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성기성형까지 꼭 해야 하는가

등록 2006-07-06 00:00 수정 2020-05-02 04:24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장이 본 대법원의 ‘성전환자 호적정정 허가 결정’ … 빈곤계층으로 내몰린 그들에게 수술의 막대한 비용은 부담, 위험도 따라

▣ 최현숙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위원장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는 ‘성전환자 성별 변경 및 개명에 관한 특별법’ 발의를 위한 조사작업으로 성전환자들을 인터뷰하고 있다.

성전환자들을 인터뷰하면서 우리 사회의, 성전환자들의 그리고 나 자신의 ‘성별 이분화된 고정관념’을 새록새록 확인한다. 성전환자들이 자신의 생애사를 통해 이야기하는 ‘남성성’ 혹은 ‘여성성’은 대부분 사회의 성별 이분화 방식과 그대로 닮아 있거나 가끔은 더 견고하기까지 하여, 나는 대체로 그들의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 자주 시비를 걸어 논쟁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내가 동의하지 않는 것은 그들과 사회의 성별 이분화된 사고방식과 행동까지다. 그들의 성별 정체성은 무조건 지지한다. 사회의 온갖 차별과 편견과 불이익 속에서도 그들은 자신을 당초의 몸과 반대의 성별로 확신하고, 의학계가 엄정한 진단을 통해 확인하여 수술로 몸과 정신을 일치시켜주기로 한 그들의 성별 정체성에 대해 사회가 왈가왈부할 일은 전혀 없다. 사회는 그들의 행복과 존재 방식을 그대로 인정하면 되는 것이다. 그들의 행복추구권은 다른 누구의 행복도 침해하지 않는다.

대법관들의 상상력이 더 확대되기를

성전환자들을 인터뷰하면서 내겐 새로운 성적 판타지가 생겼다. 여성인 내가 남성의 몸과 욕망으로 여성 혹은 남성과 성관계를 하는 장면을 상상하는 것이다. 쾌감의 경로와 정도가 사뭇 다르다. 이전의 판타지들보다 더 즐겁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새롭고 각별하다. 당분간은 이 판타지를 자주 애용할 듯하다.

왜 한 번도 이런 종류의 상상을 못했는지 성적 판타지에조차 성별에 묶였던 내 고정관념이 우스울 뿐이다. 하긴 내 이성애적 고정관념 속에 동성애적 성은 47년을 갇혀 있었다. 나는 최근 2년 동안 동성애적 성을 추구하고 사는 양성애자다.

지난 6월22일 대법원의 ‘성전환자 호적정정 허가 결정’은 환영할 만한 판결이었다. 반대한 두 대법관조차 적극적인 반대가 아니라 특별법을 통한 허가를 주장했다. 그동안 차별과 편견 속에서 갖은 비난과 불이익을 감수해야 했던 성전환자들이 그들의 행복추구권을 법적으로 인정받아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어울릴 수 있는 첫 관문을 열게 된 것이다.

나아가 동성애자, 이주노동자 등 다양한 소수자들을 향해 우리 사회가 더 벽을 낮추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다만 호적정정 허가를 받기 위해서 원하는 성별로의 성기성형 수술까지를 조건으로 제시한 것은 지나쳤다. 대부분의 성전환자들은 편견과 차별 속에서 빈곤계층으로 내몰려 있다. 그들에게 성기성형 수술의 막대한 비용은 부담이 되고, 수술의 위험도 뒤따른다. 대법원의 허용 요건은 성기성형 시술의 발달 정도와 당사자들의 성기수술 요구 정도를 고려하지 못한 것이었다. 대법관들의 인식이 부족했다기보다 상상력이 부족해서였기를 바란다. 비성전환자로서 성전환자들의 삶과 현실을 상상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언론이 연일 쏟아내는 성전환자들의 목소리가 시민과 입법부, 행정부에 성전환자를 비롯한 다양한 소수자들의 삶에 대한 상상력을 확대시켜주기를 기대한다.

한편, 정책과 제도를 만들기 위한 상상력은 철저하게 현실에 바탕해야 한다.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는 지금까지 삶의 과정 하나하나가 더없이 각별한 성전환자 20여 명의 생애사를 듣고 있다. 7월 말까지 약 40명의 생애사를 듣고, 약 150명의 성전환자를 대상으로 인권실태 조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8월엔 실태조사 결과와 생애사를 사회에 알리고, 9월 정기국회에선 오래전부터 준비해온 ‘성전환자 성별 변경 및 개명에 관한 특별법’(가칭)을 발의할 예정이다. 국회의원들이 뒤늦게나마 당사자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이기를 희망한다. 그전에 가슴을 울렸던 몇몇 이야기를 전한다.

