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언론인·정치인 출신의 원로 인사가 책을 냈다는 것은 뉴스가 되기 힘들다. 그런데 남재희(72) 전 노동부 장관의 경우는 다르다. 이란 책을 낸 남 전 장관의 특이한 색깔 때문이다.
20여 년간 언론인이었던 그는 박정희 유신정권 말기인 1979년에 10대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해 전두환·노태우 군사정권 시기를 국회에서 보냈고, 김영삼 정부에서 노동부 장관을 끝으로 정계를 은퇴했다.
그가 정계에 몸담았던 시기 이상으로 정치를 오래 한 사람은 많지만, 고은 시인이 에서 “의식은 야(野)에 있으나 현실은 여(與)에 있었다”고 평할 정도로 교류하는 인사나 인식의 폭이 넓었던 이는 드물었다. 민정당을 점거했던 학생들이 면담 대상자로 그를 지명해 당내에서는 ‘내통’ 의혹을 받을 정도였다.
그랬더라도 그의 책이 ‘과거에는 이런 일이 있었지’라는 회고담 수준에 그쳤다면 그다지 주목받기 힘들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1989년 전대협(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대표로 방북했다가 수감된 임수경씨의 석방을 촉구했던 얘기는 최근 논란을 빚고 있는 북핵 문제에까지 이어진다. 1980년과 87년 두 차례의 개헌 당시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 당시의 얘기로 시작해, 경제민주화 조항(119조2항) 등 앞으로 개헌 과정에서 어떤 대목이 논란을 부를 수 있는지를 담고 있다.
대통령 탄핵과 수도 이전 판결로 막강한 힘을 가진 기관으로 부상한 헌법재판소의 탄생(1987년 이전에는 권한과 역할이 낮은 헌법위원회였다) 뒷얘기는 실소를 자아내게 한다. 남 전 장관이 개헌특위의 현경대·김종인 의원과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중간보고를 했다. 전 전 대통령이 “헌법위원회와 헌법재판소 중 어느 게 좋은가”라고 물어 다행이지, 혹시나 “미국은 어떤가?”라고 물었다면 태어나지 않을 수도 있었다고 남 전 장관은 전했다.
정치인들의 책은 대체로 자화자찬 아니면 주장만을 담고 있어 불편하다. 사료로서의 가치는 떨어진다. 그래서 양지에서 살았음에도 빛만 좇지 않았던 남 전 장관 같은 존재가 더욱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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