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러시아 경제 전문가 마셜 골드먼의 진단…“한국도 세밀한 송유관 계획 마련해야”
글 · 사진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한국이 오랫동안 바이칼호 주변의 이르쿠츠크 천연가스를 파이프라인을 통해 들여오려는 노력을 해왔지만, 한국의 기대와는 달리 이를 둘러싼 복잡한 갈등들이 해결돼 몇년 안에 실제로 가스가 들어오기는 어려울 것이다. 시간은 예상보다 훨씬 많이 걸릴 것이고, 불가능할 수도 있다.”
한국외국어대 러시아 지역연구사업단(단장 권원순 교수)이 주최한 ‘21세기 동북아 지역의 역동성과 러시아의 세계화’ 국제학술대회에 참여하기 위해 한국에 온 마셜 골드먼(73) 하버드대 러시아·유라시아 연구소(데이비스 센터) 부소장은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한국, 일본, 중국이 러시아의 석유와 가스를 확보하기 위해 ‘에너지 전쟁’을 벌이고 있지만 러시아의 복잡한 정치·경제적 상황 때문에 앞으로의 상황은 대단히 복잡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올리가키 견제, 강도 높게 비난
“이르쿠츠크 가스전이 인접한 바이칼호의 수질 오염으로 삶의 터전이 파괴되는 데 주민들의 반발이 거세다. 민영기업들이 많은 유전을 소유하고 있고, 국영기업들이 건설될 파이프라인의 소유권을 가지고 있으며, 해외 수출허가를 다시 국가로부터 받아야 하는 현실에서 현재처럼 정부와 올리가키(러시아의 과두재벌)들이 심하게 갈등하고 있어 문제가 쉽지 않다.” 그는 또 이 사업이 지연되는 가장 큰 이유는 파이프라인 사업이 현재 푸틴 정부의 사업 중 우선순위가 높지 않기 때문이며, 그 대신 러시아 정부가 한국과의 사업에서 시베리아 횡단철도(TSR)와 한반도종단철도(TKR)를 연결해 한국-북한-러시아로 이어지는 철로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고 있으므로 이 분야에서는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러시아 경제 전문가로서 오랫동안 미 국무부 자문위원 등으로 대러시아 정책 결정에도 참여해온 그는 최근 푸틴 정부의 올리가키들에 대한 강한 견제와 ‘숙청’에 대해서는 비판론을 폈다. 러시아의 현실에 대한 미국 주류 학계의 시각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1991년 소련연방 붕괴와 1993년부터 시작된 사유화 과정에서 은행과 마피아, 정치권이 개입하여 석유와 가스를 놓고 일대 격돌이 벌어졌고 그 과정에서 루크오일, 유코스 등 거대 석유기업을 차지한 재벌들은 국가 재산을 독식하다시피하며 거대한 부를 축적했다. ‘강력한 러시아’를 모토로 내건 푸틴은 이들 재벌을 ‘강도 자본주의자’로 여기는 국민들의 반감을 기반으로 집권 뒤 대거 숙청해왔다. 특히 최근에는 다국적 석유기업들이 올리가키들과의 협상을 통해 러시아 석유회사들을 잇따라 매입하려는 데 대항하는 ‘자본 민족주의’ 경향을 강하게 보이고 있다.
“푸틴 자신이 직접 올리가키들과 충돌하며 이들을 감옥에 보내고 기업 재산을 강제로 몰수하는 현재의 상황은 국내외의 투자자들을 불안하게 하고 적대 세력으로 만들 것이다. 러시아 정부가 1990년대 대거 민영화됐던 기업들을 위협해 다시 기업을 국가에 넘기라고 압력을 넣는 사례들도 많다. 지난해 말 러시아 최대 재벌이자 석유황제인 유코스사 회장 미하일 호도로코프스키가 투옥된 사건은 기업가들에게 정부의 요구에 반대하면 모든 것을 빼앗긴다는 공포스러운 ‘교훈’을 주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러시아 경제가 과도한 석유 의존에서 벗어나 제조업 등 다양한 산업 발전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
일본 · 중국이 치열한 경쟁 벌일 것
그는 또 러시아 에너지를 자국으로 끌어오기 위한 중국과 일본의 갈등은 계속 고조될 것이라고 말한다. 러시아는 이같은 각축을 이용해 시베리아를 개발하면서 동북아에서의 영향력을 높이기 위해 송유관의 방향을 변경해왔다. 중국 다칭쪽으로 송유관을 연결하려던 유코스사 회장이 투옥된 이래 송유관은 거액의 지원을 내세운 일본의 나훗카쪽으로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는 나훗카쪽으로 송유관을 건설해야 일본뿐 아니라 한국, 중국, 미국 등으로 시장을 다변화할 수 있고 러시아가 계속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여긴다. 이번 결정뿐 아니라 계속 여러 송유관과 가스관을 둘러싸고 일본과 중국이 치열한 경쟁을 벌일 것이다. 한국도 이 과정에서 세밀한 계획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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