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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하] 유학 엄마의 배짱은 ‘짱’

등록 2005-12-29 00:00 수정 2020-05-02 04:24

▣ 김소희 기자 sohee@hani.co.kr


세상이 날 버리면 어쩌나 전전긍긍하던 주부가 태평양을 건너 아메리카에서 공부할 확률은 얼마나 될까? <씨네21> 기자였던 오은하(36)씨는 둘째까지 낳고서 내가 주인공인 인생 ‘챕터1’과 애들이 주인공인 ‘챕터2’의 기로에서 머리 쥐어뜯다 탈출을 감행했다. 2004년 3월 한창 손 가는 큰애와 젖먹이 둘째를 매달고 ‘한국 전업주부 아줌마 풀브라이트 장학생 1호’로 미국에 갔다. 남편도 달고 갔다. 코딱지만 한 가능성에 기댄 결과이다. 신문기자이자 ‘대한민국 싸나이’인 남편은 휴직을 하고 손에 습진이 잡히는 ‘주부’가 돼 아내의 미국 정착을 지원하는데….

여기까지라면 나름대로 아름다운 본보기나, 이어지는 파란만장 미국 생활은 ‘코믹스릴러판타스틱’ 짬뽕 버전의 ‘바보들의 행진’이다. ‘용감무쌍 아줌마의 좌충우돌 유학분투기’라는 부재를 단 <내 꿈이 뭐였더라?>(오은하 지음, 지안 펴냄)는 “애 키우고 살림하다 인생 종쳤나 싶은 주부들”에게 위로와 정보를 건넨다. 주인공 오씨가 솔직하게(혹은 어쩔 수 없이) ‘망가져준’ 결과다. 남편은 1년 뒤 한국으로 ‘역탈출’했고, 오씨는 텍사스주립대 라디오-텔레비전-필름학과 석사 과정에 다니며 애 둘을 키우고 있다.

애초부터 환상은 없었지만 현실은 가혹했다. 오씨는 “미국은 교육 천국이다, 영어는 저절로 배운다, 왕따도 치맛바람도 없다, 학교만 믿으면 오케이다 따위의 루머 퍼뜨린 사람 얼굴을 좀 보고 싶다”고 한다. “어딜 가든지 돈 많고 부모 설치는 애들이 좋은 교육을 받는데, 신자유주의 무한경쟁 속에서 어느 나라 꼬마든 무사하겠느냐”는 것이다. 미국은 소개서에 써낸 학업 열망 하나를 믿고 아줌마를 뽑아준 열린 사고의 나라임과 동시에 유색인종은 애 어른 할 것 없이 경멸과 이질감을 담은 눈빛을 도처에서 맞닥뜨려야 하는 ‘여러 얼굴의 나라’다. 그렇다면 아줌마가 유학 와서 좋은 점은? “너무 바쁘고 정신이 없어서 무익한 감정앓이를 덜한다는 거, 애들이 엄마의 ‘프로젝트’를 개무시해도 ‘아이고 잘됐다, 니네끼리 다 해’ 하고 내버려둘 배짱이 생긴다는 거, 내 인생이 저 사람에게 달렸다는 생각에 괜한 원망을 했던 남편이랑 사이도 좋아진다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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