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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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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환] 어민에게 헌신하는 ‘족집게 강사’

등록 2006-06-14 00:00 수정 2020-05-03 04:24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지난해 선박기본법이 바뀌었다. 2008년부터는 낚싯배를 운영하는 어민이나 2t 이상 일반 어선을 운항하는 고기잡이 어민은 누구나 해기사 면허를 소지해야 한다. 그전까지는 5t 이상 선박에만 해기사 면허 소지가 의무화됐다. 그래서 4.99t으로 줄여서 어선을 운항하던 어민들이 많았다. 그러나 법이 바뀌는 바람에 어민마다 당장 면허 취득이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되었다. 그러나 평균 나이 60살이 넘는 어민들이 따로 공부해서 면허를 따기란 쉽지 않다.

그런데 지난 5월27∼29일에 실시된 2006년 제4회 해기사 면허시험에서 여수 용동 지역 어민들의 합격률은 거의 90%에 육박했다. 그전에는 여수 지역의 해기사 시험 합격률이 30%도 채 되지 않았다고 한다. 놀라운 성적을 거둔 뒤편에는 전남 여수해양경찰서 녹동광역파출소 용동출장소장 박상환 경사(42)가 있다. 박 경사는 손쉽게 해기사 면허를 취득할 수 있도록 야학까지 개설해 어민들의 공부를 도와온 ‘족집게 강사’ ‘박 교수’로 불린다. 이번 시험에서 박 경사로부터 도움을 받아 공부해온 270명의 ‘수험생’ 가운데 229명이 합격했다.

여수대 어업학과를 졸업하고 3급 항해사 자격을 취득해 해양경찰에서 17년 동안 근무하고 있는 박 경사가 해기사 시험 강사로 나선 건 2004년 2월. “해양경찰 사건사고를 담당하면서 보니까 많은 어민들이 체계적인 교육을 받지 못해 해난 사고가 나도 대처하는 법을 잘 모르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어민들을 도울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죠. 어민 누구나 20∼30년간 어선을 운항했기 때문에 모르는 것이 없다고 하지만, 사실 해기사 시험을 보려면 전문용어들이 등장하기 때문에 합격할 자신이 없다고 걱정하더군요.”

박 경사는 당장 마을회관에서 어민 20여 명을 대상으로 야학을 개설하고 무료강의에 나섰다. 사비를 들여 시험 문제집도 만들었다. 무료로 문제집을 받은 어민들은 틈틈이 공부하다 어려운 용어가 나오면 박 경사한테 직접 전화해서 물어보기도 했다. 시험을 코앞에 두고는 시험 3일 전부터 밤에 야학을 만들어 지역 주민 300여 명을 집중 교육했다. 박 경사는 2004년부터 술도 끊었다. 자신이 만든 문제집을 무료로 어민들한테 나눠주다 보니 사비가 많이 드는데, 이를 벌충하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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