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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돈수] ‘보통 기생’을 사랑했네

등록 2005-01-20 00:00 수정 2020-05-03 04:24

▣ 이유주현 기자 edigna@hani.co.kr


훅~ 담배연기를 내뿜으며 바둑을 두고 있는 여인들의 눈길이 심상치 않다. 국화꽃 옆에 곱게 화장하고 선 자세가 단아하다. 서울 평창동 서울옥션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회(2월13일까지)에 나온 기생들의 모습이다. ‘기생’을 주제로 한 이 전시회는 황진이·이매창 같은 몇몇 걸출한 인물이 아니라 엽서·사진·고서화·장신구·복식·현대미술 등을 통해 ‘보통 기생’들의 삶을 보여준다. 이 가운데 무엇보다 20세기 초반 기생들의 일상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자료는 500여점 가까이 출품된 사진엽서. 미술사학자 이돈수(39)씨의 소장품이다.

20년 전 최루탄가스와 시위로 버무려진 386세대의 평범한 대학생활을 보내던 이씨가 ‘컬렉션’에 눈뜬 건 학교 근처 술집에서였다. 고서에서 뜯어낸 옛 종이로 주점 벽을 도배질한 광경을 보고 충격을 먹은 이씨는 시간과 돈이 허락할 때마다 고서점을 기웃거렸다. 고서적에서 시작된 관심은 이내 고지도로 옮아갔고 이후 지금까지 계속되는 수집가 생활이 시작된다. 한국과 스페인을 오가며 미술사 공부를 한 이씨는 틈틈이 16~19세기 중반 세계 고지도를 수집해 우리나라의 ‘동해’가 예전부터 세계 지리학계에선 ‘한국해’로 명명돼왔음을 입증하기도 했다.

이번에 나온 기생 사진엽서들은 1900~30년대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들이 기념품으로 사갔던 것인데, 고지도를 수집하는 와중에 만난 세계 곳곳 지인들의 인맥으로 얻은 소중한 자료들이다. 이씨는 “사진이 대중화됐던 20세기 초반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이미지가 범람하는 시대였기 때문에 유난히 사진엽서가 발달했고, 관광상품 차원에서 기생을 주제로 한 사진엽서들도 많이 나왔다”고 설명한다.

그의 꿈은 우리의 전통이 쌓여온 켜들을 좀더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고 이해하는 것이다. 지난해 사이버 근현대 이미지 박물관(www.koreanity.com)을 연 것도 그러한 까닭이다. 그는 “선정적인 자료들을 공개하는 ‘이슈메이커’가 아니라 한국성의 뿌리를 알려주는 ‘오피니언리더’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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