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루비아다방’의 축제 ‘외침과 속삭임’으로 본 대안공간의 오늘과 내일
▣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오는 9월9일부터 ‘외침과 속삭임’이라는 주제로 축제를 마련하는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다방’. 서울 인사동 수도약방 뒷건물 지하 전시실을 찾았을 때 축제의 분위기는 어디에도 감돌지 않았다. 철골이 훤히 드러난 공간엔 나무 상자가 군데군데 놓여 있었다. 한쪽에선 종합미술가 성민화씨가 퍼즐 상자를 살펴보고 있었다. 이라는 제목의 퍼즐 작품은 2천 조각의 4종류로 축제 기간에 관람객이 짜맞출 예정이다. 미술가의 작가적 상상력을 관람객이 이어가는 작품인 셈이다. 이렇게 사루비아다방의 첫 번째 축제는 대안공간의 새로운 모색을 대중 앞에 선보이려 숨죽이며 준비하고 있었다.
실험예술 산실… 자생적 담론에 이바지
우리나라에서 대안공간은 지금부터 5년 전 홍익대 부근에서 ‘루프’가 개관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애당초 대안공간은 1960년대 미국 내 백인 중심의 주류 미술계에 대한 반발로 마이너리티의 예술세계를 위해 생겨난 것이었다. 그것이 국내에서는 다른 방식으로 정착했다.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뒤 국내 전시공간이 협소해지면서 작가들의 실험적인 예술을 담아내는 공간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현재 대안공간을 포함한 미술공간만 해도 전국에 20여곳이나 된다. 게다가 쌈지스페이스나 일주아트하우스, 인사미술공간 등까지 포함하면 대안공간이 막강한 ‘문화권력’을 형성해 미술계의 지형도를 바꾼다는 것이 예사말로 들리지 않을 정도다.
그동안 국내의 대안공간은 미술관이나 갤러리(화랑) 밖에서 활동하는 젊은 예술가들의 숨통을 틔워왔다. 신인 작가들에게 전시공간을 제공하면서 다양한 문화 장르와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대중과 예술의 커뮤니케이션을 꾀하기도 했다. 대안공간에서 미술과 사진이 만나는 등의 이색적인 전시뿐만 아니라 언더그라운드 밴드가 공연을 하고 전시장이 댄스홀로 바뀌는 ‘황홀한’ 경험을 제공했던 것이다. 이들은 저마다 특색 있는 활동으로 입지를 넓혔다. 사루비아다방은 창작지원금을 지원해 젊은 작가들의 공모 참여가 활발히 이뤄지도록 했으며, 대안공간 ‘풀’은 우리 미술의 자생적 담론을 형성하는 데도 이바지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런 활동을 통해 대안공간은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적인 비영리 전시공간을 추구했다. 재정적 자율성을 토대로 도발적인 작품의 산실로 자리잡으려 했던 것이다. 미술관이나 상업적인 화랑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실험성을 내세운 비판적 미술활동은 대안공간의 존재 이유에 가까웠다. 젊은 미술가들도 대안공간에서 미학적 새로움을 찾는 것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상업적인 갤러리들도 대안공간으로 전환하는 양상을 보였다. 대안공간으로 전환해 공공기금이나 문예진흥기금, 지자체 문화예산 등을 지원받아 의미 있는 기획전을 여는 게 낫다는 생각이었다.
창고에 갇힌 작품들, 재정 확보가 관건
하지만 대안공간은 불안정한 운영이라는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기는 쉽지 않다. 재정적 뒷받침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장기적인 전망을 세울 수 없기 때문이다. 젊은 작가들의 등용문으로 각광받던 금산갤러리가 대중적 작가 중심의 화랑으로 변신하면서 실험적 작품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대안공간 ‘서울역’을 세웠다. 작가들로부터 작품을 기증받아 기금마련 전시회를 마련하고 후원금 모금에 나서는 등 대안공간 구축에 심혈을 기울였다. 여전히 공공기금 유치에도 적극 나서고 있지만 대안공간 활성화는 속절없는 바람에 가깝다. 쌈지스페이스처럼 기업체의 지원이 없는 대안공간이라면 갈수록 생존에 허덕일 수밖에 없다.
아무리 젊은 작가들이 도발적이고 충격적인 작품을 생산해도 전시공간을 만나지 못하면 창고에 갇힐 수밖에 없다. 이들은 작품에 햇살을 비추려고 대관료를 내면서 전시공간을 찾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대안공간은 전시장을 무료로 제공하는 데 비해 대안공간 ‘풀’은 재정난 극복 차원에서 기획대관을 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저렴한 대관료라도 받는 것은 대안공간의 본래적 의미를 훼손한다는 지적도 한다. 그럼에도 재정난을 극복해야 하는 현실적 고민을 풀어낼 뾰족한 방도는 없는 상태다. 그나마 지속적으로 기획대관을 줄이면서 한국적 대안공간의 전형을 만들어나가는 게 다행스러운 일이다.
