밖에 되지 않는다”며 “업자들이 영업료를 조금 내기 위해 매출액을 축소 신고하고 있는데도, 어떤 이유에서인지 이를 방치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국철 구간엔 모두 857개의 철도 매장이 있다. 문제는 특수관리 매장이 해를 거듭할수록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철도유통이 직접 관리하는 용역매장과 달리 특수관리 매장은 철도공사가 민간에게 영업료만 받고 전적으로 운영을 맡긴다. 이에 따라 매출 허위신고나 점포 재임대 등 각종 문제가 발생한다.

고속철도와 신설노선 개통 때문이기도 하지만, 특수관리 매장은 2001년 203곳에서 현재 497곳으로 1.5배가량 늘었다. 이런 증가 요인이 없는 경인선의 경우도, 2001년 98곳이었던 특수관리 매장은 2006년 12월 150곳으로 65%나 늘었다. 반면 철도유통에서 직접 관리하는 용역 매장은 93곳에서 73곳으로 22% 줄었다.

해마다 늘어나는 ‘특수관리 매장’

영등포역 공대위는 철도역사를 보는 ‘공간 철학’을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이윤 추구를 위해 철도역사의 일부 공간을 영업장으로 활용하는 건 좋지만, 이는 명문화된 기준 아래 제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영등포역의 캠페인은 상업주의에 포획된 철도역을 지키기 위한 최초의 외침이 되고 있다. 김 팀장은 “철도공사가 2005년 공사 체제로 바뀐 뒤, 철도역사 곳곳에 영업용 가판대와 매장을 설치하는 데 골몰하고 있다”며 “공공성을 우선에 두는 역사 공간 정책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영등포역 공대위는 12월22일 영등포역 앞에서 262번째 선전전을 벌였다. 3층 공용통로 문제 말고도 영등포역에 정문 엘리베이터와 노숙인 SOS 센터 설치를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영등포역의 공공성 바람이 전국의 모든 철도역사로 퍼져나가길 기대하고 있다. 철도역은 원래 시민의 공간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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