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서 냉대받는 인삼종주국 한국의 고려인삼… 연구 부족으로 ‘의약품’에 필요한 효능 입증 소홀
▣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인류의 건강을 지켜주는 천연물 제제가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독일 튀빙겐대학 식물생리학연구소에서는 쑥으로 말라리아 치료제를, 일본 도야마의약대학 바이러스연구실은 대극초·가자·오배자 등을 성분으로 하는 에이즈 관련 피부 감염증 치료제를 출시했다. 마늘은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는 것으로 밝혀져 심장병 치료제로 거듭나기도 했다. 세계적 제약회사들도 자연에 널린 야생 동식물을 이용한 ‘천연 의료자원’을 주목하고 있다. 이렇게 천연물 제제가 주목받는 것은 최후의 항생제라 불리는 ‘벤코마이신’에 대해서도 저항력을 갖는 변형 세균들이 등장하는 등 기존의 화학제제의 한계가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인삼 대국, 한국 아닌 스위스
그렇다면 우리나라도 천연물 제제 시장의 수혜자가 될 수 있을 것인가. 선사시대 이래 식물의 종류는 10만여종으로 알려져 있다. 이 가운데 인간에게 이로운 성분을 지닌 식물은 3만여종으로 추정된다. 여기에서 인삼은 우리나라를 종주국으로 하는 대표적인 의용식물이다. 오랜 임상 경험을 통해 효력을 인정받았으며, 삼국시대부터 1500여년 동안 우리나라의 손꼽히는 수출품 구실도 했다. 우리나라에서 국제경쟁력이 있는 인삼 가공제품을 내놓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국내산 고려인삼은 세계 시장에서 맥을 못 추고 있다. 인삼 종주국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다.
현재 세계 인삼 시장의 규모는 연간 200억달러가량으로 추정된다. 세계적인 인삼 대국은 놀랍게도 인삼 한 뿌리 나지 않는 스위스다. 다국적 제약회사 베링거 인겔하임의 자회사인 파마톤사가 인삼 성분인 사포닌(Saponin)으로 만든 자양강장 캡슐 ‘진사나’(Ginsana)로 해마다 30억달러의 매출을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진사나는 고려인삼과 중국삼에서 추출한 사포닌으로 함량을 규격화하고 효능을 과학적으로 입증했다. 우리나라가 인삼 거래를 독점 사업으로 묶어두고 기술개발에 소홀한 사이에 진사나가 현대화된 인삼의 대명사로 여겨지고 있는 셈이다. 고유의 달여먹는 ‘원형삼’은 아시아를 벗어나면 시음회 기회조차 갖기 힘들다.
사실 우리나라의 고려인삼이 종주국의 체면을 구긴 것은 오래된 일이다. 지난 1990년 1억6500만달러(수삼기준 4천t) 수출을 정점으로 해마다 줄어들어 2002년에는 5500만달러(1800만t)까지 줄었다. 지난해부터 가까스로 회복 기미를 보이고 있지만 고려인삼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3% 안팎이다. 인삼 수출이 줄어든 것은 경작적지가 줄어들고 재배기술이 보편화됐기 때문이다. 인삼 재배지의 염류농도 증가로 각종 생리장애가 발생하자 미국과 오스트레일리아 등지로 떠나는 인삼농가도 늘어나고 있다. 게다가 미국과 캐나다의 ‘화기삼’, 중국 고유의 ‘삼칠삼’ 등의 저가 공세에 맞서기도 역부족인 현실이다.
이런 사정에 따라 우리나라가 인삼을 중국 등지에서 수입하기도 한다. 1990년대 중반부터 들어오기 시작해 지금은 한해 수입 규모가 500만달러나 된다. 더욱이 인삼 시장 개방의 여파로 10년 이내에 자급률이 현재의 110%에서 72%로 떨어질 것이라는 충격적인 시나리오도 나왔다. 동양의 신비한 영약으로 알려진 고려인삼의 추락이 끝없이 이어지는 셈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이동필 선임연구위원은 “위기를 벗어나려면 유기농법으로 청정인삼을 생산하고 장뇌삼이나 산양삼 등 고품질 인삼에 집중해야 한다. 산에서 내려와 오염지대에서 서식하는 인삼을 산으로 돌려보내는 것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말한다.
