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이징= 글 · 사진 박현숙 전문위원 strugil15@hanmail.net
2004년 3월25일, 중국 시안시 대로변에서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약 13m 높이의 광고판 위로 한 젊은이가 올라가서 ‘1인 시위’를 벌인 것이다. 그의 광고판 시위는 올 한해 중국에서 발생한 가장 큰 사건 가운데 하나였던 ‘시안 BMW 가짜 복권 사건’의 시작이었다. 이틀전인 3월23일 평범한 청년 류량(18)은 즉석 체육복권 한장을 샀다. 1등 당첨이 되면 BMW 한대와 인민폐 12만위안(약 165만원)을 주는 복권이었다. 그 복권에 류량이 1등으로 당첨됐다. 즉석에서 1등 당첨을 확인받은 류량은 광장을 가득 메운 구경꾼들 앞에서 당첨 경품인 BMW 시승식을 하고 기념 꽃다발도 증정받는 등 화려한 1등 당첨쇼를 했다. 문제는 이틀 뒤에 불거졌다. 당첨금과 경품을 받기 위해서는 3천위안의 공증비가 필요하다는 관계자의 말을 듣고 이틀 뒤 부푼 마음으로 돈을 준비해간 류량은 또 한번 ‘꿈’같은 얘기를 들었다. 자신이 산 복권이 가짜라는 것이다. 당첨도 자동 무효가 되었다. 그러나 류량은 그 말을 믿을 수 없었다. 이틀 전까지만 해도 멀쩡하게 진짜로 공증까지 받았던 복권이 어떻게 하루아침에 가짜로 변할 수 있느냐고 항의를 했지만, 담당 관계자는 그날 비가 내려서 검증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라며 오히려 류량을 가짜 복권 제조범으로 몰려고 했다. 이에 ‘열받은’ 류량이 곧바로 광고판 위로 올라가 ‘1인 시위’를 벌였다.
‘시안 BMW 가짜 복권 사건’은 결국 류량의 승리로 끝났다. 류량의 진짜 복권을 가짜로 둔갑시킨 주범들이 바로 시안시 복권 중심의 핵심 관료들이라는 사실이 드러났고, 복권을 둘러싼 이들의 대형 부패가 만천하에 밝혀졌다. 이들 부패관료는 12월3일 재판을 통해 모두 중형을 선고받았다. 류량도 광고판 위에서 그렇게 애타게 부르짖던 BMW를 받았다. 그러나 류량이 받은 것은 BMW뿐만이 아니었다. 하루아침에 유명인사가 된 것이다. 평범한 보안 청년에서 하루아침에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이 된 류량은 지금 여기저기에서 들어오는 광고 제의와 취직 제의로, BMW는 이제 안중에도 없다. 연말 중국 언론들이 선정한 올해 10대 인물 안에는 쟁쟁한 기업인들과 유명 학자들 사이에 소년 같이 해맑게 웃는 류량의 얼굴이 눈에 띈다. 한 언론은 이렇게 평가했다. “18살 보안 청년 류량, 2004년 중국 평민의 역사를 다시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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