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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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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숫자를 뿜어대는 괴물

등록 2006-07-27 00:00 수정 2020-05-03 04:24

총생산이니 수출액이니 자본만을 위한 셈법 들이대는 열일곱개의 머리…‘이행의무강제금지’란 방패와 ‘투자자 제소권’이란 창을 마구 휘두르다

[어린이를 위한 한미 FTA 이야기]

▣ 박기범 동화작가
▣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이상한 셈법이 있습니다. 무엇이든 모두 더한 값이나 평균값을 내려는 거지요. 국내총생산이 얼마다, 전체 무역량이 얼마다, 1인당 국민소득이 얼마다 하는 식으로 말이지요. 글쎄요, 저는 그런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기도 하거니와 몰라도 그리 답답하지 않았어요. 경제라는 것에 대해 담을 쌓으려 해서 그런가 모르겠어요.

하지만 곰곰 생각하면 그럴 리 없거든요. 비록 큰돈 셈할 일 없이 살아가지만 집을 나서면 버스 타는 일에서 신문 한 부 사보는 일까지 어느 것 하나 돈 없이는 살 수 없으니까요. 그래서 달마다 통장을 보면서 빠듯함에 한숨을 쉬거나 그나마 마음을 놓으며 돈 나갈 곳을 어림합니다. 날마다 경제생활의 연속인 거지요.

농업이 망해도 수출 늘어난다는 셈법

그런데도 총생산이니 평균소득이니 하는 말은 귀에 잘 들어오지가 않아요. 별 상관없이 느껴지거든요. 나라 경제가 좋아졌다 할 때도 나는 돈이 없어 허덕이는 때가 많고, 수출이 큰 폭 늘었다 해도 이웃들의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어요. 마치 어릴 적 학교 다닐 때 우리 학교 실력이 늘었다거나 우리 반이 시험을 잘 봤다 하는 말이 내 얘기로 들리지 않던 것처럼 말이에요. 경시대회에 나가 우리 학교 아이들이 우르르 상을 받아온다 해서 나까지 잘한 건 아니잖아요.

족집게 과외를 받는 아이들 몇이 월등하게 성적을 내주면 반 평균 점수야 오를 수 있겠지요. 내 점수와 상관없이 나는 공부 잘하는 반 아이가 되는 거예요. 중요한 건 언제나 우리 학교에서 경시대회 상을 얼마나 받아오는지, 평균 점수가 얼마인지, 어느 고등학교에서 서울대를 얼마나 보내는지 하는 거였죠. 아이들 하나하나가 어떻게 배워가나 하는 건 중요치 않았어요. 나라 경제를 말할 때도 그런가 봐요. 아무리 많은 국민이 못살게 되어도 5분의 1 정도 되는 잘사는 이들이 껑충 더 많은 걸 갖게 되면 우리 국민들이 잘살게 되었다 말하니까요. 총생산이 늘고 평균소득이 올랐다는 거지요. 이때에도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이 어떤가는 중요치 않네요. 그런데 말이죠, 진정 우리의 행복이 그 이상한 셈법으로 계산이 되는 건가요? 다 더해 말하기, 평균값으로 말하기!

이상한 셈법은 단지 수나 양을 뭉뚱그리는 데에만 있지 않아요. 미국과 시장을 하나로 묶고 싶어하는 이들이 수출을 더 많이 할 수 있다며 내세우는 것도 그래요. 비록 농산물 수입이 엄청난 손해를 주더라도 자동차나 전자제품, 옷감 같은 걸 그보다 더 많이 내다팔 수 있다는 셈법. 앞서 말한 수출산업에 이득이 클 거라 내다보는 것부터가 과연 사실인지 잘 따져보아야겠지만, 설사 농업의 손해를 다 덮을 만큼 벌어들인다 해도 그게 과연 숫자로만 따져 더하고 뺄 수 있는 일인가요? 저마다 기쁨이 다르고, 보람이 다르고, 꿈이 다르고, 삶이 다른 것을 어떻게 돈으로만 계산해 더하고 뺄 수 있는지. 한쪽이 망한다 해도 잘되는 쪽만 있으면 그에 기대어 살아가면 된다는 말이겠죠. 곡식을 가꾸던 농부더러 자동차 부품 만드는 공장에서 일자리를 찾아 돈을 벌라는 뜻이겠고요. 쟁기질, 호미질 그만두고 마트 같은 데 들어가 가격표 붙이며 살라는 얘기겠지요. 공장이나 마트에서 일하는 게 더 못하다는 말이 결코 아니에요. 저마다의 기쁨과 보람, 삶과 꿈을 돈벌이의 잣대로만 발라내 그 모든 걸 정당화하는 잔인한 숫자 놀음이 끔찍스러워 그래요.

