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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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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북한은 안녕했나요?

등록 2006-08-18 00:00 수정 2020-05-03 04:24

발행하는 이승용 좋은벗들 평화인권부장 … 북쪽 주민들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아는 것이 통일에 대비하는 길

▣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곽윤섭 기자 kwak1027@hani.co.kr

싱겁게 웃기만 할 뿐 그는 말을 아꼈다. 나름대로 집요하게 묻고 또 물었지만, 그의 대답은 한결같은 미소였다. 후덥지근한 열기가 달궈질 대로 달궈진 8월9일 오후 서울 강남의 정토회 2층 사무실에서 만난 이승용 좋은벗들 평화인권부장은 그렇게 두어 시간 남짓 인터뷰를 하는 동안 빙긋이 웃기만 할 뿐이었다.

그는 좋은벗들이 2004년 9월부터 펴내고 있는 소식지 발행 책임을 맡고 있다.

수해 지역 둘러본 듯한 현장성

지난 8월1일 이 단체가 내놓은 ‘소식지 32호’는 충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다. ‘2006년 북한의 홍수 피해 상황과 지역’이란 제목의 기사와 함께 실린 도표에는 평안남도 양덕·신양·맹산군과 함경남도 요덕·고원군, 강원도 원산·천내·문천·안변과 고성·금강·창도·김화·평강군 등 피해 지역의 강수량과 농경지 침수 등 피해 내역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현재 신고된 실종자 4천 명, 전체 실종 및 사망자 1만 명 이상 추산, 수재민 발생 130~150만 명 추산, 개성·해주에 말라리아 발생, 다수 협동농장 침수, 10만 정보(약 3억 평) 이상 침수 및 유실….”

피해 규모가 예상을 뛰어넘는 참담한 수준이라는 점도 놀라웠지만, 무엇보다 직접 현지를 둘러본 듯한 착각이 들게 할 정도로 소식지 곳곳에서 짙게 배어나는 ‘현장성’에 눈길이 쏠렸다.

“…황해남도 해주시에서만도 200여 구의 주검을 건져냈다. …7월16일 강원도 금강군에선 제방이 무너지면서 그 아래에 있던 살림집은 물론 논밭 수백 정보가 떠내려갔다. 7월14~16일 장시간 내린 집중 호우로 대동강 상류 인근의 아파트가 무너지고 단층집들이 떠내려가는 등 피해가 컸다. …평남 양덕군의 양덕∼거차 사이의 기차굴과 철다리 기둥이 무너지고 교량이 내려앉아 기차 운행이 중단됐다. 긴급 복구에 나서고 있지만 두 달 안엔 열차 운행이 힘들 것 같다고 한다….”

첫 질문부터 “어떻게 이런 구체적인 정보를 모았느냐”고 캐물었다. 이승용 부장은 입을 열지 않았다. 대신 “북한 당국 스스로 ‘100년 이래의 대홍수’라고 표현했다는데, 이는 비가 그만큼 많이 왔다는 얘기가 아니라 피해 규모가 100년 이래 최대라는 것”이라며 “피해 규모가 워낙 커 민간 차원의 역할엔 한계가 있으니, 복구를 위한 중장비 지원 등 정부 차원의 대북 지원이 본격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말로 화제를 돌렸다. “현장에 다녀오기라도 한 것이냐”고, “이게 사실인지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느냐”고 잇따라 질문을 던져봤지만 “더 구체적인 내용이 들어오는 대로 즉시 소식지를 통해 알리겠다”고만 말했다. 더 물어도 소용없는 일이었다.

좋은벗들이 을 발행하기 시작한 건 지난 2004년 9월이다. 북녘 주민들의 일상을 제대로 알아야 그들의 입장에서 필요한 일을 지원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1997년부터 중국에서 탈북 재중동포 지원사업을 하는 한편 북녘의 식량난이 얼마나 심각한지에 대해 2만5천여 명을 상대로 간단한 인터뷰를 해 자료를 축적해둔 것이 밑거름이 됐다. 이런 작업은 현지 구호활동가들이 지금도 이어가고 있는 눈치다.

