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타500’ 주인공 광동제약 김현식 영업본부장… 역발상의 제품으로 40년 아성 박카스와 대결
▣ 정남구 기자 jeje@hani.co.kr
시장 판도를 뿌리채 바꾸어놓는 새로운 상품은 그렇게 자주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가끔이지만, 그런 일은 분명히 있다. 맥주시장이 대표적인 예다. 지난 1993년 이전만 해도 맥주시장은 OB맥주(옛 동양맥주)의 아성이었다. 시장의 70%는 OB맥주의 몫이었다. 그런데 갑작스레 새로 나온 맥주에 사람들이 열광하기 시작했다. ‘150m 지하 암반 천연수’로 만들었다는 ‘하이트맥주’였다. 조선맥주는 ‘이름까지 시원한 하이트’를 내세워 시장의 판도를 일거에 바꿔놓았다. 하이트맥주의 시장점유율은 1996년 들어 OB맥주를 넘어섰다. 하이트맥주의 시장점유율은 요즘 58%대에 이른다.
“부서 해체 위기에 ‘마지막 도전’했죠"
그러나 하이트맥주의 성공은 이제 겨우 10년을 이어왔을 뿐이다. 신화의 반열에 오를 만한 것은 역시 ‘박카스’다. 동아제약의 박카스는 자양강장제 시대를 연 제품이다. 그리스신화에서 술과 추수를 관장하는 바커스(디오니소스)의 이름을 따 우리말 어감에 맞게 바꾼 박카스는 지난 1961년 정제 형태로 처음 출시됐다가 1967년 지금의 드링크제로 바뀐 뒤 2003년까지 143억병이 팔린 제품이다. 많을 때는 연간 7억병이 팔렸고, 요즘도 월 5천만병 안팎이 팔린다. 국민 모두가 한달에 한병은 마신다는 얘기다. 박카스의 이런 40년 신화는 지금껏 누구도 깨지 못했다. 아니, 감히 도전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그런데 그 박카스의 신화를 깰 만한 음료가 마침내 세상에 나타났다. 광동제약의 ‘비타500’이다.
지난 2001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마시는 비타민’을 표방하며 등장한 비타500은 그해 매출이 53억원이었다. 올해는 그 10배인 600억원을 가볍게 넘을 것으로 보인다. 박카스의 연간 매출액이 2천억원 안팎으로 아직은 무릎에도 못 미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코 그렇지가 않다. 비타500은 지난 5월에 3500만병이 팔렸고, 6월에는 4200만병이 팔렸다. 이런 속도라면 지난 6월 5천만병에 조금 못 미치게 팔린 것으로 알려진 박카스를 따라잡는 것은 시간 문제다. 회사 관계자는 “올 가을에는 박카스를 넘어설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김현식 영업본부장(상무)은 박카스의 40년 신화를 뛰어넘는 새로운 신화창조의 주인공이다. 유통사업본부장을 겸하고 있는 그는 광동제약에 입사한 이래 지금껏 영업 분야에서만 일해왔다고 한다. “25년 동안이나 한 회사에만 계속 있었다는 것은 그만큼 고정관념이 강하다는 뜻 아닌가요?” 그는 오히려 부끄러워했다. 그러나 비타500의 성공 원인을 발상의 대전환에서 찾는 것에서 보듯 그가 고정관념이 그렇게 강한 사람은 아닌 듯하다.
비타민C의 수용성에 착안… 신규시장 개척
그가 이끄는 유통사업부는 약국이나 병원, 한의원이 아닌 일반 유통업체에 공급하는 상품을 담당하는 곳이다. 경옥고, 운지천, 동충하초 음료 등을 개발해 팔았지만 별 재미를 보지 못했다. 비타500을 내놓기 전 유통사업부는 해체될 위기에 직면했다. 그는 ‘마지막 도전’이라고 생각하고 개발을 총지휘했다. ‘마시는 비타민’이 그가 잡은 새 음료의 컨셉트였다. 비타500이 나오기 전해인 2000년은 의약품으로서 ‘비타민C’ 바람이 분 해다. 각종 비타민C 제품이 동이 날 정도로 팔렸다. “그 당시에는 과립이나 정제로 약국에서 파는 것뿐이었어요. 이를 음료로 개발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지요.”
