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길윤형 기자charisma@hani.co.kr
원종철(59)씨는 ‘아마추어’ 사진가다. 그의 사진 속의 인물들은 정부의 공식 기록사진이나 신문사의 보도사진에는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들은 1960년대를 평범하게 살아갔던 장삼이사들이다. 아이들은 얼어붙은 청계천 위를 강아지와 함께 뛰어다니고, 개천 둔치의 염색공장에서는 호빵 모자를 눌러쓴 남자가 옷감들을 대나무 장대에 널며 웃는다. 그 뒤편에는 청계천의 판잣집들이 끝없이 이어지는데, 그중 하나에서 나온 여자아이는 사기 요강을 양손으로 받쳐들고 사다리를 내려간다. 그는 청계천 주변의 평범한 일상을 필름에 담아, 지금은 어디서도 볼 수 없는 희귀한 사진들을 만들어냈다. 그의 작품은 지난 10월3일부터 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전시 중인 ‘청계천 사진전’에서 만날 수 있다.
“고등학교 때 집에 수동 카메라가 한 대 있었거든요. 그 사진기를 들고 주말마다 청량리·난지도·뚝섬 등을 돌며 사진을 찍었습니다. 60년대 초만 해도 사진기 있는 집이 거의 없었죠. 사진 찍는 게 재미있어서 대학도 서라벌 예대 사진과로 진학했고요.” 당시 우리나라에서 사진을 배울 수 있는 곳은 서라벌 예대가 유일했다.
졸업한 뒤 서울시 공무원으로 입사했지만, 사진을 포기할 순 없었다. 그는 서울시의 전 지역을 찍은 항측사진을 수백 장으로 나눠, 북한산 등 그린벨트 안에 지은 불법 건축물을 가려내는 일을 했다. 1984년 서울지하철공사가 발족한 다음에는 홍보팀의 사진 전문 직원으로 자리를 옮겨 각종 행사나 홍보용 자료사진을 찍었다. 지하철을 배경으로 틈틈이 짬을 내 찍은 사진이 4만여 점이나 된다. 지하철과 도시 사람들의 일상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그의 사진은 입소문을 타고 퍼졌다. 원씨는 “1992년 11월 경복궁역 전시장에서 첫 전시회를 열었다”고 말했다.
2002년 난지도 공원이 개장했을 때는 ‘꿈꾸는 섬 난지도’라는 제목으로 두 번째 사진전을 열었다. “고향을 잃어버린 난지도 주민들이 사진전을 보고 찾아왔더라고요. 사진 속에 아버님 모습이 나온다고 제 손을 잡고 우는데 저도 감격해서 같이 울었습니다.” 평범한 고등학생의 시선으로 본 60년대 난지도의 풍경은 여러 언론에 소개돼 사람들의 마음속에 깊은 울림을 남겼다. “소원요? 아직 공개 못한 뚝섬 쪽의 사진이 있는데, 그 사진들을 모아 전시회를 한 번 더 열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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