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크아웃에서 벗어난 건설업체들, 투기자본의 적대적 인수·합병으로 다시 위기감 고조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혹독한 구조조정 과정을 거치고 경영 정상화를 이룬 건설업체마다 채권단의 회사 매각 과정에서 또 다른 시련에 직면하고 있다. 기업 사냥꾼과 투기자본의 적대적 인수·합병(M&A)이 판치고 있기 때문이다. M&A 시장에 매물로 나올 예정인 굵직한 업체는 현대건설·대우건설·쌍용건설 등이다.
지난 10월 쌍용건설의 워크아웃(기업개선 작업) 졸업으로 외환위기 직후 유동성 위기에 봉착해 워크아웃에 들어간 13개 건설업체의 구조조정이 일단락됐다. 건설업은 워크아웃에서 벗어나기 가장 어려운 업종으로 꼽힌다. 부실업체라는 딱지가 붙으면 그 누구도 대형 공사를 맡기려 들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워크아웃에서 벗어나기까지는 직원들의 뼈를 깎는 노력과 희생이 뒤따라야 했다. 그러나 혹독한 구조조정 과정을 거치고 경영 정상화를 이룬 건설업체마다 회생 이후 채권단의 회사 매각 과정에서 또 다른 시련에 직면하고 있다. 기업 사냥꾼과 투기자본의 적대적 인수·합병(M&A)이 판치고 있기 때문이다. 조만간 건설업체 M&A 시장에 매물로 나올 예정인 굵직한 업체는 현대건설·대우건설·쌍용건설 등이다.
회삿돈 빼돌려 인수자금 챙기다
남광토건(국내 시공능력평가순위 39위)은 요즘 직원들이 앞장서 우리사주조합 지분(9.08%)을 얹어 회사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남광토건은 외환위기 직후 쓰러진 건설업체들 가운데 2002년 워크아웃에서 가장 먼저 졸업했다. 2001년 당기순이익 150억원을 기록한 뒤부터 해마다 수익성이 개선돼 올 2분기에는 매출액 1189억원, 영업이익 261억원을 냈다. 전년 동기 대비 2800%나 증가한 실적이다. 이처럼 알짜배기 중견 건설업체로 거듭 태어난 남광토건은 당초 올해 350억∼400억원의 순이익을 올릴 것으로 전망됐다. 남광토건은 지난해 8월 쌍용그룹에서 계열분리된 이후 M&A를 통해 골든에셋플래닝 컨소시엄에 매각됐다. 그런데 왜 또다시 직원들 스스로 새로운 투자자 유치에 나선 것일까?
이유는 회사를 인수한 골든에셋플래닝 컨소시엄이 기업 사냥꾼에 불과한 것으로 뒤늦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M&A 사냥꾼에게 당했다는 사실은 지난 10월 전 대표이사 이희헌(구속)씨의 회삿돈 횡령 사건이 터지면서 밝혀졌다. 검찰 수사 결과 골든에셋플래닝은 남광토건 인수 과정에서 은행 직원과 짜고 남광토건의 양도성예금증서를 불법 대출해 인수 계약을 성사시킨 뒤 사채시장에서 인수자금을 융통했는데, 이렇게 경영권을 확보하고 나자 남광토건의 회삿돈 570억원을 빼돌려 인수자금을 갚은 것으로 드러났다. ‘무자본 M&A’ 세력에게 당한 것이다. 대표이사의 횡령 사건이 터진 뒤 회사 신용등급은 BBB-(투자가능등급)에서 BB-(투자유의등급)로 추락했고, 신규사업 추진도 어려운 상황에 빠지고 말았다. 특히 3분기에 560억원의 대손처리가 불가피한 만큼 올해 또다시 적자로 돌아설 전망이다. 남광토건 박상규 과장은 “워크아웃 때 직원 40%가 구조조정으로 회사를 떠나야 했고 상여금을 반납하는 등 고생해 회사를 살려놨는데, 적대적 M&A로 다시 회사가 어려움을 맞고 있다”며 “상환해야 할 장기 채권이 내년에 도래하는데 신규 투자자금이 들어오지 않으면 회사가 다시 위기에 빠질 수 있다”고 걱정했다. 뼈를 깎는 고통을 감내하면서 회사를 회생시켰음에도 기업 사냥꾼한테 걸려 재매각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남광토건 직원들은 애초 우리사주 지분과 대주주의 남은 지분을 일괄 매각하는 방식으로 올해 안에 새로운 인수업체를 찾아 회사를 정상화시킬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 계획마저도 최근 또 다른 세력의 적대적 M&A 위협에 노출돼 복잡하게 꼬이고 있다. 요즘 한 코스닥 등록업체가 남광토건 지분을 22%까지 대거 매집하면서 적대적 M&A를 시도해 경영권 분쟁을 겪고 있는 것이다. 박상규 과장은 “당초 이달 말까지 공개적으로 인수 의향서를 받아 우선협상 대상자를 선정하려고 했는데 뜻하지 않게 적대적 M&A가 등장해 헝클어지고 있다”고 말았다.