게다가 농업이 망하는 건 농민의 삶이 망가지는 것에 그치지 않는걸요. 더는 이 땅에서 우리 먹을 것을 우리 손으로 짓지 못한다는 것, 모든 걸 외국에서 사다 먹어야 한다는 거예요. 그러다가 언제라도 우리에게 먹을 것을 팔지 않겠다고 돌아서기라도 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나요? 굶지 않으려면 아무리 비싼 값을 불러도 꼼짝없이 낼 수밖에 없어요. 먹을 것 좀 살 수 있게 해달라며 시키는 건 뭐라도 다 들어줘야 할 거예요. 미국과 시장을 하나로 묶으려 하던 스위스가 협상을 그만둔 것도 농업을 모두 내놓으라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어떤 이들은 농업 망하는 문제를 단지 농사꾼들 돈벌이가 없어지는 것으로만 셈하고 있어요. “빼앗긴 만큼 더 벌어올게. 돈벌이는 다른 데도 있잖아!” 하는 이상한 셈법을 들이밀며 말이지요.

법 같은 거야 우습게 뭉개지

FTA(Free Trade Agreement)라는 건 우리말 풀이 그대로 자유무역협정이라는 것입니다. 어떤 나라 사이에 상품을 사고팔 때 세금이나 규제 없이 하자는 것이지요. 적어도 두 나라 사이에서는 제 나라에서 장사하듯 하나의 시장으로 묶자는 거예요. 이상한 셈법은 여기에서도 비상한 능력을 펼칩니다. 이제껏 상상하지 못하던 것까지 모두 돈벌잇감으로 둔갑시켜버려요. 누구나 마땅히 누려야 할 삶의 바탕을 마련하는 것까지 모두 장사꾼들에게 맡겨야 한다는 거지요. 삶이나 목숨, 자연, 인권, 고유한 문화를 지키는 일 따위야 성가신 방해물로 여길 뿐이에요. 그러고는 말합니다. 자본이 돈벌잇감으로 삼고 나서면 그 모든 것에서 훨씬 질 높은 생활을 할 수 있다고 말이지요.

더구나 지금 장삿길을 트려 하는 곳은 세계에서 가장 부자 나라인 미국, 길을 트기만 하면 우리보다 앞선 장사꾼과 전문가가 물밀 듯 밀려올 테니 기대만 하면 된대요. 학교면 학교, 병원이면 병원, 물 받아먹는 거나 전기, 가스를 쓰는 일까지 최고급 품질과 시스템을 누리게 된다지요. 그네들 말처럼 미국의 앞선 자본은 분명 번듯한 것들을 들여오겠죠. 분명 최고급은 최고급일 겁니다. 하지만 달콤해 보이기만 하는 그 얘기에는 가장 중요한 것을 슬쩍 감추고 있어요. 그만큼 많은 돈을 내야만 누릴 수 있게 한다는 거잖아요. 두 나라가 맺으려 하는 건 서로 나누고 베풀자는 게 아니라 더 잘 팔아먹기 위한 틀을 짜자는 것인걸요. 돈 없는 이들은 걱정 없이 누리던 것조차 모두 잃고 말아요. 지금 한국과 미국 두 나라가 준비하는 FTA라는 게 바로 그래요. 돈이 될 만한 거라면 무엇이든 상품으로, 무려 17개나 되는 분야에서 그 장사판을 펼치려 하고 있어요. 머리가 열일곱 달린 한미 FTA라는 괴물, 더구나 이상한 셈법을 하는 이들은 이 괴물의 손에 무시무시한 창과 방패까지 쥐어주려 하고 있답니다.

