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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오쯔양] 비운의 한마디 “미안하다”

등록 2005-01-20 00:00 수정 2020-05-03 04:24

▣ 베이징=박현숙 전문위원 strugil15@hanmail.net


1989년 5월19일 새벽 4시45분께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 자오쯔양(86) 총서기가 나타났다. 단식 농성을 하며 부패 척결과 정치 체제 개혁을 요구하는 수만명의 학생을 향해 해산을 거듭 촉구했다. 다소 초췌하고 피곤한 모습으로 확성기를 쥔 그는 메가폰을 내려놓기 직전 학생들에게 “제군들, 우리들이 너무 늦게 왔다.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학생들에 대한 연민과 안타까움이 배어 있었다. 그리고 이 말을 끝으로 그는 중국 정치 무대에서 자취를 감췄다.

1989년 6월 말 중국 공산당 제13기 4차 중앙위원회 전체회의는 ‘자오쯔양 동지가 반당, 반사회주의 동란(톈안먼 사건을 지칭) 과정에서 범했던 과오에 대한 보고’를 통과시키고 그의 모든 공식 지위와 자격을 박탈했다. 당과 국가가 생사존망의 기로에 있을 때 반동 분자들을 지지했다는 게 이유였다. 1989년 6월 이후 지금까지 그는 15년이 넘게 가택연금 생활을 하고 있다.

그는 1980년 덩샤오핑의 후원 아래 국무원 총리가 된다. 당시 당 총서기는 후야오방이었고, 덩샤오핑은 후-자오 체제를 통해 개혁·개방 정책을 전면적으로 밀고 나가려 했다. 1987년 1월, 자오쯔양은 총리에서 총서기로 ‘승진’했다. 후야오방이 1986년 말부터 전국적으로 번진 학생시위에 유화적으로 대처했다는 이유로 보수파의 총공세를 받으며 총서기직을 그만두자 자오쯔양이 바통을 이었다. 그러나 그 역시 2년 뒤 후야오방과 같은 전철을 밟게 된다. 당내 보수파는 자오쯔양이 시위 학생들을 지지한다며 총서기직에서 몰아내고, 상하이에서 막 올라온 신인 장쩌민을 그 자리에 대신 앉혔다.

올해 86살이 된 그의 ‘사망설’이 끊이질 않고 있다. 그의 살날은 많지 않아 보인다. 1989년 후야오방이 심장병으로 급사하면서 그를 애도하는 물결이 1989년 톈안먼 사건의 도화선이 되었다. 톈안먼 사건 세대들이라면 자오쯔양의 죽음에 대해 이렇게 애도할지 모른다. “자오 동지! 우리들이 너무 늦게 왔습니다.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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