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darkblue">사회운동과 자원봉사의 행복한 결합 꿈꾸는 90년대 학번 의사들의 ‘행동하는 의사회 나눔과 열림’ </font>
▣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아직’ 한국에서 사회운동과 자원봉사는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다. 과거 사회운동 진영은 봉사활동이 구조의 문제를 가린다고 비판했고, 자원봉사자들은 사회운동이 공허하다고 여겼다. 2000년대로 넘어오면서 운동과 봉사가 조금씩 가까워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좁힐 수 없는 거리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 이분법을 넘어, 사회운동과 자원봉사의 행복한 결합을 꿈꾸는 젊은 의사들이 있다. ‘행동하는 의사회 나눔과 열림’ 회원들이다.
의사파업의 결론 “의사들이 자성하자”
2000년 의약분업을 문제 삼아 의사들이 파업을 벌이던 시절이었다. 당시 의사 사회의 분위기에서는 ‘다른 의견’을 말하기조차 어려웠다. 속병을 앓던 20여명의 전공의와 의대생들이 모였다. 학생운동을 하면서 알게 된 사이였다. 2000년 이후 의사파업의 상처는 깊었다. 국민과 의사 사이에 불신의 골이 깊어졌다. 젊은 의사들은 ‘국민과 함께하는 의료개혁’을 고민했다. 해답은 “의사들이 먼저 자성하자”였다. 그들은 전문성의 우물을 벗어나 보편성의 광장에서 생각하자고 다짐했다. 2001년 2월 행동하는 의사회를 결성했다. 인의협(인도주의실천 의사협의회)이 80년대 학번들의 의사운동이었다면, 행동하는 의사회는 90년대 학번들의 의사운동이다. 대장도 91학번 정상훈 대표가 맡았다.
야망은 컸으나 현실의 벽은 높았다. 우선 ‘제 앞가림’도 버거웠다. 회원들이 군대에 가야 했고, 전공의 과정을 밟아야 했다. 지지부진한 두어해가 흘러갔다. 회원들 사이에 이대로는 안 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정상훈씨가 전공의 과정을 중단하고 전업 활동을 결의했다. 회원들은 수입의 10%를 회비로 내는 십일조로 화답했다. ‘수입의 10%를 회비로, 회비의 50%를 기금으로’. 행동하는 의사회의 원칙은 이때 세워졌다. 2003년 4월 재창립을 하고 본격적으로 활동에 나섰다.
학생운동의 아마추어리즘을 극복하자고 다짐했다. 주장을 하기 전에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우선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방법이 문제였다. 의료개혁운동에 나서자는 주장도 없지 않았지만, 봉사활동을 통해 신뢰를 쌓는 일이 중요하다는 의견이 우세했다. 정 대표는 “80년대에는 거리투쟁만으로도 민중들의 지지를 받았지만, 2000년대에는 인간의 보편적 가치인 봉사와 기부를 실천하지 않으면 운동도 성공할 수 없다고 합의했다”고 돌이켰다. 먼저 우리 사회의 가장 소외된 계층으로 장애인을 떠올렸다. 장애인을 위해 봉사하고, 기부하는 일을 시작했다. 십일조 기금의 절반을 피노키오장애인자립생활센터와 노들장애인야간학교에 기부하기로 했다. 주말에는 서울 관악구로, 노원구로 재가 장애인을 찾아나섰다. 전문성을 포기하고 헌신성을 높이자고 생각했다. 스스로 몸을 낮추기 위해, 무료 진료를 하기보다 목욕 봉사를 먼저 했다. 여름, 겨울이면 휴가를 내고 장애인복지시설을 찾아 현장활동에 나섰다. 인천의 장애인시설 ‘즐거운 집’에 3박4일 머물면서 장애인의 목욕을 돕고, 시설의 청소를 도맡았다. 그렇게 2003년 한해를 보냈다.
