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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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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아라, 꼬마 독수리 5형제!

등록 2005-09-01 00:00 수정 2020-05-03 04:24

고양 국제어린이영화제에 작품 올린 경남 김해시 계동초등학교 영화감독들
94명이 참여하는 영화부, 시나리오·연기·촬영 함께하며 발칙한 작품 쏟아내

▣ 하어영 인턴기자 ha5090@dreamwiz.com

지난 8월23일 경기도 고양시 덕양어울림누리 고양어울림극장. 고양 국제어린이영화제 스태프들이 멀리서 오는 감독들이 도착하기만을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들이 기다리는 감독은 누구처럼 세계적으로 이름난 감독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전혀 무명의 감독도 아니었다. 지역 사회에서 알 만한 사람은 아는 감독들, 김보람과 시네마천국, 이희재와 아이엠에스, 정다운과 무비걸스 앤드 보이스, 정아름과 미스터리, 정문도와 스크린 등이었다(이들은 자기를 소개할 때면 꼭 자신의 이름 옆에 함께한 동아리 이름을 달았다). 경남 김해시 계동초등학교에 다니는 이들은 영화를 전문적으로 배운 지 6개월 만에 어엿한 감독으로 무대에 올라 관객들을 만났다.

올해 처음으로 열린 고양 국제어린이영화제. 1천만 관객 시대를 맞아 영화 감상이 ‘국민 취미’가 됐다지만 정작 <벡터맨>이나 <옥동자와 드라큘라> 같은 영화를 좀처럼 영화관에서 만날 수 없었던 어린이들에게는 가뭄에 단비 같은 행사였다. 월드프리즘, 국제단편 경쟁 등 어린이들을 위한 32개국 142편의 영화가 성황리에 상영됐다. 모두 104편의 출품작 가운데 예심을 거친 15편의 어린이 작품들이 경쟁한 ‘어린이가 만들 영화 국내 공모전’ 부문의 상영작들은 어른들이 바라보는 어린이의 세계가 얼마나 편협한지를 단박에 깨닫게 했다. 한마디로 ‘초딩’ 감독들의 영화는 다양한 모습으로 발칙했다.

PC방 노래방에 갈 시간이 없다

어린이 감독들의 작품은 애니메이션부터 CF 형식의 도입, 뮤직비디오, 마리오네트 인형극(실로 매달아 조작하는 인형극), 다큐멘터리까지 장르를 불문하고 기발한 상상력을 뽐냈다. <어른들은 못 말려>를 출품한 정문도 감독은 뜻밖에 ‘가수 지망생이었다. 이유도 그럴듯했다. “자신을 표현한다는 점에서 노래나 영화나 마찬가지”라고. “학원을 빼먹을 때는 불안감도 느꼈어요, 엄마도 걱정이 많았고….” 하지만 후회는 없다고 했다. “이것도 다 미래를 준비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내가 만든 영화를 사람들과 보고 무대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경험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죠.”

역시 어린이 영화도 혼자 만드는 게 아니었다. 함께한 친구들 이야기를 빠트리지 않았다. “영화를 만들 때는 정말 다양한 친구들이 참가했어요, 보통의 영어회화반이나 미술반과는 다른 분위기죠, 좀 논다 하는 친구들부터 범생이들까지. 또 누구 한 사람이 만들었다고 보기도 힘들죠. 시나리오, 장소 섭외, 캐스팅, 촬영까지 대부분 함께했거든요.” 그럼 감독은 누가 하냐는 질문에는 “하고 싶은 사람”이라고 한다. “사실 감독은 친구들 전체가 몫이었어요.” 소재를 선정하려고 반 아이들에게 설문조사를 하면서 학급 전체가 하나가 됐고 연기와 제작 과정까지 함께 고민하면서 영화가 완성됐다고 한다.

이렇게 영화동아리뿐만 아니라 뜻있는 학급 친구들이 열성적으로 참가해 영화를 만들면서 어린 감독들이 영화를 대하는 태도도 달라졌다. 영화를 ‘핑계로’ 학원을 빠지는 일상에서, 영화를 ‘위해’ PC방이나 노래방에 가지 않는 생활로 바뀐 것이다. “당연하죠, 재미있으니까요! 영화 만들면서 놀았죠.” <아빠와 리모콘>을 연출한 정다운 감독은 친구들과 영화를 찍으면서 취미생활이 ‘영화 그 자체’가 됐다고 한다. “친구들이 더 많이 일했는데 감독이란 말을 듣는 게 좀 그래요.” 친구들이 영화 제작 현장에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힘이 됐으리라.

장르 각양 각색… “중학교 가기 싫어~"

현재 정다운 감독은 중학생이다. 지난해를 떠올릴 때 힘들었던 것은 영화 제작보다는 일주일에 2시간씩 배우는 영화이론 공부였다. “카메라를 잡고 영화를 찍는 과정은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였죠.” 재미와는 별개로 영화 제작이 수월하게 이뤄지지는 않았다. 영화를 전담하는 장윤실 강사의 지도로 이론에 어느 정도 눈을 뜰 수 있었지만 그것으로 영화를 만들 수는 없었다. 문제는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 대해 도움을 얻을 만한 곳을 찾을 수 없다는 데 있었다. 기자재가 모자라는 것은 몇몇 교사들이 개인 물품을 지원해 가까스로 해결했지만 영화 제작에 관련된 어려움을 모두 해소할 수는 없었다.