먼저 괴물이 가진 초강력 방패. 한 나라에 들어간 자본은 그 나라의 법 같은 거야 우습게 뭉개버릴 수 있어요. 이 나라의 법이나 규정을 지키라 강요할 수 없다는 ‘이행의무강제금지’라는 약속이 있기 때문이에요. 외국 자본에게는 어마어마한 특권이지요. 법도 뚫지 못하는 방패인 거예요. 일하는 사람을 마음대로 잘라서는 안 된다는 법이나 환경을 더럽히지 말아야 한다는 법 같은 것도 나 몰라라 할 수 있다는 거예요. 외국 기업은 언제라도 노동자를 자를 수 있지요. 필요한 때만 잠깐 불러 일을 시켜도 되고 턱없이 적은 돈으로 일을 부릴 수도 있어요. 요 몇 해 사이 많이 이야기돼온 ‘비정규직 노동자’란 말이 바로 그런 조건 아래 놓인 사람들을 뜻하거든요. 한미 FTA라는 괴물 아래 있는 미국 자본은 이 땅의 모든 일터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를 쓰려 하겠죠. 그렇다면 이 나라 자본도 가만히 있지 않을 거예요. 외국 자본에 지지 않으려 어떻게든 일하는 사람 월급을 낮추려 들 거고, 국내 자본의 불리함을 들어 어떻게든 법을 바꾸려 할 거예요. 결국 모든 기업의 일자리는 자본의 국적을 떠나 비정규직 노동자로 채워지고 말겠지요. 월급을 받아 사는 이라면 누구나 이런 처지가 될 거예요. 그러니 아무리 자본이 기업을 키워 국내총생산이나 국민소득을 늘린다 해도 그 아래에서 일하는 이들의 삶은 곤두박질칠 수밖에 없어요.

이처럼 괴물의 방패는 엄청나고, 그 폭풍은 누구도 비켜가지 않습니다. 오로지 자본의 이익을 보호해줄 뿐이죠. 하나의 기업 안에서도 배 불리는 몇몇과 어렵게 살아가는 수많은 이들은 갈릴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이럴진대 어느 산업 하나가 망해도 잘되는 산업에 기대면 될 거라니요? 입은 비뚤어져도 말은 바로 해야지요. 농민 다 죽고, 기업 노동자들 다 죽고, 몇몇 자본가만 잘살게 되는 얼개. 허허, 그런 속에서도 총생산이나 수출량, 평균소득 같은 건 늘 수야 있겠지요. 이상한 셈법의 사람들은 계속 우길 거예요. 이것 봐라, 이만큼이나 늘지 않았냐, 잘 살게 되었다, 더 잘살 수 있다, 아자아자아자!

국민들 고통 알면서 돈 물어주는 정부

괴물의 또 다른 무기는 ‘투자자-국가 소송제도’라 하는 무시무시한 창입니다. 상대 나라의 정책을 놓고 툭하면 불리하다, 툭하면 더 벌 수 있는데 못 벌었다 하면서 강짜를 부릴 수 있게 하는 무기죠. 괴물을 등에 업은 외국 자본은 상대 정부가 조금이라도 제 나라 국민을 보호하려 하면 언제라도 그 나라 정부에 대해 재판을 걸 수 있어요. 게다가 그 재판이라는 것도 나라에 있는 법원이 아니라 ‘국제분쟁조정센터’라는 괴물의 친구들 집에서 열게 되어 있거든요. 괴물의 창은 철저히 자본의 이익을 위해 번득이게 됩니다. 환경을 몹시 심하게 오염시켜 주민들 수십 명이나 죽게 한 외국 기업이라 해도 이 나라 정부가 못하게 막고 나서면 외국 기업은 거침없이 괴물의 창을 찔러댑니다. 이 나라 정부를 고발하는 거지요. 목숨을 잃은 이들에게 보상을 해주어도 모자랄 판인데 거꾸로 손해배상이라니. 어처구니없지만 실제로 일어나는 일이에요.