사실 인삼만큼 가능성을 인정받는 천연물 제제도 드물다. 대한약전은 인삼을 의약품으로 취급하며 ‘원기회복, 면역력 증진 또는 자양강장에 도움’을 주는 주요 건강기능성 식품 원료로 쓰이기도 한다. 인삼은 성기능 개선, 스트레스 완화, 집중력·기억력 증진, 콜레스테롤·혈압·혈당 조절 등에도 효험이 있다. 이런 ‘전통적 효험’에 바탕해 국내 500여 인삼류 가공 제조업체는 120여종의 가공식품을 시판하고 있다. 주로 홍삼·태극삼·백삼 등 원형삼류와 이를 2차 가공한 농축액 분말류 등이다. 지난 1996년 홍삼전매제도가 폐지되면서 홍삼류 제조업체가 급증해 인삼을 첨가한 기능성 제품 개발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국내선 발기부전 개선효과 밝혔지만…
그럼에도 국내에서 개발한 기능성 인삼 제품은 효능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고려홍삼정골드’라고 이름을 붙이면서도 효능에 관련된 항목이 표기되지 않으며, 인삼 제품의 영양 표시에도 모든 항목이 ‘0’이라 쓰여 있을 뿐이다. 정부 차원에서 인삼 산업 육성을 위해 원료삼의 생산기반 강화와 유통구조 개선에 힘을 쏟으면서도 인삼의 과학화에는 손을 쓰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전 한국인삼연초연구원이 민영화되면서 공익 차원의 기초연구를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다. KT&G 중앙연구원 인삼연구소 인삼효능연구팀 박종대 팀장은 “인삼의 효능에 관한 기초연구도 이뤄지고 있지만 연구 분야가 너무나 광범위해 모두 감당하기가 역부족이다”라고 한계를 토로한다.
물론 국내에서도 인삼의 효능에 대한 임상적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지난 1998년 인삼·당귀 등 순수 생약재를 원료로 바르는 조루증 치료제 ‘SS크림’을 개발한 연세대의대 영동세브란스병원 비뇨기과 최형기 교수팀은 홍삼이 남성의 성기능 개선에 효과적이라는 임상결과를 발표했다. 연구진은 한국인삼공사의 300mg들이 홍삼정을 발기부전 환자에게 하루 두 차례씩 1~3개월 동안 섭취하도록 했다. 이를 위약 대조군과 비교한 결과 홍삽 섭취군의 성기능 개선율이 57.9%로 위약 대조군(22.2%)보다 크게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홍삼이 음경 발기에 끼치는 영향은 토끼와 쥐를 이용한 동물 실험에서도 확인됐다.
지난 12월10일 서울대 천연물과학연구소에서 열린 ‘2004 고려인삼학회 추계 학술대회’에서 최형기 교수는 “홍삼이 발기부전 증상을 개선하는 것은 사포닌 성분이 음경해면체 평활근의 혈액순환을 원활하게 하기 때문으로 여겨진다”고 밝혔다. 홍삼의 사포닌 성분이 산화질소(nitric oxide)로 생각되는 내피세포의존인자의 작용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하지만 홍삼의 효능에 관한 연구 결과가 국제적으로 인정받기는 어렵다. 발기부전에 영향을 끼치는 홍삼의 유효성분과 작용 메커니즘 등이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발기부전의 정도에 따른 호르몬의 변화 등에 관련된 사항도 규명해야 한다.
아무리 국내에서 홍삼의 발기부전 개선 효과를 입증해도 세계 시장의 반응은 냉담하다. 스위스를 중심으로 인삼의 성분이나 임상 연구가 활발하게 이뤄지는 유럽에는 들어가는 통로조차 막혀 있다. 유럽쪽은 인삼을 의약품으로 분류해 엄격하게 규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려인삼의 가능성을 인정받으려면 특이성분을 과학적으로 입증하는 수밖에 없다. 인삼을 고온에서 가열해 미량의 약효성분을 크게 증가시킨 ‘선삼’(仙參)을 개발한 서울대 약대 박만기 명예교수는 “인삼의 품질관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실정에서 고려인삼의 상품가치를 높이기 힘들다”고 지적하며 “인삼 연구를 국가적 과제로 삼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미 중국은 1980년대 중반부터 인삼을 비롯한 약제의 표준화를 꾀하고, 의료기관에서는 검역소의 관리감독을 받는 음편(포재된 한약재)만 사용하도록 했다. 중국 정부의 국가적 지원이 확대되면서 단삼(丹蔘) 추출물을 당뇨병과 심장병 치료 주사제로 사용하고 중국삼을 이용한 최초의 단일체 항암 신약을 공식 출시하기도 했다. 중국 지린성 아태제약유한회사 연구진이 개발한 ‘삼일(參一)캡슐’은 중국삼의 사포닌 Rg3이라는 미량 성분(10만분의 3)을 이용한 항암제로 인체의 종양 전이를 억제하는 비율이 71~81%나 된다. 인삼 약효 성분을 밝혀내고 성분의 도달 지점을 과학적으로 규명한 결과였다.
중국은 1980년대부터 국가가 정비
국내에서 인삼의 효능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인체의 양기를 돋우는 최고의 명약으로 꼽히며 흐물흐물한 노화 혈관을 탄력적인 젊은 혈관으로 바꾸기도 한다. 국내 시장만 생각한다면 기능성 식품이라는 멍에를 털어내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세계 시장에 진입하려면 과학적으로 ‘의약품’임을 입증해야 한다. 인삼의 특효 성분인 사포닌만 해도 30종이 넘는다. 고려인삼의 특효를 밝혀내려면 하나하나의 성분뿐만 아니라 성분들이 서로 결합하는 양상까지 규명해야 한다. 그래야만 인삼이 식품일 뿐이라는 생각을 뒤집은 파마톤사의 진사나에 맞서는 ‘고려인삼 의약품’을 만들고, 비아그라에 버금가는 고려인삼의 ‘기력’을 인정받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