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병역거부운동의 기획자이자 조정자이자 실행자인 ‘어린 대모’ 최정민을 아십니까?
▣ 글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너무 늦었다. 그가 입버릇처럼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듯, 가방끈 짧고 나이 어리고 여자라고 소홀히 다룬 것은 아니었다. 제발 이렇게 쓸 수 있었으면 좋겠지만, 한국의 기사 관행에 처절히 굴복해온 기자로서는 감히 아니라고 주장하지 못한다. 솔직히 그가 명망 있는 교수나 변호사였다면, 나이 지긋한 사회운동가였다면, 그에게 진작에 인터뷰를 요청했을 것이다. 배은망덕이다.
오태양보다 먼저 언급돼야 할 인물
그는 병역거부 기사에서 가장 많이 등장한 인물이다. 필요할 때마다 그에게 전화해 자문을 구했다. 그만큼 병역거부운동에 대해 ‘빠삭’하다는 것이다. 서너해 동안 줄기차게 전화를 해대면서도 그를 인터뷰할 기회를 계속 미뤄왔다. 내 무의식이 그랬다. 정말 너무 늦었다. 그의 이름은 최정민(34). 직함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실현과 대체복무제 개선을 위한 연대회의’ 공동집행위원장이다. 한국 병역거부운동에서 가장 먼저 언급돼야 할 사람이 있다면, 그 이름은 오태양일 수도 있고 여호와의 증인일 수도 있지만, 적어도 일부 사람들은 ‘최정민’을 꼽을 것이다. 그는 한국 병역거부운동의 기획자이자 조정자이자 실행자다. 병역거부운동은 그에게서 시작됐고, 그와 함께 발전해왔다. 5월15일 세계 병역거부자의 날을 핑계 삼아 미뤄온 숙제를 하기로 결심했다.
20대의 젊은 병역거부자들과 어울리다 보니 30대 초반의 나이에 ‘졸지에’ 대모가 돼버렸다. 팔팔한 병역거부자들은 덜 팔팔한 그를 “병역거부자의 대모” “위원장님”이라고 부른다. 물론 놀리는 말이다. ‘어린’ 나이에 연대회의 공동집행위원장의 직함이 걸맞지 않기 때문이다. 심지어 민가협의 임기란 어머니가 최정민씨에게 “오태양씨 어머니냐?”고 물어본 적도 있다. 얼마 전 감옥에 간 병역거부자는 “마지막 소원”이라며 “한번만 ‘이모’라고 불러보고 싶다”고 해서 그를 경악케 했다. 그는 몸서리칠 만큼 싫어하지만, 농담 속에 뼈가 있는 법. 그의 외모는 대모스럽지 않지만, 활동은 대모스러웠기 때문이다. (여호와의 증인을 제외한) 한국의 모든 병역거부자들은 그의 손을 거쳐갔다. 사회운동에도 공짜는 없는 법. 젊은 나이에 “위원장님”의 직책을 얻은 것도 활동을 인정받은 결과다. 그는 병역거부자를 가장 먼저 만나고 가장 나중까지 뒤치다꺼리하는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병역거부자들과 같이 회의를 하고 집회를 준비하고 감옥에 보내는 일까지 그의 몫이었다. 여호와의 증인들과 병역거부운동 사이에 다리 구실도 해왔다. 10여명의 병역거부자들을 ‘보내’면서 가장 가슴 아팠던 순간은 이라크 파병에 반대해 부대 복귀를 거부하던 강철민씨가 바로 눈앞에서 잡혀갈 때였다. 그는 “시위대와 함께 있던 철민씨가 전경들 속으로 블랙홀처럼 빨려들어갈 때, 슬픔이 복받쳐올랐다”고 돌이켰다.
