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첫 비행할 때의 감격이 반세기 만에 다시 생생하게 살아오는 느낌이다.”
지난 10월22일 공군 81항공정비창에서 1953년 제작된 최초의 국산 항공기인 ‘부활호’가 그 이름값을 하듯 힘찬 프로펠러 소리와 함께 활주로를 질주하자 이원복 (78)씨는 눈시울을 붉혔다. 이씨는 1953년 6월 항공기 설계제작 실습 및 연습기 제작을 위해 공군 기술학교에 설치된 항공기제작팀에서 부활호를 직접 설계했었다.
“전쟁 막바지인 당시 부족한 자제를 구하기 위해 미 공군기지를 뒤져 부품을 모았고, 사천 기지 자체 창고의 허름한 막사에서 설계도를 그렸다”고 말했다. 4개월 만에 비행기는 완성됐고, 그해 10월11일 시험비행에도 성공했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 비행기를 직접 제작했다는 보고를 받은 이승만 당시 대통령은 국가의 자존심을 회복하자는 뜻에서 ‘부활’이라는 붓글씨를 내렸고, 54년 4월3일 함태영 당시 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한 명명식까지 가졌다. 부활호는 한동안 공군의 연락기로 사용됐고, 대구시 달서구에 있던 한국항공대학에 기증되어 1960년까지 학생들의 연습기로도 이용됐다. 그러나 달서구에 있던 항공대학이 이전하고, 그 자리에 경상공업고등학교가 들어서면서 최초의 국산 항공기는 일반의 기억 속에서 영원히 잊혀졌다.
하지만 설계자인 이씨는 지난 90년부터 자신의 분신과 같은 부활호의 행방을 찾아나섰다. 미 공군 등에도 문의했지만 좌절의 연속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지난해 한 일간 신문에 부활호의 소재를 찾는다는 기사를 냈는데, 소식이 왔다. 경상공고 퇴직자가 학교 창고에 부활호가 있다는 소식을 알려온 것이다. 결국 올해 1월13일 켜켜이 먼지를 떠 안은 채 뼈대만 남은 ‘부활호’를 찾아냈다. 이씨는 공군의 도움을 받아 복원에도 성공했다. 이씨와 복원팀은 200여장에 이르는 설계도를 다시 그렸고, 50년 전 부품을 구하기 위해 미국의 항공기 제작사와 중고시장까지 뒤졌다.
이씨는 “복원작업의 성공으로 이미 반세기 전 항공기를 제작했던 우리의 훌륭한 항공 역사가 사장되지 않아 정말 기쁘다”고 말했다. 복원된 부활호는 공군사관학교에 전시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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