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고용촉진 운동에 바쁜 중증장애인 박은수씨… “돈으로 때우지 말고 의무고용률 2% 지켜라"
▣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중증장애인은 장애인 중에서도 소수자다. 장애인 단체에서도 중증장애인 활동가는 흔하지 않다. 그래서 휠체어를 타야 하는 중증장애인으로 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 이사장을 맡고 있는 박은수씨의 존재는 각별하다. 박 이사장이 휠체어를 타고 백방으로 뛰어다닌 덕분에 ‘단군 이래 최초로’ 지난해 말 정부부문 장애인의무고용률 2%를 넘어섰다. 그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고 손사래를 치지만 장애인 노동권 확보를 위한 중요한 한 걸음인 것만은 분명하다. “휠체어 타고 다니면서 설득하니까 진실성은 조금 더 있었겠죠.” 그가 주저하며 덧붙인 한마디다.
일류기업은 ‘생산성’ 개념 바꿔라
그의 요즘 화두는 ‘삼성’이다. ‘뜻밖에도’ 장애인 고용률은 대기업일수록 떨어진다. 민간기업 고용률이 1.08%지만 30대 기업은 0.79%에 그치고 있다. 2% 의무고용률에 못 미칠 경우 내야 하는 1인당 고용분담금이 50만원에 불과해 대기업은 ‘돈’으로 때우고 있는 형편이다. 그는 “고용분담금 제도를 통해 퇴로를 열어준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법안을 개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더욱 ‘뜻밖인’ 것은 삼성의 장애인 고용률이 0.26%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장애인의 날 다음날인 4월21일 만난 박 이사장은 삼성에 대한 아쉬움과 기대를 감추지 못했다. 그는 “나눔경영을 내세우는 삼성이 실천하지 않으면 누가 따르겠느냐”며 “전체에 이겨도 삼성에 지면 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 관계자도 만나보고 설득도 해보았지만 사정은 개선되지 않고 있다. 박 이사장은 “장애인 고용은 삼성을 진짜 국민기업, 세계 일류기업으로 만드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호소했다. 그는 의무고용률을 높이려면 ‘생산성’의 개념부터 바꾸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고의 선수 5명을 모아놓는다고 최고의 농구팀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개인 플레이만 고집하다 경기를 망치기 십상이지요. 골을 넣는 선수만큼 패스하는 능력, 양보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장애인은 전체가 조화를 이루는 데 소금 같은 구실을 하는 존재입니다. 장애인과 함께 일하면서 자극을 받으면 오히려 생산성이 향상됩니다.” 그는 “남녀의 성비, 노년과 청년의 비율처럼,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비율도 하늘이 정해준 비율”이라며 “자연의 섭리에 따라 조화를 이루며 사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어쩌면 박 이사장은 ‘잘나가는’ 장애인으로 만족하며 살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를 세상으로 끌어낸 힘은 어쩔 수 없이 부딪혀야 했던 차별의 벽이었다. 그는 사법시험에 합격했지만 법관 임용에서 탈락했다. 성적 탓이 아니었다. 당시 대법원장이 장애를 이유로 그의 임용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그의 나이 스물여섯인 1982년의 일이었다. 그는 묵묵히 차별을 감수하는 대신 맞서 싸우기로 했다. 그의 사연이 알려지자 박완서씨 같은 지식인, 장명수씨 같은 언론인들이 기사와 칼럼을 통해 그의 임용을 촉구했다. 결국 그의 탈락은 번복되었고 법복을 입었다. 그는 고향인 대구 등에서 법관 생활을 마치고, 장애인 운동에 뛰어들었다. 박 이사장은 “나도 도움을 받았으니 다른 사람을 도우는 것은 당연하다”며 “다행히 내가 나서면 일이 잘 풀려서 보람도 컸다”고 말했다. 그는 93년 일찍이 장애인 이동권에 관심을 갖고 ‘장애인이 탈 수 있는 지하철 만들기 운동’을 벌였다. 그가 해온 장애인 이동권, 노동권, 교육권 운동은 오늘날 장애인 운동의 핵심으로 떠오른 의제들이다.
“법관 임용 도움 받았으니, 나도 도와야"
박 이사장은 “인생은 끝없는 도전”이라고 말한다. 어찌 보면 닳고 닳은 말이지만, 그의 인생을 배경으로 하면 감동의 언어로 변한다. 그의 도전은 일에만 그치지 않는다. 90년대에는 운동에도 취미를 붙여서 수준급의 테니스 실력을 갖고 있다. 그는 “올겨울에는 모노스키에도 도전해야 하고, 언젠가는 스킨스쿠버도 해보고 싶고….” 일에서, 인생에서 그의 도전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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