장애인 목욕 돕기로 시작, 무료 진료까지
2004년, 이제는 진료 활동도 하기로 했다. 서울 종로구 돈의동 쪽방촌에서 진료사업을 시작했다. 주말이면 노원구의 재가 장애인을 찾아 건강을 돌보고, 장애 여성 건강상담도 했다. 평일 내내 고된 병원 생활에 녹초가 된 전공의들이 대부분이지만, 한달에 한번은 자원활동에 나선다는 원칙을 지키는 이들이 많다. 올 여름에도 경기도 용인의 장애인시설 ‘해든솔’을 찾아가 3박4일 동안 머물며 장애인들과 함께 갯벌 체험도 하고, 수목원 산책도 다녔다. 올 10월10일에는 ‘의료인과 함께하는 장애인 건강마라톤 대회도 열었다. 기부와 봉사를 묵묵히 실천하는 동안 회원이 90여명으로 늘었다. 초창기에 비해 3배나 많은 회원 수다.
무엇보다 2004년은 ‘나눔과 열림 중증장애인요양원 건립운동’의 첫 걸음을 내딛은 해였다. 2003년 11월 총회에서 요양원 건립운동을 결정하고, 2004년 5월 행동하는 의사회 회원들이 주축이 돼 설립추진위를 결성했다. 회원들이 먼저 기부를 실천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올해 목표는 회원들의 기부만으로 1억원의 종자돈을 만드는 일이었다. 정 대표는 “아직 전공의들이 대부분이라 수입이 많지 않다”며 “설립 기금을 내기 위해 대출을 받지 않은 회원이 거의 없다”고 전했다. 대출까지 받아가며 기어코 1억원의 기부금을 모았다. 회원 기부운동과 함께 각계 인사들을 찾아다니며 추진위 참여를 호소했다. 발이 닳도록 찾아다닌 덕분에 150여명의 추진위원이 모였다. 추진위원에는 손봉호 한성대학교 이사장부터 최일도 다일공동체 목사, 문정현 신부, 박경석 장애인이동권연대 대표까지 진보와 보수를 아우르는 다양한 인사들이 포진해 있다. 12월18일 추진위원회는 서울 대학로의 동덕여대 공연예술센터에서 ‘나눔과 열림 중증장애인요양원 설립기금 마련을 위한 자선음악회’를 열었다. 이날 음악회에는 노영심, 김광민, 불독맨션 등 실력파 음악인들이 무료로 출연했다.
요양원 설립운동은 2007년에 완료된다. 우선 2005년까지 의료계를 대상으로 5억원 모금운동을 벌일 계획이다. 의사 사회에 기부 문화를 확산시키려는 의도다. 2007년까지는 시민사회와 함께 10억원 모금운동을 벌인다. 정 대표는 “집 같은 요양원을 지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요양원이 완공되면 30명의 저소득층 중증장애인이 머물 수 있다. 이들의 활동은 요양원 설립에서 그치지 않는다. 정 대표는 “한국에는 3만명의 중증장애인이 있다”며 “요양원에서 30명의 중증장애인을 돌본다고 3만명의 중증장애인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또 “봉사활동으로 결코 의료 불평등을 해소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매달 ‘열린 토론회’로 사회를 공부한다
그래서 행동하는 의사회의 ‘행동’은 주택가뿐 아니라 거리에서도 계속된다. 개인을 돕는 봉사활동과 함께 구조를 바꾸는 실천도 게을리하지 않는 것이다. 행동하는 의사회는 농성하다 쓰러지고, 집회 중에 다친 사람들에게 달려간다. 올여름 파병에 반대해 장기 단식 농성을 벌였던 김제복 수사의 혈압과 맥박을 점검하고, 천성산 터널공사에 반대해 단식을 한 지율 스님의 건강을 돌본 이들도 행동하는 의사회 회원들이었다. 행동하는 의사회는 재가 장애인을 돌보는 일 못지않게 장애인이동권연대의 버스 타기 운동에 동참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생명을 지키기 위해 이라크 어린이에게 의약품 보내기 운동을 벌이는 일과 이라크 전범 민중재판에도 참여하는 일을 다르게 생각하지 않는다. 회원들은 사회와의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기 위해 매달 열린 토론회를 열고, 인권소모임 등 다양한 소모임 활동도 하고 있다.
행동하는 의사회는 ‘국민의 편에 선 의료운동의 대표주자’를 꿈꾼다. 과연 젊은 의사들은 자원활동에 매몰되지 않고, 사회운동에 발목 잡히지 않으면서 자신의 길을 개척할 수 있을까. 행동하는 의사회가 오랜 세월, 꿈을 이루는 행동으로 답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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