수술비용 마련 위해 오로지 저축만

남도의 섬에서 태어난 여자아이가 학교도 들어가기 전부터 서서 오줌 누기를 간절히 원했단다. 그저 ‘공연히’였단다. 공기놀이와 소꿉놀이보다는 공을 차고 뛰어다니는 것이 좋았다. 한 여자아이를 좋아했는데, 그 애는 다른 아이를 좋아했다. 가만히 보니 그 다른 아이와 자기의 차이는 ‘고추’였단다. 그래서 자신도 얼른 그것이 생기기를 바랐다. 남자아이들과 자기가 다른 줄에 서야 하는 것을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알았단다. ‘이 줄은 분명히 내 줄이 아닌데….’ 아이는 어느 줄에 서든 불편했다. 봉곳 솟기 시작하는 가슴은 붕대로 눌러 감았다. 그러다가 생리를 했다. 충격을 넘어 절망이었다.

어느 편에 서도 아이는 늘 혼나야 했다. 늘 혼나기만 하는 아이는, 청소년은, 청년은, 줄을 나누는 모든 자리에 나가기 싫었고 나가지 못했다. 모처럼 어느 편에 서보아도 의심받거나 쫓겨났다. 여중·고, 공중화장실, 목욕탕, 옷가게 등 모두 곳에서 마찬가지였다. 그는 ‘모두가 혼내니 내가 잘못된 거겠지만 내가 남자인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여고 중퇴, 가출, 자해, 자살미수가 이어졌다. 무엇보다 그 자신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에 삶의 용기나 욕망은 염두도 낼 수 없었다. 그저 죽어지지 않아 살아가는 것뿐이었다.

그는 스물여덟에 서울로 올라와서야 ‘성전환자’라는 용어를 인터넷에서 처음 접했다. “성전환자에 대한 설명을 보고는 단번에 내 자신이 정리됐어요. 그 순간 길이 훤히 보이는 듯하고 인생의 계획이 생겼어요. 너무 늦게 알아서 억울해요. 어렸을 때 누군가 내게 나를 이해시켜주었다면 내 인생이 이렇게 힘들지는 않았을 텐데….” 어느덧 서른여섯인 된 그는 방 한 칸 없는 고시원 생활에 신문배달과 우유배달을 하며 지낸다. 남성호르몬 처방을 받아서 누가 보아도 남성인 그는 오직 저축에 매달린다. 가슴제거 수술과 성기제거 수술을 받기 위해서는 큰돈이 필요하다. 대법원은 성전환수술 중 비용이 가장 비싼 성기성형 수술까지 마쳐야 호적 정정이 가능하다고 한다. 그런 다음엔 성별 정정 소송을 위한 변호사 비용을 만들어야 한다.

대법원 판결 당사자를 어렵게 ‘접선’하다

이번 대법원 판결의 당사자를 정말 어렵게 ‘접선’했다. 그는 자신의 신분 보호를 위해 나에게 자신의 번호를 알려주지 않았다. 그가 당 사무실로 10번을 넘게 전화하고 나서야 겨우 내 휴대전화로 연결됐고 간첩 접선하듯이 만났다. 그는 할 말이 무던히도 많은 사람이지만 신분 노출이 무서워 재판에 참석하지 못했다. 그는 판결을 전하는 내 전화에 ”감사합니다…”라는 한마디만 하고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그날 밤 내내 왜 우는지도 모른 채 울었단다. 이제야 주민등록번호가 1번으로 바뀐다고 뭐 그리 세상이 각별해지려나? 빚과 무직과 초등학교 졸업의 학력과 이미 먹어버린 쉰일곱의 나이…. 나로선 동의하기 힘든 새로운 세상인데, 역시 내 상상력 부족 탓일 게다. 의료보험증을 내밀며 병원을 가고, 선거를 하고, 은행통장을 만들고, 주민등록증을 내밀며 일자리를 찾아다녀보는 것이, 그가 많은 세월 홀로 통곡하며 간절히 원한 세상이었다. 지난 6월 초 깊은 밤 목욕재계하고 대법관들에게 탄원서로 간구한 세상이었다. 15년을 함께 산 아내와 혼인신고를 하면 주민등록증을 내밀어 비행기표를 사서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갈 거란다. 성별 정정은 1번과 2번으로 줄을 나누는 세상에서, 어느 한 줄에 설 표를 주는 것뿐이다. 줄 나누는 세상을 넘어, 줄도 표도 없는 세상이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세상이다.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