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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 캐럴] 캐럴, 무사귀환의 캐럴을 울려라

등록 2006-04-05 00:00 수정 2020-05-02 04:24

▣ 정인환 기자/ 한겨레 국제부 inhwan@hani.co.kr

“케이티, 나야. 나 풀려났어.”
이윽고 오열이 터졌다. 케이티 캐럴도 통곡을 토해냈다.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온 것은 이라크 저항세력에게 납치·억류됐던 쌍둥이 동생 질 캐럴(28)의 목소리였기 때문이다.
지난 1월7일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에서 무장세력에게 납치됐던 미국인 프리랜서 기자 질 캐럴이 82일 만인 3월30일 오후 무사히 풀려났다. 캐럴은 당시 수니파 정치인 아드난 둘라이미를 인터뷰하기 위해 바그다드 서부 아딜 지역을 찾았다가 괴한들에게 납치됐으며, 그의 통역은 총에 맞아 현장에서 숨졌다. 그를 납치한 무장세력은 ‘복수여단’이란 단체로, 지난 1월17일부터 세 차례에 걸쳐 캐럴의 모습을 담은 비디오테이프를 공개하고 미군이 체포한 이라크 여성들을 모두 석방시키지 않으면 그를 해치겠다고 위협했다.

그의 행방이 묘연해진 사이 이라크 언론을 포함해 각국의 언론사가 그의 석방을 촉구하는 성명을 냈으며, 팔레스타인 집권 하마스와 이집트 카이로에 본부를 둔 무슬림형제단 등 이슬람 단체들도 그의 무사귀환을 기원했다. 반면 캐럴의 석방을 돕겠다며 금품을 요구하는 사기꾼도 극성을 부렸다. 특히 그를 납치한 단체에서 최근 탈퇴해 구명에 적극 나서주겠다며 접근해온 한 남성은 추적 끝에 독일에서 체포됐는데, 이라크엔 단 한 차례도 가본 적이 없는 나이지리아인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캐럴은 석방 직후 등과 한 인터뷰에서 “억류 기간 동안 단 한 번도 위협이나 폭행을 당한 일도 없으며, 음식도 충분히 제공했다”며 “샤워도 맘대로 하고 화장실도 자유롭게 드나들었으며, 가끔씩 이라크 여성이나 어린이들과 어울릴 기회도 있었다”고 말했다.
미 매사추세츠주 암허스트대학에서 신문학을 전공한 그는 1999년 대학 졸업과 함께 한 일간지에서 취재보조원(일종의 견습기자)으로 일했으며, 2002년 8월 ‘어려서부터 꿈꿔온’ 특파원 생활을 직접 개척해나가기로 결심하고 중동으로 향했다. 2003년 4월 미군의 바그다드 점령과 함께 이라크로 들어간 그는 이후 납치되기 전까지 미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에 정기적으로 바그다드 상황을 전해왔다. 그는 지난해 <아메리칸리뷰 오브 저널리즘>에 보낸 기고문에서 “전쟁을 취재하는 것은 기자라는 직업의 가장 숭고한 신념을 일깨워주는 좋은 계기가 된다”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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