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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 ‘은행나무 독살’ 환기미술관 고발… 작가 호 따서 ‘수화’라 이름 붙여

“나무는 물건이 아니다” ‘생명살림선언' 발표도
등록 2026-06-29 15:12 수정 2026-06-29 15:41
2026년 6월29일 서울 종로경찰서 앞에서 열린 ‘환기미술관 경찰고발 및 생명살림선언 기자회견'에서 부암동 주민들과 서울환경연합 등 참가자들이 환기재단과 환기미술관장을 재물손괴 및 토양환경보전법 위반 혐의로 고발하기에 앞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날 참가자들은 고발과 함께 ‘생명살림선언'을 발표하며 비인간 생명의 법적 권리 보장을 촉구했다.

2026년 6월29일 서울 종로경찰서 앞에서 열린 ‘환기미술관 경찰고발 및 생명살림선언 기자회견'에서 부암동 주민들과 서울환경연합 등 참가자들이 환기재단과 환기미술관장을 재물손괴 및 토양환경보전법 위반 혐의로 고발하기에 앞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날 참가자들은 고발과 함께 ‘생명살림선언'을 발표하며 비인간 생명의 법적 권리 보장을 촉구했다.


서울 종로구 부암동 은행나무에 제초제를 주입한 책임을 묻는 고발장이 경찰에 접수됐다. ‘부암동 은행나무 살리미 60인’과 서울환경연합은 2026년 6월29일 오후 1시 서울 종로경찰서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장재룡 환기재단 이사장과 박미정 환기미술관장(국제박물관협의회 한국위원장)을 형법상 재물손괴죄와 토양환경보전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5월23일 한겨레 보도로 환기미술관 앞 은행나무 훼손 사건이 알려진 지 한 달여 만이다.

고발인들은 피고발인들이 4월22일 조경업체 직원 2명을 고용해 은행나무 뿌리 부근에 전동드릴로 구멍 10개 이상을 뚫고 성분 미상의 독극물을 주입했다고 주장했다. 환기미술관 소유가 아닌 타인 소유의 은행나무를 심각하게 훼손해 재물손괴죄가 성립한다는 것이 고발인들의 주장이다. 토양오염 가능성도 제기했다. 환기미술관 쪽이 약제 정보를 공개하지 않아 독극물이 토양으로 유입됐는지조차 파악하기 어렵다는 이유다. 김보미 법무법인 원 공익전담변호사는 고발 취지에 대해 “말 못 하는 존재를 대신해 ‘이건 잘못된 일’이라고 말하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라며 “단순한 민원 제기가 아니라 범죄 행위에 대한 철저한 수사와 책임을 통해 비슷한 사건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절차”라고 말했다.

주민과 활동가들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생명살림선언’을 함께 내걸었다. 이 사건이 나무 한 그루의 손괴를 넘어 도시 생명권의 법적 공백을 드러낸다는 취지다. 참석자들은 은행나무에 ‘수화’라는 이름을 붙였다. 김환기 화백의 호 수화(樹話)는 ‘나무와 이야기한다’는 뜻이다. 이런 김환기 화백의 정신을 기린다는 미술관이 200살가량된 은행나무를 독살하려 했다는 점도 시민들의 공분을 샀다.

 

부암동 주민인 현경 미국 뉴욕 유니온신학대 교수가 2026년 6월29일 서울 종로경찰서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환기미술관 앞 은행나무 훼손 사건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부암동 주민인 현경 미국 뉴욕 유니온신학대 교수가 2026년 6월29일 서울 종로경찰서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환기미술관 앞 은행나무 훼손 사건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은행나무와 생명들의 평화로운 관계 파괴”

 

부암동 주민으로 뉴욕 유니온신학대에서 생태신학을 강의하는 현경 교수는 “시청, 나무의사협회, 아보리스트협회, 경찰서를 돌며 자기 생명의 법적 근거가 없는 존재는 소유물이나 관리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보호받기 어렵다는 것을 느꼈다”며 “수화님(부암동 은행나무)의 상처는 한 그루 나무의 상처만이 아니었다. 현행 제도가 이름 붙이지 못한 생명, 누군가의 재물로만 설명되는 존재들이 어떻게 방치되는지를 드러내는 장면이었다”고 말했다.