지금까지 국내의 대안공간은 자생적 활동 기반을 갖추지 못했다. 대안공간을 둘러싼 제도가 급속히 바뀌면서 대안성을 내세우더라도 정체성을 확보하기 전에 기존 시스템에 함몰되는 경향을 보인 것도 사실이다. 안팎의 도전적 상황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셈이다. 마로니에미술관 수석큐레이터 백지숙씨는 “대안공간이 들어선 이래 대체로 재정적인 안정도를 높이고 운영의 지속성을 구축하는 데 에너지를 소진했다. 그런 가운데 창의적인 비판성을 예각화하고 생산적인 담론을 활성화하는 본연의 소임을 다하기에는 힘이 많이 달렸다. 공간을 중심으로 사고하기보다는 대안적 활동을 중심으로 어젠다를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문제는 대안공간의 활로를 뚫을 방도를 마련하는 것이다. 물론 해법은 작품활동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그동안 대안공안의 활동은 기존 시스템으로 소화하기 어려운 분야를 비상업적으로 흡수하는 성과를 보였다. 물론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기보다는 정체불명의 트렌드만 양산했다는 인색한 평가도 있다. 그럼에도 대안공간이 도전적 정신으로 기존 미술계의 풍토를 뛰어넘으려 했다는 것을 부정하기는 쉽지 않다. 여기에서 새로운 활로를 찾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다양한 프로젝트를 개발하고 인적·물적 네트워크를 통해 예술적 가치를 배가하며 비판적인 담론을 지속적으로 생산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루비아다방이 마련하는 축제 ‘외침과 속삭임’은 도전적 대안으로 여겨진다. 이 축제는 기존의 실험성을 전제로 한 프로젝트형 공연과 이벤트를 축제의 형태로 묶어 시스템화하려고 한다. 그동안 전시 형태를 크게 벗어나지 못했던 미술 영역을 예술 전역으로 활장하면서 예술 전반에 걸친 혼성과 혼합을 시도하는 것이다. 예컨대 마임(김봉석), 현대무용(한창호), 퍼포먼스(한영애) 등이 참여하는 은 누구에 의한 예술인가라는 본질적 질문을 던지는 공연이다. 즉흥극 형식을 띠면서 적극적으로 인간의 본성과 감정에 관한 메시지를 전하는 식이다.
이번 축제에서는 대중이 예술의 또 다른 주체로 나서기도 한다. 전문가뿐만 아니라 다양한 문화 소통의 대상들을 적극적으로 동참시키면서 소통와 유통의 새로운 통로를 마련하기 때문이다. 작가들이 나무 상자 10개에 작품을 비롯한 여러 가지 오브제를 전시하는 는 작가의 일상과 예술의 일상에 관객이 동참하는 형식으로 이뤄진다. 여기에 참가하는 작가들은 타일 위에 식물을 소재로 한 누구 크로키(신지숙), 작업실에 흩어져 있는 작은 물품들(경현수), 개미집 설치(함진) 등 나무 상자를 특이한 전시공간으로 삼는다. 관람객들은 창작 행위의 뒤를 살짝 엿보며 작가의 독특한 취향을 살피게 된다.
마임 · 현대무용 만나 장르 넘는 교류 시도
대안공간의 실험성을 확인하는 공연도 선보인다. 조형적 호기심을 유발하는 사루비아다방이라는 전시장이 심리적 불안감을 자아내는 소리공간으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room>(이윤석)의 소리 실험 공연 때 사루비아다방은 일종의 ‘공명통’ 구실을 한다. 이 공간에서 관객은 음악이 아닌 소리 자체를 경험하게 된다. 사루비아다방 이병희 큐레이터는 “그동안 대안공간에서 다양한 실험이 이뤄졌지만 대부분 개별 장르를 뛰어넘지 못했다. 이번 축제는 다양한 예술 양식이 얼마나 절묘하게 어우러질 수 있는지를 보여줄 것이다. 누구나 예술 행위의 주체가 된다는 것을 확인하는 즐거움도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어쩌면 사루비아 다방의 축제는 대안공간의 이상한 경향을 한자리에 모은 것인지도 모른다. 어디선가 보았던 장면이 더러 눈에 띄기도 한다. 은밀한 ‘영화 다시 읽기’를 시도한 이 낯익음이라면 대형 관광버스 승객이 전시공간을 향하는 은 낯설음이라 하겠다. 거기에서 예술이 발생하는 지점을 확인하고 소통의 통로를 발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대안공간의 자생력은 관객과의 만남에서 비롯되게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공간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 ‘인디萬발’을 주제로 다양한 대안적 활동을 보여준 ‘서울 프린지 페스티벌 2004’에서 독립 예술인들이 떠오르지 못하는 대안공간에 전하는 메시지는 강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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