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도시의 문화평론가 고길섶(40)씨가 시골의 문화평론가로 탈바꿈했다.
서울의 시민단체인 문화연대에서 활동하며 각종 문화현상을 분석하는 글을 썼던 그가 고향인 부안 줄포면으로 내려온 지 벌써 3년째다. 문화평론가가 왜 시골에 가냐며 고개를 갸우뚱거리던 주변 사람들이 그의 진득함에 놀라고 있다. 벌써 책도 여러 권 내고 이젠 문화센터도 운영한단다.
2~3분마다 시내버스가 다니던 서울에서 23년을 살다가 군내버스 몇 차례 들어오지 않는 곳에서 자동차도 없이 살기란 쉽지 않아 보였다. 그러나 고씨는 특유의 노마드적인 생활감각으로 시골생활에 완벽히 적응했다.
“생각만큼 어렵지 않았어요. 부안에 귀농하러 돌아왔으면 힘들었겠지만, 여기서도 프리랜서로 살고 있으니까요, 뭐.”
운동권은 어딜 가나 ‘당기는’ 사람이 있는 걸까. 고씨는 부안에서조차 운동판으로 당겨졌다. 그가 부안에 내려오자마자 마침 부안 핵폐기장 반대투쟁이 일어난 것. 그는 반핵부안대책위원회의 교육국에서 일하며 촛불집회 강연을 주도했다. 서울의 시민단체 인사들을 데려다 촛불집회의 강사를 맡게 했다. 부안의 촛불집회가 훗날 ‘민중교육의 장’이었다는 평가를 받은 것도 다 그의 숨은 공로였다. 최근엔 부안투쟁을 주민권력의 구성적 관점에서 기록한 <부안, 끝나지 않는 노래>에 이어 <스물한통의 역사 진정서>라는 책을 냈다. 해방 뒤 언어를 매개로 한 각종 역사적 사건을 소개하면서 권력이 어떻게 민중의 언어에 영향을 끼치는지를 미시적으로 보여준 글이다.
“폭압적인 정권 시절에는 제주 4.3항쟁의 체험을 주민들은 말할 수 없었죠. 심지어 무당이 굿하는 동안에도 망자가 어떻게 억울하게 죽었는지 내력을 말하지 않았어요. 집단적 실어증에 걸린 거였죠.”
그런 그에게 매일 출근해야 할 터전이 생기게 됐다. 오는 12월 변산면 마포초등학교에서 문을 열 ‘부안 생태문화 활력소’다. 부안의 자연·생태·문화를 보여주는 전시관, 독립영화 등 각종 영상물을 볼 수 있는 영상미디어의 집 등 주민들이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문화시설로 구성됐다. 사라지는 새만금 갯벌에서 작업하는 사진작가 허철희씨, 민주노동당 부안지역위원회 위원장인 구장회씨와 함께 지난해부터 준비한 결실이다.
“여기가 고향 땅이라 그런지 편해요. 부안투쟁을 겪으며 사람들과의 관계를 넓혀간 것도 좋았고요.”
부안읍에 나가면 고씨를 보고 아는 체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도시의 문화에서 시골의 문화현장으로 들어간 그의 다음 성과가 무엇일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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