궁하면 통한다고 했던가. 어린이 영화계의 ‘독수리 오형제’를 키우는 데 ‘몸으로 때우는’ 14명의 교사들이 나섰다. 이들은 동아리에 도우미로 참가해 주로 편집에 관련된 기술적인 부분과 영화이론 강사 섭외, 제작과 관련한 허드렛일에 발벗고 뛰어들었다. 이 과정에서 아이디어는 철저하게 어린 감독들의 머리에 의지했고, 제작 진행은 어린 스태프들의 손에 맡겼다. 단일 규모로는 전국 최대로 꼽히는 94명이 영화부에 참가(94명은 학급별로 14개의 동아리로 나뉘어 있다)할 정도로 전교생의 관심은 뜨거웠다. 단기간 내에 보여준 성과(한국영화학회 주최 10·18영화제 대상과 우수상 수상)는 학생과 교사를 하나로 만들었다.

이렇게 한 학기가 흐르면서 어린 감독들의 아이디어는 빛나기 시작했다. 이내 그들의 눈높이에서 다양한 장르의 영화가 탄생하게 되었다. “학부모요? 입김이 작용했다고 하기에는 영화가 너무 순수하지 않나요? 그리고 아이들 어머니 가운데는 아직 영화를 못 보신 분들도 있어요.” 영화부 담당 최진숙 교사의 말대로 치맛바람의 영향은 결코 없었다는 사실은 영화의 내용과 참가한 친구들의 면면에서 그대로 입증됐다. “아무것도 모르고 맨땅에 헤딩한 우리도 스태프였죠, 기대했던 것보다 결과가 너무 좋아서 어리둥절하기까지 합니다”며 최 교사는 영화제 내내 들뜬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이번 어린이영화제에서 김해 계동초등학교는 출품한 다섯편 중 세편이 입상하는 성과를 올렸다. 시상식이 끝나고 어린이 감독들은 서로에게 축하와 위로를 던지고 있었다. “그래도 상을 못 탄 둘은 올해도 영화를 만들 수 있잖아요.” 우수상을 받은 정다운 감독은 오히려 수상을 하지 못한 두 친구를 부러워하는 눈치였다. 공교롭게도 이번에 상을 탄 세명이 모두 이미 중학생이었다. 세명 중 어느 누구도 중학생이 되면서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기회는 없었다. 초등학교 시절 어렵사리 영화를 취미로 삼게 됐지만 졸업을 하고 나니 상황이 달라진 것이다.

영화를 찍으며 노는 데 익숙한 어린이 감독들. 이들이 영화 촬영 현장 밖에서 느껴야 할 상실감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런 아쉬움을 어떻게 푸느냐는 질문에 돌아온 대답은 또다시 뜻밖이었다. 여전히 세 감독의 눈빛은 빛났다. “기다리면 기회가 오겠죠.” “애니메이션고등학교에 가서.” “영화를 졸업한 것은 아니잖아요.” 영화를 즐길 줄 아는 어린 감독들은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도 날고 있을 것이다. 94명의 영화부는 시나리오를 의논하고, 카메라를 들여다보면서, 중학생이 된 감독들은 시나리오를 준비하고, 거실의 비디오로 아쉬움을 달래며 영화를 즐길 것이다. 독수리 5형제여, 멈추지 말고 날아라!



“이단옆차기, 아직도 합니다”

다양성과 개성 모색하는 방과후 특기적성교육

일주일에 한번 교내 선생님들에 의존하던 예전의 특별활동의 모습은 많이 바뀌었다. 미술반, 웅변반, 보이스카우트 등이 대부분이었다면 이제는 영어회화나 발레, 플루트 등이 추가되었고 외부 강사를 초빙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수요자의 눈높이에서 사교육 시장의 흐름을 적극 반영한 것으로 저렴한 가격에 양질의 취미생활을 누릴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물론 지역에 따라서는 (학생 수가 적은 경우) 전액 무료로 지원하기도 한다.
이렇게 다양한 취미생활을 위한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는 가운데에서도 꿋꿋이 30년 전통을 지켜가고 있는 초등학교도 있다. 1988년 올림픽을 떠올리는 사람이라면 미동초등학교 학생들의 애크러뱃에 가까운 일사불란한 ‘이단 옆차기’를 기억할 것이다. 여전히 미동초교에서는 전교생을 대상으로 한 태권도부를 모집하고 있으며 방과후 특기적성교육 선도학교로 발표회를 열었다. 최근에는 엘리자베스 여왕 한국 방문 때 시범을 보이기도 했다. 다양한 방과후 특기적성교육 프로그램에서 다른 조짐이 보이기도 한다. 학교 밖에서는 경험하지 못할 만한 영화 만들기(김해 계동초등학교)나 사물놀이(무주 괴목초등학교), 민족무예 십팔기 수련(서울 오금초등학교) 등이 그것이다. 이는 공교육의 비교우위를 얻기 위한 노력들 가운데 성공한 사례들로 교육 성과가 탁월하다는 것이 검증되어 활성화의 조짐이 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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