그러나 모두가 반대했다. 마시는 비타민 음료는 ‘지금껏 없었다’ ‘안 된다’는 게 그 이유였다. 비타500은 회사의 공식 상품개발 아이템에 끼지 못했다. 개발은 과외 활동으로 이뤄져야 했다. “만들어놓고 보니 자신감이 생기더군요.” 그는 시제품을 갖고 노인정을 방문했다. 맛이 좋다는 반응을 얻자, 이번에는 어린이집을 방문했다. 어린이들에게서도 좋은 반응을 얻으면서 그는 성공을 자신했다고 한다. “다른 회사에서 카피 제품을 많이 내놓았는데, 비타500만의 독특한 맛은 결코 따라오지 못할 거예요. 나는 청량음료를 전혀 안 마시는데 이것(비타500)만은 마셔요.”
그는 ‘발상의 전환’이 성공 원인이라고 강조했다. 우선 비타500은 비타민C를 정제나 과립으로 먹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깼다. 음료로 마시면 흡수가 빠르다. 다른 비타민은 지용성이라 음료로 만들기 어렵지만, 비타민C는 물에 녹아 음료로 개발할 수 있다. 수용성이므로 조금 많이 먹어도 몸에 쌓이지 않고 배출된다. 비타500은 이런 점에 착안했다.
문제는 맛이었다. 비타민C는 맛이 시어서, 편안하게 먹거나 마시기 어렵다는 게 일반적인 생각이다. 물론 비타500은 그런 고정관념을 일거에 깨버렸다. 비타500은 감칠맛이 난다. 회사 사람들은 “맛은 100% 김 상무님 노력의 성과물”이라고 강조했다. 김 상무는 “카피 제품이 나와도 맛을 베낄 수 없을 것”이라면 “맛의 비결은 영업비밀”이라며 웃었다. 비타민C는 약국에서 파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깬 것도 비타500의 성공요인으로 꼽을 수 있다. 비타500은 기능성 음료로 일반 유통시장에서 팔린다.
광동제약은 요즘 한마디로 ‘되는 집’이다. 지난해 60억원을 투자해서 생산라인을 증설해 4월부터 가동에 들어갔다. 요즘은 이 설비를 24시간 풀가동한다. 설비 증설을 하지 않았으면 넘쳐나는 주문을 소화할 길이 없었을 것이다. 지난해 TV드라마 의 출연진을 광고모델로 내세운 것, 올 들어 가수 ‘비’를 모델로 바꾼 것도 성공적이었다고 김 상무는 평가하고 있다. “애초 ‘대한민국을 싱싱하게’라는 슬로건을 내세울 생각이었어요. 하지만 올해는 자신이 없었어요. 내년에는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약업체들의 오랜 꿈은 박카스를 따라잡는 상품을 내놓는 것이었다. 동화약품의 ‘알프스’, 대웅제약의 ‘아스파’, 광동제약의 ‘올맨디’, 일양약품의 ‘타우스’ 등이 박카스에 도전했던 상품이다. 그러나 박카스 매출의 10%를 달성하면 그나마 성공이었다. 박카스란 브랜드 파워가 너무 강력했기 때문이다. 김 상무는 “박카스와 경쟁하겠다고 생각했으면 실패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별도의 제품 컨셉트로 별도의 시장을 개척한 것이 박카스에 붙잡히지 않고 고속질주를 하는 원인이라는 설명이다.
비타500의 이름에는 여러 뜻이 담겨 있다. 비타민C 500mg이란 뜻도 있다. 실제로는 한병에 700mg이 담겼다. 비타민C는 빛과 열에 약하다. 그래서 빛을 차단하는 갈색 병을 썼지만, 유통기한 2년 동안 비타민 손실이 있을 것임을 감안한 것이다. 500원짜리로 연 500억원 매출을 올려보자는 사원들의 기대도 담겨 있다. 그러나 이제 목표는 그 선에서 그치지 않는다. “박카스가 최고 많이 팔렸을 때보다 더 많이 파는 게 목표죠. 박카스는 약국시장만 갖고 있지만, 우리는 약국뿐 아니라 일반 유통시장도 갖고 있으니까 곧 그렇게 될 겁니다.”
톡특한 맛에 30개 유사품 안 두려워
비타500의 성공에 자극받아, 마시는 비타민C 음료는 벌써 시장에 30여개가 나왔다. 그러나 지금 시장의 70%는 비타500의 몫이다. 김 상무는 “아직도 시장이 커가는 중이고, 비타500은 기능성 음료라서 라이프 사이클이 짧은 음료와는 달리 유행을 타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우리 회장님 고집 아세요? 음료를 만들더라도 약을 만드는 정성으로 만들지 않으면 출시를 못하게 하시는 것.” 그는 새로운 신화창조는 결코 운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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