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사람은 서울로, 쓰레기는 시골로?

화성시, 36년간 3곳 산업폐기물 매립장으로 고통받아
폐기물 처리 시설 권역별로 마련하고 관리에 정부 참여해야
등록 2023-02-03 23:14 수정 2023-02-07 15:10
2021년 5월 경기도 화성시 우정읍 주곡리 지정폐기물 매립장 위에 침출수 발생을 막기 위해 비닐과 흙을 덮은 모습. 정해량 제공

2021년 5월 경기도 화성시 우정읍 주곡리 지정폐기물 매립장 위에 침출수 발생을 막기 위해 비닐과 흙을 덮은 모습. 정해량 제공

2022년 9월1일 경기도 화성시 장안면 석포리의 주민 700여 명은 충격에 빠졌다. 2016~2021년 추진된 ‘석포리 폐기물 최종처분시설’(매립장) 조성 사업 기간이 2024년까지 연장됐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환경부와 화성시청이 이 사업 기간을 3년 연장해준 일이 잘못됐다며 소송을 제기했으나, 이날 수원지방법원은 환경부와 화성시의 손을 들어줬다. 주민들은 현재 2심 재판을 준비 중이다. 2023년 2월18일 석포초등학교에서 올해 첫 대책회의를 연다.

이미 매립장이 2곳이나 있는데

애초 이 사업은 2021년 11월13일 종료될 예정이었다. 주민들도 2016년 이후 계속된 이 폐기물 매립장 갈등이 5년 만에 끝나는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2021년 11월 환경부 폐자원관리과는 이 사업 계획이 2021년 10월 적정하게 변경됐다는 의견을 화성시에 전달해 사업 기간을 3년 연장하도록 했다. 석포리 매립장은 4만1천 평의 부지에 2만8천 평가량을 매립장으로 사용할 계획이며, 계획 매립량은 306만t이다.

윤광렬 석포리 폐기물 매립장 조성 반대 상임주민대책위원장은 “ 여기 매립장으로 들어오는 폐기물은 석포리나 장안면 , 화성시와 아무 관련 없이 전국에서 온다 . 매립장에서 나오는 모든 이익은 사업자에게 돌아가고 , 주민들은 건강과 안전상 피해만 보게 된다 . 왜 이런 시설이 우리 마을에 들어와야 하는가 ” 라고 물었다 .

석포리 주민들이 사업장(산업)폐기물 매립장 반대 운동을 벌이는 데는 역사적 배경이 있다. 그동안 화성시에는 산업폐기물 매립장이 이미 두 곳이나 설치됐기 때문이다. 사업장폐기물이란 폐수, 하수, 분뇨, 건설 등 사업장에서 나오는 폐기물을 말한다.

경기도 화성시 우정읍 주곡리 지정폐기물 매립장의 침출수 우물(집수정). 정해량 제공

경기도 화성시 우정읍 주곡리 지정폐기물 매립장의 침출수 우물(집수정). 정해량 제공

석포리에서 1~2㎞ 떨어진 우정읍 주곡리엔 1987년 ‘지정폐기물 매립장’이 설치돼 1997년까지 56만4천t의 지정폐기물을 묻었다. ‘지정폐기물’이란 산업폐기물 중 사람이나 환경에 특별히 유해한 폐기물을 말한다. 이 매립장은 운영되던 때부터 침출수가 유출돼 주변 농경지와 바다 등에 막대한 해를 끼쳤다. 30년 가까운 논란 끝에 2014년 결국 화성시가 이 매립장을 매입해 기존 시설을 개선하고, 주민들을 위한 음식물처리장 등을 추가 설치하기로 결정됐다.

주곡리의 지정폐기물 매립장 반대 주민대책위원회의 윤호선 위원장은 “애초 환경관리공단이 운영하던 시설을 두 차례 민간 사업자에 넘겼다가 결국 화성시가 다시 매입했다. 이런 시설을 설치해야 한다면 반드시 정부가 맡아야 한다. 민간 사업자에 맡기면 주민 건강과 국토를 보호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 2002~2018년 화성시 송산면 칠곡리에도 사업장폐기물 매립장이 설치돼 466만8천t을 묻었다. 현재 이곳의 침출수 규모는 80만t 이상으로 처리비가 최대 96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이 매립장의 사업자는 2020년 침출수 관리 부적합 등으로 화성시의 시정명령을 받고도 처리하지 않아 현재 검경에 고발된 상태다.