꼭 같은 일이 미국 기업과 멕시코 정부 사이에 있었죠. 제 나라 국민들이 죽어가는 걸 보면서도 멕시코 정부는 오히려 1650만달러나 되는 돈을 물어줘야 했어요. 캐나다 정부도 그 비슷한 일로 1300만달러를 물었어요. 두 나라 모두 미국과 FTA라는 괴물을 맺었죠. 괴물의 창은 외국 자본이 나아가려는 길을 가로막는 것 앞에서 매서운 위력을 발휘합니다. 상대 나라의 온갖 정책을 헤집고 흐트러뜨리는 거지요. 제 나라 영화를 얼마 동안 꼭 상영하기로 하는 것이나 농민들에게 보조금을 지원하는 것, 공기업 주식을 외국인에게는 어느 만큼까지만 팔겠다 하는 것, 약값을 어느 선 아래로 낮추겠다 하는 게 모두 괴물의 눈에는 외국 자본에 대한 차별로 보이니까요. 괴물은 창을 휘두르고 찔러댑니다. 괴물의 친구들이 있는 법정으로 불려가겠지요. 엄청난 손해배상에 정책까지 뜯어 고치라 할 거예요. 아예 법정으로 가기 전 알아서 고칠 수밖에요. 괴물이 눈을 부릅뜨고 있는 한 제대로 된 국가정책이란 펼칠 수 없는 거죠. 오로지 돈 가진 자들의 자유로운 경쟁만 지켜볼 뿐. 이러한데도 이상한 셈법의 사람들은 큰소리를 치고 있습니다. 공공성을 지켜내겠다, 경쟁력 낮은 산업을 지원하겠다, 양극화를 줄이겠다고…. 도대체 무슨 수로 하겠다는 것인지 모르겠어요.

한 손에는 법을 피할 수 있는 방패, 또 한 손에는 정책을 깨뜨려버리는 창. 천하무적 한미 FTA 괴물은 겁날 것이 없습니다. 무조건 피하고 휘두르며 돈을 쏟아붓기만 하면 되거든요. 자유로운 투자와 자유로운 경쟁을 말하며 학교를 지을 거예요. 등록금도 마음대로 정하고 학생이나 교사를 뽑는 것도 제 입맛대로 하겠죠. 병원도 짓겠다 하고 있어요. 국민의료보험이 되지 않는 약과 기술로 더 고급스런 병원을 지을 거래요. 보험 장사꾼들과 손잡아 값비싼 민간 보험만 쳐줄 거래요. 전기나 철도, 수도, 가스 같은 것도 최고급 품질의 서비스로 팔아먹겠다지요. 국내 자본이라고 가만히 있지 않을 거예요. 덩달아 돈벌이만 생각하는 학교로 바꿀 거고, 평범한 사람들의 건강과 상관없는 값비싼 병원을 짓겠죠. 온갖 서비스 장사도 미국에 배워 돈벌이다운 돈벌이에 끼어들 거예요. 누이 좋고 매부 좋다는 말은 이런 때 하는 건가 봅니다. 한국 자본, 외국 자본이 짝짜꿍되어 앞서거니 뒤서거니 신이 나 달려가는 게 눈에 보여요. 그네들이야 귀족학교에 귀족병원, 값비싼 음식과 질 좋은 서비스를 누리며 나날이 배불려가겠지요. 하지만 도시로 내몰린 농민과 비정규직으로 버림받는 노동자들은 어떻게 하나요? 치솟은 약값에 의료보험료만 몇 곱, 그나마 치료받을 수 있는 곳은 의료장비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보건소들뿐이에요. 제대로 된 병원에서 맹장수술을 받으려 해도 1천만원이 든다지요. 있는 집 아이들 다니는 학교와 없이 사는 집 아이들 다니는 곳이 뚜렷이 나뉠 거예요. 등록금이 2천만원이나 될 대학은 꿈도 꾸지 못해요. 유전자 조작 식품인 걸 알면서도 깨끗한 음식을 고를 수 없어요. 이상한 셈법과 머리 열일곱 달린 괴물이 가져온 자유는 한낱 돈 있는 이들의 자유일 뿐 처음부터 우리의 자유는 없으니까요. 이상한 셈법의 사람들은 여전히 총생산과 수출량, 평균소득을 따지며 만세를 외쳐요. 아, 그러고 보니 그 이상한 셈법의 사람들은 모두 저 높은 자리에 있네요. 행복이 가득한 얼굴이에요. 업그레이드가 되긴 되나 봐요. 적어도 어떤 이들에게는 말이지요.