종업원 지주회사로 탈바꿈할까
지난해 11월, 6년에 걸친 기나긴 법정관리 굴레에서 벗어난 한신공영(시공능력평가 28위)도 남광토건과 똑같이 기업 사냥꾼 세력의 ‘작전’에 당해 직원들이 허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한신공영은 법정관리 졸업 뒤 컨소시엄에 인수됐는데, 최근 대표이사 최용선씨가 340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구속됐다. 컨소시엄이, 회사 인수자금으로 충당한 돈을 한신공영의 회삿돈 340억원을 빼돌려 해결한 것으로 드러난 것이다. 한신공영은 법정관리 이후 대규모 인력감축 등 고통을 참아내면서 경영 정상화를 이뤄 올해 3분기까지 300억원대의 순이익을 냈다. 그러나 이번 사태로 인해, 대주주로부터 신규자금이 투입되지 못할 경우 340억원을 대손처리해야할 형편이다. 한신공영 관계자는 “이번 일로 대외 신인도가 떨어지고, 법정관리 상태에서 희생해온 임직원들이 실망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채권단의 매각작업이 곧 본격화될 것으로 보이는 쌍용건설은 우리사주조합을 중심으로 벌써부터 M&A에 대비하고 있다. 특히 한때 자회사였던 남광토건이 기업 사냥꾼들의 제물이 된 것을 목격한 터여서 경영권 향배에 더욱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쌍용건설은 워크아웃 기간 동안 급여를 절반으로 삭감하고, 잘나갈 때 2400명에 이르던 직원을 700명으로 감원하는 등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통해 지난해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올해는 수주 규모 1조3800억원, 경상이익 620억원, 부채 비율 160%를 달성할 전망이다.
쌍용건설은 지분 20%를 보유한 우리사주조합이 최대주주인 자산관리공사와 금융기관이 보유한 지분(50%) 중 절반을 우선매수할 수 있는 권리를 갖고 있다. 이에 따라 쌍용건설 우리사주조합은 회사 매각 과정에서 이 권리를 행사해 종업원 지주회사로 탈바꿈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쌍용건설 최세영 팀장은 “장기적 안목으로 회사를 발전시키는 주체가 회사를 인수한다면 환영하겠지만 투기자본이나 기업 사냥꾼한테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우리사주조합이 자금을 동원해 회사를 인수하는 것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쌍용건설 임직원들은 지난해 3월 노후 생활자금인 퇴직금(320억원)까지 털어 유상증자에 참여했다. 그것도 당시 주가(2천원대)의 두배인 액면가(5천원)에 주식을 매입했다. 최 팀장은 “당시 자본잠식으로 코스닥에서 퇴출될 위기에 처했는데 퇴출되면 워크아웃 졸업이 더 어려워진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직원들이 회사 살리기에 나선 것”이라며 “워크아웃 기간이 가장 길었지만 우리 힘으로 회사를 일으켜 세웠는데, 건설업 시장에 판치는 투기세력의 M&A로 회사가 망가지는 것을 손 놓고 보고 있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대우건설을 흔드는 작전?
매각주간사가 선정되는 등 채권단의 매각이 추진되고 있는 대우건설도 기업 사냥꾼 등의 M&A에 노출될까봐 긴박하게 움직이고 있다. 대우건설은 지난해 말 워크아웃에서 졸업한 뒤 올 상반기에 사상 최대 실적을 올리는 등 화려하게 부활했다. 그러나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통해 ‘건설명가 대우’의 자존심을 되찾아가고 있지만 매각을 앞두고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대우건설 박세흠 사장은 최근 “대우건설이 해외 단기 투자자금이나 국내 기업 사냥꾼들의 머니게임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며 “국민의 혈세로 되살아난 기업이 투기자본의 제물이 돼 또다시 위기에 처하도록 내버려두면 국가경제적으로 엄청난 손실”이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자산관리공사 등 채권단이 최근 “옛 (주)대우 미국법인(DWA)의 채무를 대신 갚으라”며 대우건설을 상대로 5800억원의 채무이행청구소송을 법원에 제기해 파장이 일고 있다. 대우건설쪽은 “대우건설의 매각을 추진하고 있는 채권단 스스로 대우건설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있는 것이라 납득할 수 없다”며 “M&A를 시도하려는 특정 세력이 회사가치를 떨어뜨리려고 뒤에서 장난치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대우건설 정창두 노조위원장은 “법정관리를 받아온 극동건설의 경우 투기펀드인 론스타가 인수한 뒤 주식을 모두 매집해 상장을 폐지하는가 하면 극동빌딩을 팔아 인수대금을 챙기는 등 알맹이를 전부 빼먹고 있다”며 “대우건설도 단기 투기자본에 매각되면 경쟁력을 잃고 또다시 어려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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