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슬란=글·사진 박현봉 전문위원 parkhb_spb@yahoo.com
1년 전 베슬란 제1학교 인질극 사건은 어린이 186명을 포함해 331명의 무고한 목숨을 앗아갔다. 러시아 수사당국의 무성의한 태도는 평범한 가정주부였던 희생자 어머니들을 반정부 투사로 변신시켰다. 마리나 박(40)도 그랬다. 그는 첫 폭발이 일어날 때 그 자리에서 바로 숨진 희생자 중 1명인 스베틀라나 초이(당시 12살)의 어머니다.
그간 박씨를 포함해 분노에 가득 찬 희생자 어머니 등 유족들은 항의 서면과 시위 등으로 지속적으로 당국의 공식적인 사과와 무리한 진압작전을 편 책임자 처벌을 촉구해왔다. 산발적으로 터져나오던 항의 목소리는 올 4월 베슬란 어머니회가 출범하면서 조직화됐다. 박씨가 ‘반정부 투사’로서 본격적인 행보를 시작한 것도 이 단체의 공동대표를 맡으면서였다. 박씨는 다니던 직장도 그만두고 피켓시위를 조직하고 공식 항의서를 작성하고 사건 관련 단독조사 작업을 벌이는 등 사건 진상 규명에 열의를 바쳐왔다.
박씨는 당국의 발표가 완전히 허구라고 말한다. 당국은 3일째 현장에서 즉사한 인질범의 발목에 달려 있던 폭발물이 우연히 터지면서 상황이 걷잡을 수 없게 변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체포된 인질범 쿨라예프의 증언과 여러 정황증거로 보아 즉사한 인질범을 사살한 것은 러시아 저격병이었다. 박씨는 러시아군이 네이팜탄을 사용했다고 주장했다. 이 포탄이 발사되면서 체육관 지붕이 불타 아래로 떨어져 일시에 대규모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이같은 인질극이나 테러 사태에 대비해 특별히 훈련받은 특수부대가 있는데도 사건 현장에 평범한 군대를 동원했다며 러시아 공안당국의 무성의한 사건 대응을 질타했다.
박씨는 사건 직후 “어머니가 안 계셨더라면 수녀원에 들어가려고 했”을 정도로 충격이 컸다. “딸을 곱게 키우느라 조그만 벌레 하나도 함부로 죽이지 못하게 했는데 사건 이후 총이라도 있으면 주변의 누구라도 마구 사살하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박씨는 스베틀라나가 입학하던 때부터 줄곧 한해도 빼놓지 않고 개학식 때 학교 행사에 참가했다. 하지만 그날은 바뀐 교복을 준비하지 못해 다음날 보내려고 했다. 그런데 아이가 학교 행사에서 시 낭송이 있다고 해서 부랴부랴 학교를 보냈다. 그래서 더욱 그의 자책이 깊다.
박씨가 정착한 베슬란은 오랜 유랑의 종착지였다. 카자흐스탄에서 태어나 사할린을 거쳐 러시아 남부 북오세티야 공화국으로 이주해왔다. 그는 이 도시에서 초·중등학교를 졸업하고 인근 도시 블라디카프카스에서 의상디자인 전문대학을 수료했다. 그는 공연의상 디자인 학원 교사를 지내면서 스베틀라나를 키웠다. 스베틀라나의 꿈은 저널리스트와 모델이었다. 누가 뭐래도 너는 자랑스러운 ‘카레얀카’(한국인)임을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해왔던 박씨의 꿈은 스베틀라나가 성장해 한국을 방문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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