전국 3.5%, 전남엔 무려 62곳(28.4%)

정해량 석포리 매립장 공동주민대책위원장은 “칠곡리에서 엄청난 산업폐기물 침출수를 발생시킨 사업자가 석포리 매립장 사업체의 주요 주주다. 이 사업자는 10년 동안 최소 700억원을 벌었는데, 침출수 관리조차 제대로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화성시에 이렇게 폐기물 매립장이 집중되는 원인에 대해 정한철 화성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은 “화성시가 수도권의 여러 도시에서 가깝고 경기 남부로 전국에서 폐기물을 받을 수 있다. 땅값도 비교적 싼 편이어서”라고 설명했다.

산업폐기물 처리업은 수익률이 높은 사업으로 평가받는다. 하승수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가 최근 조사한 사례를 보면 충북 충주와 청주, 전북 군산 등지의 산업폐기물 업체는 1년에 적게는 100억원 이상, 많게는 600억원 이상의 당기순이익을 냈다. 이에 따라 일부 대기업도 산업폐기물 처리업을 검토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산업폐기물 매립장이나 소각장이 대도시가 아닌 광역도에 몰리는 것을 우려한다. 2018년 통계를 보면 한국의 폐기물 매립장은 모두 218곳인데, 세종을 포함한 8개 광역시엔 12곳(5.5%)뿐이고, 9개 광역도엔 206곳(94.5%)에 이른다. 특히 인구가 전국의 3.5%에 불과한 전남엔 무려 62곳(28.4%)이 있다.

또 폐기물 소각장은 전국에 178곳인데, 8대 광역시엔 20곳(11.2%), 9개 광역도엔 158곳(88.8%)이 있다. 전남엔 소각장도 무려 53개(전국의 29.8%)에 이른다. 2022년 기준으로 8개 광역시엔 전체 인구의 43.6%가 산다.

2020년 9월 풀이 무성한 경기도 화성시 우정읍 주곡리 지정폐기물 매립장. 정해량 제공

2020년 9월 풀이 무성한 경기도 화성시 우정읍 주곡리 지정폐기물 매립장. 정해량 제공

매립장과 소각장이 대도시보다 광역도에 집중되는 이유는 산업폐기물 처리 시설에 지역 제한이 없기 때문이다. 하승수 농본 대표는 “통상 생활폐기물은 발생지에서, 일부 산단(산업단지)의 폐기물은 산단 안에서 처리한다. 그러나 산단에서 처리되지 않은 폐기물이나, 그 외 사업장에서 나온 폐기물이 다른 지역으로 가서 문제가 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산업폐기물의 권역을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정근 이제이현장연구모임 대표는 “주민 입장에서 보면, 당연히 권역별로 폐기물 처리 시설을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산업폐기물 처리 시설을 전국 단위로 하려는 것은 사업자 관점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산업폐기물 사업 범위를 권역별로 축소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오길종 한국폐기물협회장은 “현재도 국립공원이나 상수원보호구역 등 폐기물 처리장을 설치할 수 없는 곳이 많다. 이 상태에서 사업 지역을 축소하면 폐기물 처리 시설이 줄어 오히려 불법투기를 조장하게 된다”고 우려했다.

입지 검토와 주민 설득 위해 공공이 맡아야

산업폐기물 처리 시설을 민간 사업자가 아닌 정부나 공공기관이 맡아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하승수 농본 대표는 “생활폐기물을 지방정부가 처리하는 것처럼 산업폐기물도 공공에서 처리해야 한다. 그래야 입지 검토나 주민 설득이 제대로 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환경부 이정미 폐자원관리과장은 “현재도 지자체가 직접 산업폐기물을 처리할 수 있으나, 경제성 등의 문제로 잘 안 되고 있다. 원칙적으로 민간 사업장에서 나온 폐기물은 민간에서 처리하도록 하고 있다. 현재 정부의 역할은 처리 기준을 만들고 관리하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김규원 선임기자 che@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