‘야생초 편지’(도솔 펴냄)의 저자인 황대권 생명평화운동가도 이날 마이크를 잡았다. 그는 “은행나무 자체의 평화를 파괴하고, 그 은행나무가 주변 생명들과 맺어온 평화로운 관계를 파괴한 일”이라고 말했다. 함은세 작가는 “20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한 자리를 지키며 단단한 안식처, 조용한 위로의 그늘, 묵묵한 친구이자 어른이 되어주는 일은 인간은 결코 해내지 못할 일”이라며 “그런 부암동의 큰 어른이자 수호신에게 환기미술관은 제초제를 주입했다. 은행나무의 회복을 위한 진실한 노력만이 용서를 구할 방법”이라고 했다. 동물해방물결의 전범선·이지연 활동가는 동물권 운동의 문제의식이 식물과 도시 생명권으로 확장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지연 대표는 “사람의 안전과 재산권은 소중하지만, 그것이 생명을 마음대로 죽일 권리가 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인간의 편의를 위해 동물을 가두고 도살하는 현실과 담장 훼손 우려를 이유로 나무를 죽이려 한 현실이 다르지 않다는 취지였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이 ‘수화(樹話)의 정신 계승한다며, 은행나무 독살이 웬 말이냐', ‘종로구청은 부암동 은행나무를 즉시 보호수로 지정하라' 등의 손팻말을 들고 있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이 ‘수화(樹話)의 정신 계승한다며, 은행나무 독살이 웬 말이냐', ‘종로구청은 부암동 은행나무를 즉시 보호수로 지정하라' 등의 손팻말을 들고 있다.


“나무에도 법인격을”…‘죽임’에서 ‘살림’의 문명으로

 

기자회견 마지막 순서로 ‘생명살림선언문’이 낭독됐다. 참가자들은 “오늘의 법은 나무를 소유권의 대상으로만 보고, 행정은 이를 관리 대상인 시설물로만 취급한다”며 “하지만 우리는 한 그루 나무에게서 거룩한 생명의 그물망을 본다”고 밝혔다. 이들은 이어 “나무가 시설물이나 재산이 아닌 생명으로 오롯이 뿌리내릴 수 있도록 죽임의 문명에서 살림의 문명으로 나아갈 것”이라며 “비인간 생명에게 법인격을 부여하고 그 고유한 권리를 보호하는 생명살림 운동으로 나아가겠다”고 했다. 이들은 △경찰이 은행나무에 가해진 인위적 위해와 의사결정 경위를 엄정하게 수사할 것 △환기미술관이 사죄하고 은행나무 회복 비용과 책임을 부담할 것 △종로구청이 이 은행나무를 보호수 또는 ‘아름다운 나무’로 지정하고 사유지·공유지 노거수 보호 행정에 나설 것 △정부와 국회가 식물·동물 등 비인간 존재의 법적 주체성과 법인격을 인정하는 ‘생명살림 입법’에 착수할 것 등을 요구했다.

이 사건은 5월23일 한겨레 보도로 알려졌다. 5월26일 우종영 나무의사는 잎의 약 90%가 탈색·변색됐다고 진단했고, 6월16일 국립산림과학원 점검에서도 수관 약 60%에서 전형적인 제초제 피해 양상이 확인됐다. 환기미술관은 6월1일 은행나무에 약제를 주입한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문을 냈지만, 주민들은 이를 사과보다 책임을 주민 민원과 행정 절차로 돌린 ‘변명’이라고 비판했다. 주민들이 요구한 약제명과 주입량, 주입 횟수 등은 끝내 공개하지 않았다. 현재 환기미술관은 하반기 전시 준비를 이유로 6월9일부터 7월23일까지 장기 휴관 중이다.

글·사진 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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