‘민중무역협정’을 아시나요

한미 FTA는 끝내 두 나라의 자본만을 살찌울 거예요. 그들이 쓰는 자유라는 말에는 무엇이든 돈벌잇감으로 만들 자유, 제한 없이 팔아먹을 자유, 비싼 값을 내고 누릴 자유, 노동자를 존중하지 않을 자유, 환경을 파괴할 자유, 돈 있는 이들끼리 세상 모든 것을 나누어 가질 자유만을 뜻하니까요. 우리가 바라는 자유는 그러한 것에 있지 않아요. 서로의 삶을 존중할 자유와 삶의 기본을 누릴 자유를 바라요. 나라마다 자원과 기술, 산업의 특성에 따라 서로 교역하는 것이 물론 필요하지요. 하지만 그것이 자본의 끝없는 이익만을 좇는 괴물 협정이 아니라 저마다의 인간다운 삶과 생명의 조건을 존중하며 조화로운 지구의 미래를 돕기 위한 무역이라면 어떨까요?

실제로 남미의 베네수엘라와 볼리비아, 쿠바는 기업 활동으로 환경이 더러워지는 것을 막고 지역에 바탕을 둔 작은 기업을 보호하며 서로의 식량 산업을 존중하는 위에서 교역을 나눠갖자는 ‘민중무역협정’이라는 이름으로 손을 잡고 있습니다. ‘자본의 자유’만을 넓히는 괴물 협정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을 조화롭게 가꿔가기 위한 연대와 협력의 협정으로 말이지요. 물론 국가생산이니 국민소득이니 하는 말을 앞세워 자본의 이익만을 잣대로 하는 셈법으로는 그들처럼 교역을 나눌 수 없겠지요.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아끼고 그 삶들의 조화를 바탕으로 할 때에만 가능한 것이니까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금 한국과 미국 사이에는 이상한 셈법의 사람들이 만나 우리의 삶을 담보로 협상을 하고 있습니다. 그이들은 기어이 머리 열일곱에 무시무시한 창과 방패까지 지닌 괴물을 만들어내려 하고 있어요. 또 한쪽에서는 침략의 자유를 뜻하는 ‘전략적 유연성’이라는 이름을 가진 괴물이 짝을 이루며 이 나라를 전쟁의 요새로 만들려 불을 뿜고 있어요. 우리의 삶과 평화를 통째로 먹어 삼킬 두 괴물, 끝내 우리 못난 어른들은 여러분의 미래를 두 괴물에게 내주고 말게 될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함께 눈 맑게 뜨고 그 괴물들을 똑똑히 바라봐요. 우리 삶의 방식을 스스로 열어나갈 수 있도록 말이에요.

*혹시 ‘F-키라’라고 들어봤나요? 모기약 말하는 건 아니에요. FTA라는 괴물에 맞서고자 하는 이들이 하나둘 F-키라가 되어 인터넷 카페(http://ftakiller.ba.ro)로 모여들고 있어요. 이곳에 가보면 괴물을 둘러싼 온갖 이야기가 쉽고 재미나게 쓰여 있을 뿐 아니라 우리가 함께 마음 모아 해나갈 수 있는 일들에 대해서도 볼 수 있어요. 저도 이 글을 쓰는 동안 F-키라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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