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그를 처음 만난 건 약 4년 전인 2001년 11월 어느 날. 충남 금산에 자리잡은 ‘벤처농업대학’의 강의와 토론 현장을 취재하는 자리에서였다. 벤처농업대학은 농업인, 학자들의 공동연구 모임으로 폐교된 금산 금강초등학교 건물에 둥지를 틀고 있었다.
그가 내민 명함에는 ‘재정경제부 부이사관·국방대학원 파견’으로 적혀 있어 좀 의아스러웠다. 정통 ‘재경 관료’와 ‘국방’과 ‘농업’의 기묘한 부조화라니….
재경부 국세심판원 상임심판관으로 일할 때 잠깐 만났을 뿐 까맣게 잊고 있던 그의 소식이 올 9월 들어 과천에서 잇달아 들려왔다. 재경부 1급 자리에 올랐다는 소식에 이어 ‘농산업 발전을 위한 제언’이란 비매품 책자를 자비로 발간해 직원들에게 나눠주고 있다는 얘기였다.
이름과 꼭 어울리게 편안한 얼굴의 장태평(56) 정책홍보관리실장이 농업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1984~85년 옛 경제기획원 예산실에서 농수산부 예산 업무를 담당할 때였다. 농정 전환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농공단지 구상, 농어촌 종합개발 계획 등이 활발히 제시되던 시절이었다. 다른 여러 부서를 거치면서도 유독 농업 문제에 관심이 끌렸던 이유는 자신도 잘 모르겠다며 웃었다.
어쩌면 꼭 20년 전 삶을 마감하는 줄 알았던 그 일과 관련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탱크처럼 일하던 그는 85년 직장 건강검진 때 간에 혹이 있는 걸로 나와 처음엔 암인 줄 알았다고 한다. 며칠 뒤 ‘혈관종’(물혹)으로 판명났는데, 최종 결과를 기다리는 보름 동안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 그 뒤의 삶은 ‘덤으로 사는 인생’으로 여기게 됐다. 고등학교 때부터 써온 300여편의 시 가운데 98편을 추려 2001년에 시집 <강물은 바람따라 길을 바꾸지 않는다>(나비 출간)를 펴낸 데서도 이런 삶의 태도가 엿보인다.
주위에서 전해들은바 그는 98년 12월 <기업 구조조정과 세제 지원>이란 책을 펴내 인세를 개안수술비로 실로암병원에 기부하고 시집의 인세도 개안수술비와 장애인 후원금으로 냈다고. 지난 2000년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 때 사업부장으로 각국 정상들이 우리 민속주로 건배를 하도록 하는 이벤트를 연출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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