아나키한 감수성으로 만든 평화인권연대
사건이 터지면 전화가 불난다. 서울남부지법의 병역거부자에 대한 무죄 판결, 헌법재판소의 병역거부 합헌 결정처럼 굵직한 사안이 터지면 기자들은 가장 먼저 그에게 전화를 한다. 그리고 처음에는 뜨악해한다. 최정민이라는 중성적인 이름 탓에 그가 남자일 것으로 추측했다가 막상 전화를 해보면 ‘여자’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병역과 관련된 운동은 당연히 남자가 주도해야 한다는 통념은 뿌리 깊다. 심지어 그가 속한 평화인권연대 사무실 전화를 그가 받으면 재빨리 “최정민씨 바꿔달라”고 하는 기자들도 있다. 헷갈리기는 독자들도 마찬가지다. <한겨레>에 병역거부 칼럼을 쓰자 항의 메일이 왔다. 꼬박꼬박 “최정민군”이라고 불렀다. 칼럼에 사진까지 딸려 있었는데도, 남자로 생각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는 “병역거부운동을 처음 시작할 때는 공격당하면 악몽을 꾸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평화운동가이면서 여성주의자다. 2001년 ‘운동사회 성폭력 뿌리뽑기 여성 100인 위원회’(100인위)의 활동가였다. 그를 처음 만난 것도 100인위 취재 때였다. 100인위에 관한 이야기를 끝내고 자장면을 함께 먹다가 여호와의 증인 이야기를 들었다. 그가 속한 평화인권연대의 활동가들이 여호와의 증인 한국본부를 방문했다는 이야기였다. 병역거부가 중요한 시민권이라는 짧은 설명도 들었다. 그리하여 병역거부 기사가 나왔고, 병역거부운동이 시작됐다. 그가 속한 평화인권연대는 90년대 학번들의 운동단체다. 90년대 초반 학번은 대학에서 현실 사회주의의 몰락을 경험했고, 신사회운동의 물을 먹은 ‘낀’ 세대다. 그들의 눈에 기존 사회단체는 보수적이고, 관료적으로 보였다. 그는 “제대로 된 평화단체가 없다는 오만한 생각을 했다”고 돌이켰다. 급진적인 운동을 수평적인 방식으로 해보고 싶은 욕망이 간절했다. 그래서 사회단체에 들어가는 대신 새로운 단체를 만들었다. 1998년이었다.
‘평화인권연대’라는 이름은 모호한 절충의 산물이었다. 평화운동도 하고 싶고, 인권운동도 하고 싶고, 연대도 해야 할 것 같아서 모두 모으다 보니 평화인권연대가 됐다. 하지만 그들의 이름에는 시대의 욕망이 담겨 있다. 비록 그들의 욕망이 미숙했을지도 모르지만, 미숙한 욕망은 병역거부운동의 동력이 됐다. 반세기 동안 존재했으나 아무도 권리로 접근하지 않았던 병역거부를 ‘운동’으로 이끌어냈다. 무엇보다 개인의 욕망을 중요시하고 아나키한 감수성이 없었다면, 병역거부는 아직도 운동이 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당시에는 비슷한 동기에서 출발한 단체들이 있었다. 부문별로 ‘국제연대정책정보센터’(PICIS), ‘청년생태주의자 KEY’ 같은 ‘자매 단체’들이 잇따라 생겼다.
포부는 원대했지만, 현실은 냉정했다. 그로부터 7~8년이 흘렀고, 평화인권연대만이 남았다. 그는 평화인권연대의 생존 비결로 “느슨한 활동가 네트워크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평화인권연대의 활동가들은 각자 활동 분야를 따로 가진다. 소통은 한달에 한번 모이는 ‘월례수다회’를 통해 해결한다. 세월은 평화인권연대를 비켜가지 않았다. 사회운동을 하면서 다른 단체와 연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비판 대상이 연대의 주체가 된 것이다. 최정민씨는 “같이 활동을 하면서 기존 단체에 대해 가졌던 관념이 대부분 오해였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반성도 하고, 때도 묻었다”고 말했다. 그는 연대회의 집행위원장을 맡으면서 ‘본명’도 되찾았다. 연대회의 활동으로 시민단체의 어른들을 만나고, 여호와의 증인들과 함께 일하면서 ‘최정민’으로 자주 불리게 된 것이다. 예전에는 비슷한 연배의 활동가들과 함께하면서 ‘오리’라는 별명을 주로 썼다.
고기를 끊고 채식만 하는 이유
평화운동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 생활도 바꾸었다. 고기를 끊고 채식만 하게 됐다. 생명을 살리는 평화운동가로 생명을 죽여서 얻은 고기를 먹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국제연대 활동을 하다 보니 외국 평화운동가들에게 채식주의는 상식이었다. 그는 언젠가 “평화운동 하기 쉬운 줄 알아?”라고 말한 적이 있다. 평화운동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신념뿐 아니라 생활이 바뀌어야 한다는 깨달음이다. 그는 영어 공부도 열심이다. 국제 연대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영어라는 수단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2001년에 그와 함께 터키 국제회의에 다녀온 적이 있다. 그때 우리는 꿀 먹은 벙어리였다. 하지만 그는 요즘 한국에 오는 외국 활동가들을 안내하고, MSN 메신저로 영어 회의를 할 만큼 어학 실력이 부쩍 늘었다. 어린 대모는 오늘도 ‘젊은 것들’에게 사랑과 놀림을 한꺼번에 받으면서 묵묵히 갈 길을 가고 있다. 단지 그게 즐겁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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