“남쪽 정부, 북쪽 정부, 남쪽 주민은 모두 통일 과정에서 자신들의 이해와 요구를 관철할 수 있는 수단과 통로가 있다. 하지만 북녘 주민들은 이런 기회조차 박탈된 상태다.” 이 부장은 “이 상태로 통일이 된다면, 북쪽 주민들은 통일 뒤에도 2등 국민으로 남게 될 것”이라며 “북에 대해 있는 그대로, 북쪽 주민들의 일상을 그대로 알려 그들이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일이 뭔지를 알아가는 것은 통일에 대비하는 길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입소문 나며 ‘맞춤형’ 정보 요구받기도

월간지 형태로 발행하던 소식지는 올 3월부터 주간지 형태로 발행 일정을 당겼다. 전자우편을 이용해 웹진 형태로 발행하고 있는데, 국내에서만 1만3천 명가량이 매주 을 접하고 있다. 독자의 대부분은 남북관계 전문가와 언론인, 통일부 등 유관 정부기관 관계자들이다. 유엔 등 국제기구와 국무부·의회 등 미국의 대북 정책에 영향을 끼치는 전문가 집단 500명가량에게 따로 작성한 영문판을 보내고 있고, 일본에도 100여 명의 일문판 독자가 있단다.

이 부장을 포함해 좋은벗들 활동가 3명이 편집책임을 맡고, 탈북 동포 4~5명으로 모니터팀을 따로 두고 있다. “소식지를 읽다 보면 북쪽 문체가 느껴진다”는 말에 이 부장은 “뜻이 전달되는 범위 안에서 북쪽 주민들의 말투를 최대한 살리려 노력한다”고 답했다. 이 밖에 국내 연구진 3~4명이 매호 발행할 때마다 실리는 기사와 논평에 대해 자문을 해주고 있다. 향후 주간지에서 북한 전문 일간지나 인터넷 매체로 다시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고 싶은 ‘욕심’도 있다고 한다.

발행 초기엔 “북을 음해하려 한다”거나, “퍼주기를 지속하라고 부추기는 것이냐”는 양극단의 손가락질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입소문으로 소식지의 ‘정보력’이 알려지면서, 요즘 들어선 특정 지역의 쌀값 등 물가 동향이 궁금하다는 등의 ‘맞춤형 정보’를 요구하는 이들도 생겨났다. 이 부장은 “탈북 동포들 가운데는 ‘내 고향 어디어딘데 그곳 소식도 좀 전해달라’고 부탁해오는 이들도 생겨났다”고 귀띔했다.

소식지가 전하는 ‘오늘의 북녘 이야기’는 정치·경제·사회·교육에서 의료·여성·농업·교통·식량사정·사건사고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소개하는 내용도 구체적이다. 이를테면 지난 5월 발행된 소식지에 실린 ‘군인들 폭행에 화난 운전기사, 고의 교통사고’란 기사는 이른바 ‘선군정치’ 시대에 군인과 주민들 간에 깊어가는 불화와 불신의 정도를 쉽게 가늠하게 해준다. 또 지난 7월 발행된 소식지에선 “북녘 최고 학부인 김일성종합대학 교수의 한 달 생계비가 장사를 하는 중산층의 10분의 1 수준인 1만원에 불과한데다 배급조차 끊기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사연을 전해, 말로만 듣던 북쪽의 어려운 경제 사정을 피부로 느낄 수 있게 했다.

이 부장은 “현재 남쪽에서 생활하는 탈북 동포는 약 9천 명에 이른다”며 “최근엔 매년 1천 명이 넘는 이들이 남녘을 찾고 있는데, 내년부터는 그 수치가 한 해 2천 명대를 돌파할 것”이라고 말했다. 탈북 동포 한 사람에게 정착 비용만 2억원이 든다. 이론상으론 국내로 온 탈북 동포 정착 비용에만 내년부터 매년 4천억원 이상이 소요될 것이란 계산이 나온다. 그는 “이 정도 금액이면 북녘 2천만 동포들의 굶주림을 1년간 해결해줄 수 있는 규모”라고 지적했다.

동포 몇명 빼내오는 게 인권 신장일까

“북녘에선 헐벗고 굶주리지 않고 지내려면 한 해 100달러가 든다. 중국에선 최소한 인간답게 사는 데 1천달러가 든다. 남한에선 이 금액이 1만달러로 다시 올라간다. 북녘 동포 몇 명을 빼내오는 게 정말 그들의 인권을 위하는 일인지 따져볼 일이다.” 이 부장은 “이른바 진보 진영은 북에 대한 애정은 있지만 북한을 잘 모르고, 보수 진영에선 체제와 주민을 분리해 바라보지 못한 채 여전히 대북 지원 얘기만 나와도 쌍심지를 켜는 이들이 많다”며 “이제는 7천만 겨레 전체의 인권 신장을 위해 어떤 일을 해야 할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오늘의 북한’을 바로 알기 위한 노력은 그 시작일 것이다. (소식지 무료 구독 신청 goodfriends@jungto.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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